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2022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규모가 지난해 806만6000명(38.4%)으로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규직이 월급을 333만6000원 받을 때 비정규직은 176만9000원을 받는다. 비정규직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쯤에서 문제를 제기해야겠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과를 낸다면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합니다(1월4일 새해 기자회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비정규직 해법 중 하나로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꺼내 들었다.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정한데 임금까지 덜 받으면 ‘중복 차별’이니, 고용불안의 가치를 평가해서 수당을 주자는 취지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지난해 1월, 경기도 및 산하 공공기관 소속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기본급의 5~10%를 수당으로 추가 지급한 바 있다. 계약기간이 짧을수록 기본급 대비 더 높은 비율의 수당을 줬다(2개월 이하 근무자에게는 10%를 적용해 33만7000원, 1년 근무자에게는 5%를 적용해 129만1000원). 이런 제도를 공공부문 전체에 적용하고, 민간기업도 따라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일까?

‘외국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임금이 높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임시직 시간당 임금을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대비 25% 더 주게 되어 있다(이른바 ‘캐주얼 로딩 casual loading’). 오스트레일리아의 임시직들은 휴가를 가지 못하고, 해고에 대한 보호도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기간제 계약이 기간 만료로 종료될 경우, 해당 기간 지급된 총임금의 10%를 ‘계약종료수당’으로 준다. 프랑스에서는 1년 이상 근무한 정규직을 해고할 때 해고수당을 주는데,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잃는 기간제 노동자에게는 해고수당이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도 임시직 계약 종료 시 근속기간 1년당 12일분의 임금을 ‘근로계약 종료수당’으로 준다(김을식 외, 〈경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불안정성 보상 도입 방안 연구〉, 경기연구원, 2020).

그러나 비정규직에게 추가 보상을 주는 제도는 위 나라들을 제외하면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에 따르면, 유럽 국가(일부 남유럽 국가 제외)들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높기 때문에 큰 필요성이 없다. 어차피 몇 년 뒤 정규직으로 고용할 비정규직에게 굳이 추가로 보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럽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숙련직과 전문직을 제외하면 같은 일을 할 경우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임금을 15% 정도 더 받는 것이 현실이다. 정규직은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으며 비정규직보다 숙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직무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한국 노동시장 격차 해소의 대안으로서는 극히 부족하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의 말이다. “비정규직에게 수당을 준다고 할 때 ‘비정규직’이란 누구인가? 직접고용된 기간제 노동자다. 이른바 ‘간접고용’이라고 표현하는 수많은 하청업체 정규직이나, (자영업자의 성격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들은 적용받기 어려운 정책이다. 게다가 직접고용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려면, 추가수당 이전에 ‘균등대우’가 필요하다. 적어도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대우를 받도록 한 뒤 그에 더해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해야 순서가 맞다. 그런데 지금 기간제 노동자가 균등한 대우를 받고 있나? 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은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어떤 기간제 노동자의 임금이 차별인지 판단하려면 비교 대상, 즉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이 있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 임금이 기간제보다 높다면 차별이다(‘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규직이 하는 일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아예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비교 자체가 어렵다. 직무 분리 때문에 균등대우 조항이 무력해진다. 이런 경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즉 직무 내용이 다르더라도 그 일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동일임금을 주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일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는지’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합의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1월4일 이재명 후보가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대전환과 국민 대도약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연공급제와 비정규직 비율의 관계는?

비정규직 균등대우의 더 큰 걸림돌은 따로 있다. 다시 정이환 교수의 설명이다. “사실 직접고용된 기간제 비정규직의 경우 초임에서는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규직은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반면 비정규직은 임금이 올라가지 않으니 차이가 커진다. 한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어야 호봉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약 비정규직으로 여러 회사를 떠돌더라도 경력을 쌓아 숙련을 높인다면, 한 회사에만 다니면서 경력을 쌓고 숙련을 높인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할 경우에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하려면 결국 ‘연공급’을 개혁해야 한다.”

연공급이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다. 오래 근무할수록 많은 보수를 받는다. 호봉제가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 기업들엔 직원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를 평가해 연 단위로 임금을 결정하는 ‘연봉제’, 기업·부서별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성과배분제’ 등도 상당 부분 도입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연봉제를 시행한다는 기업도 실은 연공급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입사 30년째 임금이 최초 입직 임금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임금 배율’의 경우, 서유럽은 1.7배이고 일본은 2.5배다. 한국은 3.3배다(한국노동연구원, 〈임금 및 생산성 국제비교 연구〉, 2015).

연공급의 장점으로 ‘생계비 곡선에 부합한다’는 점이 꼽힌다. 나이 들수록 돈 쓸 데가 많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노동조합들은 호봉제 아래에서 임금인상을 극대화해 생계비를 확보하는 전략을 써왔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업별로 쪼개져 있다.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에서는 연공급 관철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어렵다. 사실 중소기업에는 노조 자체가 거의 없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0년 기준 14.2%에 불과하다.

한국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으로 대표되는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2차 노동시장’으로 분절되어 있고 그 격차도 극심하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68.9, 중소기업 정규직은 57.3,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4.5다(2020년 기준).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높다. 한국에서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보다도 어떤 기업에 다니느냐에 따른 임금 차이가 더 크다. 심지어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해도 그렇다.

‘생계비 확보’가 중시되는 동안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중시되지 못했다. 300인 이상 기업의 60.1%, 1000인 이상 기업의 70.3%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반면, 5인 미만 사업체의 74.6%는 임금체계 자체가 없다. 사실상 최저임금으로 굴러간다는 이야기다. 연공급을 모든 노동자에게로 넓히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연공급은 장기근속이 가능할 때 의미 있는 개념이다. 한국처럼 전체 일자리의 평균 근속기간이 5.2년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오래 일한다고 충분한 생계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금세 망하거나 근무환경이 열악해 이직이 잦은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는 근속기간도 더 짧다(대기업 7.9년, 중소기업 3.5년).(대기업 7.9년, 중소기업 3.5년).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도 연공급과 관계가 깊다. 2014년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임금의 연공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비정규직(계약직·단시간·용역·파견 등 해당 사업체에서 발견되는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임금체계에 연공급적 성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는 지표인 ‘임금 연공성’이 하위 10%에 속하는 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15%인 데 비해, 임금 연공성이 상위 10%인 기업에서는 이 비율이 약 33%로 뛰었다(권현지·함선유, 〈연공성 임금을 매개로 한 조직 내 관계적 불평등:내부자-외부자 격차에 대한 분석〉, 2017).

지난해 12월28일 한 간담회에서 윤석열 후보가 “연공급을 줄이고, 공공부문에서 우선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국회사진취재단

연공급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충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없애고,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는 유인을 줄이는 중요한 방법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이다. 연공급은 논리상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충돌한다. 같은 일을 해도 연차에 따라 다른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직무급은 하는 일(직무)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체계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임금체계는 ‘연공급’보다는 ‘직무급’에 가깝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격차 해소 방법으로 ‘직무급’을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임금체계를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꿔나가고, 일자리란 게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가 큰 차이가 없게(2021년 9월13일).” “연공급을 줄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공공부문을 우선하고(2021년 12월28일).” 윤 후보에게 조언하는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는 “(윤 후보가)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는 안에 상당히 동의했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도 출마 선언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보장되는 합리적 환경을 만들겠다”라고 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임금체계로 ‘직무급’을 언급하진 않았다. 이재명 후보 선대위 노동위원회에서 정책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 측은 격차 해소에 대해 주로 법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예컨대 이 후보가 공약으로 검토하는 ‘적정임금제’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시중 노임단가(대한건설협회 등 단체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해당 업종의 평균임금) 이상을 지급받는지 원청 기업(주로 대기업)이 모니터링하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는 노동조합이 맺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 개선’도 고려 중이다. 원청 단체협약을 하청에, 모회사의 단체협약을 자회사에도 적용하는 식이다(단, 임금은 제외).

이 후보 측은 동일노동 동일임금뿐 아니라 ‘상시·지속 업무와 생명·안전 업무는 정규직으로만 직접고용한다’는 원칙도 법 제·개정을 통해 제도화할 계획이다.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일부 예외적 사유를 제외하면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를 제한’하는 접근법이다. 이 후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다 만드는 게 정의냐, 그 생각도 조금씩은 교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지만, 정책 자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은 임기 동안 실현되지 않았다. ‘생명·안전 업무 정규직 직접고용 원칙’의 경우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도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일까? 정흥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으로 개혁 과제를 추진할 틈을 놓쳤고 코로나가 닥쳤다. 인수위 과정이 없어서 정책을 세밀하고 정제된 형태로 펴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는 상황이 다를 거라 본다. 또 다른 요소는 이재명의 리더십이다. 관료 눈치를 안 보고, 하려는 일을 악착같이 밀고 나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에게 조언하는 정승국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노동정책에 대해 “주로 사업주의 비정규직 남용을 어떻게든 규제하려는 ‘재규제론’에 입각해 있다. 공정수당이나 단체협약 효력 확장 등 국가정책을 통해 노사관계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 한다”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윤석열 후보의 노동시장 개혁 정책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제도적 조건을) 노사 자율주의를 바탕으로 바꾸려 한다”라며 “외부자(비정규직·실업자) 지향의 유연안정성”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은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을 합한 말이다. 해고 규제가 약해 이직이 잦은 대신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고, 국가가 재교육 및 재취업을 강력히 지원하는 모델이다(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덴마크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재명 후보도 국가가 법으로 규율하는 방식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 내부에서 작동하는 타협을 중시하고, 그 타협에 국가가 간접적으로 개입해 조절하는 방식도 언급한 적이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서 노동의 유연성도 확보하고, 사회안전망도 강화할 의무가 있다. 지금은 안온한 환경을 누리고 있는 소위 강성 노조도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지난해 11월10일).”

한국은 OECD 평균보다 개별 해고는 어렵고 집단 해고는 쉬운 편이다.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해고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국 보수는 줄곧 고용 유연화를 주장해왔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윤 후보 쪽도 당시 후폭풍이 컸던 것을 고려하는 듯하다. 윤 후보는 “기존의 노동시장을 조금 물렁물렁하게 유연화시키자”라면서도 “그렇다고 해고를 막 자유롭게 한다든가 그거는 아니고”라고 말한 바 있다. 윤석열 후보 선대위 개편 전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정책본부’의 ‘고용노동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윤 후보의 노동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유길상 전 한국고용정보원장은 윤 후보가 말하는 ‘유연성’에 대해 “해고 유연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우선은 근로시간과 임금의 유연화를 고려하고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에서 노사 합의 범위를 확대하고, 임금에 기존 연공급이 아닌 직무급이나 성과급 요소를 포함시키는 것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개혁 및 임금 결정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하겠다고 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도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며 ‘연공서열제 임금체계’ 개혁을 언급했다(‘연공서열제 개혁’ 이슈 정의당이 꺼내든 이유 기사 참조).

문제는 결국 ‘연공급 개혁을 어떻게 하느냐’다. 임금은 근로조건을 규정한 취업규칙의 핵심적 사항이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건 공공부문의 임금체계 정도다. 여기서도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선뜻 연공급 개혁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직무급보다는 연공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노조의 거부감도 강하다. 박근혜 정부는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노조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지침을 만들었다가 거센 후폭풍이 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해당 지침을 폐기했다.

‘임금 관련 기구 설립’은 두 후보의 공통점

이처럼 정부가 ‘연공급제에서 직무급 방향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강제하긴 어렵다. 노조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데, 노조는 연공급제를 선호한다. 이것이 바로 역대 정부들이 해결하지 못한 딜레마다. 노동시장 개혁 부문에서 이재명, 윤석열 두 대선후보의 공통점이 있다. 임금 관련 기구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 측 정흥준 교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할 기구로 대통령 직속 ‘공정임금위원회’를 설치하려 한다. 여기서 비정규직 공정수당, 직무가치 평가, 임금공시제 등 전반적인 임금정책을 논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 측 유길상 전 원장은 “임금위원회 같은 임금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서 임금이나 직무평가 관련 정보와 컨설팅을 제공하려 한다”라고 전했다.

다만 이런 정부 설립 기구가 임금 정보를 공개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조정해야 바람직하다’고 권고한다고 해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곧바로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일을 하면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단시간에 이뤄질 리는 만무하다. 이에 노동조합의 숙원인 정년 연장으로 물꼬를 트자는 논의도 있다. 윤석열 후보 측 유길상 전 원장은 “임금 유연화를 하는 대신 고용을 (노사 합의 시 법적 정년 60세를 넘어) 연장하도록 독려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법적 정년 연장이 아니라 고용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 측 정흥준 교수는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같이 논의한다고는) 생각한 적 없다. 둘은 별개다”라고 말했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산업별 노동조합과 해당 산업의 고용주 단체가 임금 등 노동조건을 협상하는 ‘산별교섭’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 사이의 지나치거나 부당한 임금격차를 일부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산별교섭의 토대가 허약하다. 노동조합도 노동시장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이환 교수는 “공무원 임금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그거 못하면 다른 것도 못 바꾼다”라고 말했다. 공무원은 호봉제를 적용받는 대표적 직군이다. 그동안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사용자인 공무원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또 하나의 시급한 과제로는 “변화된 노동시장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고용 형태를 노동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꼽았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에겐 지금까지 별다른 보호장치가 없었다. 일부 특수고용 직종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했을 뿐이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보호망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첨예한 논쟁거리다. 예컨대 연차휴가나 최저임금 등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을 적용하거나 파업할 권리를 보장할지 등이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재명, 윤석열 후보 양측의 문제의식이 비슷해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 윤석열 후보도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1월 중순 현재까지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적어도 각종 인권침해 금지, 모성보호, 단체를 만들어 협상할 권리 등 최소한의 보호를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심상정 후보는 비슷한 맥락의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을 대선 후보 중 가장 먼저 내걸었다.

이재명 후보는 1월26일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 국민에게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자영업자한테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 앞서 심상정 후보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원스톱 산재보험(전 국민 선보장-후평가 산재보험),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냈다. 이재명 후보도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문제는, 온도차는 있지만 네 후보 모두 긍정적이다.

후보들의 처지에선 선뜻 노동시장 개혁을 주요 정책 공약으로 내걸고 싶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싫어하는 공약을 내걸었다간 표만 잃기 쉽다. 또 노동시장 개혁은 임기 내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부문이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 발전에 필요하다면 인기 없고 오래 걸리는 정책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은 국가수반에게 권력을 허용한다.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청년 ‘확장실업률(사실상 실업 상태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계산한 실업률)’이 지난해 12월 19.6%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는 20만명 가까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민간부문 비정규직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공부문에서 새로 정규직화된 인력의 상당수에게 ‘직무급’이 도입되었지만, 기존 정규직에게는 도입되지 않아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 공동체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넘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오래된 과제 앞에 다시 서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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