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첫인사는 사과였다. 이보라(4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약속 시간에 늦어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투석을 받던 도중에 긴급 상황이 발생해 제때 나오기 어려웠다고 했다. 신장병 환자들은 일주일에 2~3회 투석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아주 위독해질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에 걸리면 다니던 투석실에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국중원)은 임시 투석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환자도 국중원에 와서야 때를 넘겨 투석을 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국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한다. 3차 유행의 기세가 사납던 2021년 1월 국중원은 코로나19 격리치료병동을 추가로 설치하고 외부 의료인력을 모집했다. 민간병원에서 근무하던 이 대표도 이때 공공병원인 국중원에 합류했다. 의사로서,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이 시기에 있어야 할 곳은 코로나19 병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또다시 찾아온 겨울은 지난겨울보다도 혹독해 보인다.

이 대표가 주치의를 맡은 코로나19 환자는 35명가량이다. 경증 병동이지만 12월 들어 상태가 나빠진 환자가 부쩍 늘어났다. 중환자 병실이 모자라서 위중한 환자들이 경증 병실에 보내지기도 하고, 병상 배정이 지연되면서 그사이 상태가 악화된 환자들도 있다. 35명을 진료하려면 하루에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18시간까지 환자를 봐야 한다. 그래도 그는 힘닿는 데까지, 병상이 나는 대로 환자를 받는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수도권 공동대응상황실’이 병원에 코로나19 병상을 의뢰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그도 속해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켜달라는 요청이 올라온다. 많은 경우 “병상이 없습니다”라는 당직 의사의 답신이 뒤따른다. 환자들의 정보, 예컨대 산소포화도가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거나, 호흡곤란을 호소한다거나, 구급차에 실려 떠돌고 있다거나, 임신 몇 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메시지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다.

새로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들은 대부분 심리적으로 불안해한다. 이 대표는 현재 상태와 앞으로 할 치료를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인다. “저희가 잘 보겠습니다. 안심하세요.” 어떤 환자들은 가지에 겨우 붙어 있는 나뭇잎 같다. 그들을 모두 구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다만 매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렇게 생각해요. 하나하나 천천히. 그렇지만 빠트리지 말고.” 병원 근처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마친 그는 서둘러 병동으로 돌아갔다. 12월22일, 알고 보니 이날은 그의 ‘오프 날’이었는데 말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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