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당선자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청와대 밖에서 대통령 집무를 시작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데도, 둘러대는 이유가 황당하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란다. 청와대의 위치나 구조가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든단다. 이 무슨 조악한 유물론인가? 게다가 그는 소통하기를 원한다면서도 그야말로 제왕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인가? 앞으로 이런 유의 일을 얼마나 반복해서 겪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확실히 그는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겨우 0.73%포인트 차이라 해도, 다수 유권자가 집권 민주당이 잘못된 통치를 했다고 믿어 응징하고 국민의힘을 다시 선택했다. 여기에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를 이끌라고 위임받은 이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정부의 검찰총장이었지만 국민의힘이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해 ‘양자’를 들이듯 영입한 정치 신인이다. ‘여의도 문법’에서 자유롭기에 더 큰 기대를 받는다는 이 신인은, 안타깝게도 취임도 하기 전부터 요령부득의 행보를 한다. 그런 그가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윤 당선자 개인의 정치 스타일 문제라고만 보면 안 된다. 그는 한국의 병든 민주주의 체제가 낳은 정치적 사생아다. 극단적인 양극화와 함께 오랫동안 고착화한 양당체제는 시대 변화나 사회 분화에 따른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대선 때만 되면 늘 제3후보가 나와 정치적 돌풍을 일으키곤 했다. 그 새로운 인물이 신물 나는 기성 정치를 끝장내고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그동안 몇 번이고 그런 돌풍이 있었지만 다 실패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처음부터 기성 주류 정당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우리 정치체제의 모순을 은폐하지도 못하고 그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을 더 빛나게 해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빠져 있는 심각한 위기의 방증일 뿐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인 건 맞다. 하지만 그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적 틀과 제도의 문제다. 정치체제 자체의 교체가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서 손을 보면 좋겠다. 아예 내각제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국민들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나 안보 같은 분야에만 제한하고 통상적인 내치 문제는 국회의 협치에 맡기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국민적 동의를 얻기에 적합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두 거대 정당의 카르텔을 깨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다원적 정당체제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유권자의 의사가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은 공약대로 한국 정치체제를 바꾸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윤 당선자도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 싫다고 하니, 국민의힘도 이런 개혁에 무턱대고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개혁의 필요와 당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데에 윤석열 당선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틀림없이 그 스스로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 때문에 우리는 불필요한 혼란을 꽤 겪어야 하지 싶다. 그저 이 모든 게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이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어떤 역사적 이성이 부리는 숨은 계략일 뿐이라고 위안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자명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철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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