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40년 동안 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면, 은퇴 뒤에는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는 구조다.ⓒ연합뉴스

2022 대선의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이슈 중 하나가 연금이다. 이대로라면 올해 서른이 된 1992년생이 연금급여를 받기 시작하는 65세가 되는 시점(2057년)에, 국민연금은 고갈된다.

연금 고갈은,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운용을 잘못해서 벌어지는 사고가 아니다.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가입자들이 낸 돈(보험료)의 2배 이상을 연금급여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걷은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돌려줘야 하니, 언젠가 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한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에 쌓인 돈이 떨어지는 시점부터는, 해당 시기의 ‘일하는 세대’가 낸 보험료로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데(서구의 많은 나라가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문제다. 기금 고갈 이후 돈을 낼 수 있는 사람 수가 너무 적다. 설상가상으로 평균수명은 길어진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보험료를 올려 연금기금의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40년 동안 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면, 은퇴 뒤에는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는 구조다. 이를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체제’라고 한다. 그런데 기금 고갈 3년 뒤인 2060년 시점의 ‘일하는 세대(2001~2042년생)’가 지금의 소득대체율 40%를 적용받으려면, 월 소득의 26.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같은 소득대체율의 급여를 받기 위해 이전 세대는 9%만 내던 보험료를 2057년 이후 갑자기 26.8%로 올리면, 그 시점의 ‘일하는 세대(미래세대)’ 역시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26.8%는, 출산율이 1.38로 올라간다는 가정하에 나온 보험료율이다. 출산율이 2017년의 1.05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필요한 미래세대 보험료율은 29.3%로 뛴다. 실제 상황은 더 나쁘다. 2020년 출산율은 0.84를 기록했다. 물론 앞으로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면 가입자들의 소득이 높아지므로, 국민연금공단은 같은 보험료율로도 더 많은 연금기금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도성장기가 다시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가능한지 다들 궁금해한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부담을 넘기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버리면, 청년들이 들고일어나서 ‘보험료 내지 말자’는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럼 끝장이다. 누가 되든 차기 정부는 ‘연금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연금개혁’을 두 차례 추진했다. 1988년 출범 당시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3%-소득대체율 70% 체제’였다. 이후 보험료율은 법 시행 당시 명시한 대로 1993년부터 6%, 1998년부터 지금과 같은 9%로 올랐다(직장가입자 기준. 지역가입자는 처음 가입한 1999년 3%부터 서서히 올라 2005년 7월 이후 9%). 김대중 정부의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은 60%로 줄었다. 노무현 정부 때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왔다(2022년엔 43%). 소득대체율이 2028년의 40%까지 낮아지면 그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보험료율을 15.9%까지 올리려 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연금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더 내고 덜 받아’ 기금 고갈을 미루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왔다. 그러나 현 세대 대다수에게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지금의 연금제도가 유리하다. 그 때문에 연금개혁은 늘 인기 없는 주제다. 2022 대선이 두 달 남은 지금까지도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아직은 불투명한 두 후보의 연금개혁 ‘방향’

다만 각 후보나 캠프 차원에서 단편적이지만 연금개혁을 언급하기는 한다. 대충의 방향성은 볼 수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해 12월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어느 정당이든 간에 연금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들고나오면 무조건 선거에서 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구체적인 연금개혁안을 안 내놓는 것이지만, 반드시 되어야 하는 문제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엔 “결국은 많이 걷고 적게 줘야 된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보험료율은 올리고(“많이 걷고”) 소득대체율은 낮춘다(“적게 줘야 된다”)는, ‘인기 없는’ 연금개혁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유력 대선후보가 연금개혁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한 것일까? 그러나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의 안상훈 지속가능한복지국가 정책본부장은 “조합이 최소 3개다. 보험료를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은 조금 낮추거나, 보험료를 엄청나게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을 조금 올릴 수도 있다. 보험료를 조금 올리면서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는 방안도 있다”라고 말했다. “1월 중순에 연금 공약을 낼 계획이지만, 구체적 퍼센트는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약을 내서 처리할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윤석열 후보는 앞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초당적으로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들어서 임기 내에 그랜드 플랜을 제시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6일 KBS 〈일요진단〉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금개혁은 이해관계가 너무 심하게 충돌하고, 누가 머릿속에서 생각해내 딱 결정해서 집행할 수 있는 현안이 못 된다. 나라가 들썩거릴 사안이다. …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독선에 가깝다. 그래서 ‘연금개혁은 필요하다, 해야 된다, 하겠다’ 정도까지밖에 얘기를 못한다.”

지난해 12월27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연금학회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연금 공약 토론회. 각 당 대선후보의 정책 방향을 설명할 발표자들이 참석했다.ⓒ시사IN 신선영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윤후덕 정책본부장은 지난해 11월24일 ‘2021 중앙포럼’에서 연금개혁 질문을 받고 “1당이나 2당 후보들은 좀 꺼리는 주제인 건 사실이다. 인수위 과제다”라고 말했다. 당선된 뒤에 연금개혁안을 내놓겠다는 것일까? 윤 본부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아직 대선이 많이 남았다. 앞으로 공약을 낼 계획이 있으니 좀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7일 한국연금학회가 연 ‘대선후보 연금 공약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 선대위 산하 포용복지국가위원회의 문진영 공동위원장(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연금 공약을 낸 적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도 나는 모른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재명 캠프’에서 연금개혁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추정할 실마리는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의 후보자 직속 위원회 중 ‘신복지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부)다. 김연명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연금 공약에 관여하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당연히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향은? 그는 “후보나 정책본부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전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게 중요하다. 연금액이 너무 낮아서 문제니까.”

김연명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김연명 교수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사회수석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었다. 시민운동, 노조 등 한국 진보 진영의 주장도 비슷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 등 100개 가까운 시민단체로 꾸려진 ‘불평등끝장넷’은 정책 요구안 중 하나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민주노총 제2차 중앙위원회가 논의한 ‘2022 대선 요구안’ 중 하나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이다.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 40%로 맞춰질 소득대체율의 하향을 멈추고 다시 50%로 올리자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려 해도 보험료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올리자고 하다니? 이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에 따르면, 2057년 기금 고갈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연금기금 고갈 뒤에 미래세대 보험료율이 26.8%에서 29.3%까지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보험료로만 연금급여를 충당할 때의 이야기다. 독일 등 해외 정부처럼 연금급여 지급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 또한 고갈 이후 시점에 지출해야 하는 연금급여의 총액은 2060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7.5% 정도로 전망된다. 한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의 부담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60년에 GDP 대비 7.5%에 달한다는 연금급여의 규모는, 2018년의 같은 수치가 1.3%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외에선 연금급여가 이토록 급격히 늘어난 경우를 찾기 어렵다.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지만, 재정 역시 세금에서 나온다. 미래세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노인인구 급증에 따라 건강보험료 지출도 커질 예정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은 보험료율 인상이다. 사실 한국의 보험료율(9%)은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이 18.6%, 스웨덴이 22.3%, 일본이 18.3%, OECD 평균이 18.2%인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험료율을 올리지 말자는 건 아니다. 예컨대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12%로 하거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13%로 하자는 안이 문재인 정부에서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이 경우 더 내는 보험료 대부분이 소득대체율 인상분으로 쓰인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에는 별 효과가 없고, 따라서 기금 고갈 시점을 크게 늦추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게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의 논리다. 국민연금이 존재하는 이유는 적립금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후생활 보장이다. 2021년 5월 말 기준 1인당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 55만361원이다. 최고액은 월 241만4390원이지만 평균으로 보면 여전히 ‘용돈 연금’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 1위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빈곤한 노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을 오히려 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신뢰란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회복되는 것일까?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만 내고 연금급여를 못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정 세대가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소득대체율 인상, 누구에게 유리한가?

소득대체율 인상이 정말 ‘진보’적인지도 생각할 지점이 있다. ‘소득대체율 40%’는 월 100만원 소득자가 40년 동안 연금보험료를 내면 소득의 40%인 40만원을 연금급여로 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명목’에 불과하다. 상당수의 가입자들은 40년 동안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가입자들이 실제로 받는 연금급여는 소득의 2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실질 소득대체율). 국민연금은 그 특성상 소득이 높고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급여를 많이 받게 설계되어 있다. 즉,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동시장에서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다.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일 경우, 국민연금에 15년 가입한 월 100만원 소득자는 연금이 3만원 증가하지만, 40년 가입한 월 468만원 소득자는 17만원을 더 받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윤소하 정의당 의원실, 2018).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88.8%인 데 비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8.4%에 불과하다(2021년 8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중 사업 중단이나 실직 등의 이유로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은 ‘납부예외자’가 307만명(13.9%), 보험료를 13개월 이상 장기 체납한 사람이 100만명(4.5%)에 달한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2021년 6월 기준). 사각지대의 핵심은 ‘지역가입자’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1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가입자인 노동자는 보험료 절반(소득의 4.5%)을 사업주가 내준다. 같은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농어민은 국가가 보험료를 50%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나 지역가입자에 해당하는 영세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등은 소득의 9%를 고스란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연금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계층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보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쪽이 낫다.

더욱이 굳이 소득대체율을 높이지 않아도 노후 소득보장 체계를 더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복지운동계 일각에서는 ‘다층 연금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는 중간층 이상 계층에게 퇴직연금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대신 지금의 국민연금처럼 매달 지급받아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완하게 하려는 제도다. 2005년 도입되었으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현재, 만 55세 이상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 중 96.7%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퇴직금 일시금 수령은, 주된 일자리에서 이르게 퇴직해 자영업에 뛰어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이기도 하다. 일시금 수령 조건을 엄격히 하고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면, 굳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중간층 이상의 노후소득 보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소득층 노인의 안전망으로는 국민연금 외에 기초연금이 있다. 하위 70%에게 월 3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에 포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안전망이다. 한국 기초연금의 평균소득 대비 급여 비중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낮은 반면, 65세 이상 인구 중 기초연금을 받는 인구 비율은 약 70%로 OECD 평균(22%)의 세 배다. 이와 관련, OECD는 2018년 “기초연금의 적용 범위를 ‘절대빈곤에 처해 있는 65세 이상’으로 좁히면, 정부의 전체 예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혜택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렇게 저소득층에게는 기초연금의 기능을 강화하고, 고소득층에게는 퇴직연금을 활성화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지 않고도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더욱 튼실하게 만들 수 있다.

연금개혁에서 또 하나의 난관은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이다. 2021년 공무원연금 1인당 평균 수령액은 월 239만원으로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약 55만원)의 4배가 넘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국민연금과 일치시켜가자며 ‘동일 연금제’를 공약했다. 이재명, 윤석열 캠프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윤 후보 측은 “노코멘트”라고 답변했다. 이재명 후보 측의 김연명 교수는 “공무원연금은 깎을 대로 깎았고, 군인연금은 분단국가에서 군인의 역할을 고려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조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국민연금의 두 배인 18%다. 평균 가입 기간이 20년도 채 되지 않는 국민연금에 비해 30년으로 긴 데다, 민간 퇴직금의 39%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퇴직수당으로 받는다.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하며 파업할 권리(노동 3권)를 제한당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정영국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교육실장은 “공무원연금은 낮은 임금에 대한 후불임금 성격이 있다. 공무원 임금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민간의 100인 이상 업체 사무직 임금에 아직도 미치지 못한다(2020년 기준 90.5%). 설령 민간처럼 퇴직금을 받고 노동 3권을 인정받더라도 생애 소득도 민간 수준으로 올라가야 통합이든 개혁이든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낮은 임금에 대한 후불임금 논리가 지금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공무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5.2년으로 전체 일자리 평균 근속연수(5년)의 3배다. 공무원 평균임금은 월 539만원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임금 254만원의 두 배에 이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면, 공무원의 비교적 높은 소득 덕분에 (‘국민연금 급여 계산’의 주요 부분인 ‘국민 평균소득’이 올라가면서) 저소득 가입자의 연금급여가 높아진다. 여기서 ‘연대’가 이뤄진다. 이렇게 공무원들이 5000만 국민과 노후를 함께하는 대신 파업권을 포함한 노동 3권을 전면 요구한다고 해보자. 국민들이 충분히 지지해주리라 본다. 현재 공무원 등 특수직역과 일반 국민 간에 어마어마한 노후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갈등과 반목을 넘어 사회연대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물론 공무원노조는 강력하게 조직된 소수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각각 1993년과 1973년부터 이미 재정수지 적자를 국가보전금(국가가 사용자로서 내는 보험료와 별도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들이는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두 연금의 재정수지 적자 합계는 2020년 3조8000억원(GDP 대비 0.21%)에서 2090년 38조8000억원(GDP 대비 0.94%)으로 확대되리라 전망된다(국회예산정책처, 2020).

연금개혁은 어렵다. 투표권은 현 세대에 있고, 미래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거나 너무 젊어서 ‘대의’되지 못한다.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행하더라도 후유증이 크다.

참고할 만한 ‘영국의 연금개혁 과정’

‘복지정치’ 연구자인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기초교육학부)는, 한국과 비슷한 양당제이면서 당파화된 정치 환경을 가진 영국에 주목한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2002년 시작해 2011년에 마무리한 일련의 연금개혁은, 이전의 대처 정부가 민영화·자유화·개인화했던 연금제도 전반에 대해 다시 국가 개입을 강화했다. 이 개혁은 노동당 정부가 시작했으나 보수-자유 연립정부가 매듭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초당적 협력이 가능했나?

김 교수의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영국 연금개혁의 정치〉(후마니타스)에 따르면, 그 과정은 이랬다. 먼저 세 명으로 구성된 연금위원회가 보고서를 만들었다. 연금위원회는 총리가 추천한 전 영국산업연맹 대표이자 당시 메릴린치 부회장이었던 아데어 터너, 재무장관이 추천한 전 영국노동조합회의 의장 지니 드레이크, 노동연금장관이 추천한 런던 정치경제대학 교수 존 힐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먼저 최소한 “상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기초적인 사실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영국의 노인인구 부양 비율이 2050년에 두 배가 될 것이고, 노후 대책으로서 민간 연금은 실패했으며, 당시의 국가연금 체계로는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노후 빈곤에 노출된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공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금위원회와 의회를 통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외에도 2005년 영국 여덟 개 지역에서 ‘전 국민 연금 토론’을 개최하는 등 광범위한 대중 협의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숙의 과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노후 대비의 비용과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공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실들’을 보여주는 연금위원회의 기초 작업에 있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영국에서 했던 식의 기초작업, 즉 ‘아무리 하기 싫어도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할 수밖에 없도록, 정보 공유를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쉽게 가공해서, ‘대규모 공론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금개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도 2001년 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53%까지 낮췄고, 2025년까지 48%로 유지하기로 했다.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은 기대여명 등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했다. 정치적 부담이 큰 연금개혁을 반복하는 대신, 자동적으로 개인들이 부담을 나눠 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생계가 곤란할 때까지 오래 살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연금의 공적 기능은 유지하고 있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대선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왜 대통령을 하고 정권을 잡으려 하는지. 우리의 인구구조상 지금의 연금제도로는 국가 존립이 어렵다. 국가를 위해 일하려 한다면 이에 대한 입장부터 내놓아야 한다. 연금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가 정치적 타격이 너무 크다면, 모든 정파가 적어도 연금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공동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대선에서 ‘청년’이 화두라는데, 연금개혁이야말로 청년에게 책임을 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