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정백근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시사IN 윤무영

이상하지 않은가? 그 많은 병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OECD 국가 중 병상 수 2위, 건물마다 골목마다 병원 간판이 주렁주렁한 나라인데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열나거나 기침하는 환자는 왜 아무리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을까?

민간병원 대 공공병원 비율 95% 대 5%. 전 세계적으로도 유별나게 기울어진 이 수치를 지난 2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은 삶의 위협으로 직접 체감했다. 감염병 전담병원, 대면 외래진료센터, 집중관리군 관리 의료기관, 소아상담센터, 거점 분만의료기관, 전담 응급의료센터 등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받아준다는 병원의 종류와 명칭은 참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엑셀표를 열어보면 목록은 달랑 한 바닥, 카테고리마다 병원 이름이 다 겹쳤다.

그 한 줌 병원들 목록 안에서 환자는 ‘구급차 뺑뺑이’를 돌았다. 아기가 불덩이처럼 열이 나도, 임산부의 진통 주기가 짧아져도, 신장 투석 환자가 요독이 쌓여도 갈 병원이 없고 봐주는 의사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국가가 감염병 재난 시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원 자원이 딱 그만큼이었다.

자원의 풀(pool)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민간병원 참여를 유도했다. 수가를 높이고 지원금을 제시했다. 그래도 참여 병원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장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외래·입원 환자들도 있으니까,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시작하면 다른 환자들이 끊기니까, 한번 끊기고 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드니까, 환자가 안 끊기고 꾸준히 수익을 내야 의사와 간호사 월급도 주고 의료장비도 사고 병원 건물 리모델링도 할 수 있으니까.

코로나19 최전선에 참전한 공공병원은 앞으로 이 후유증들을 고스란히 겪을 예정이다. 공공병원은 오래전부터 그 의무만큼의 지원을 받아오지 못했다. 비슷한 출발선에서 민간병원과 경쟁하기를 강요당해왔다. 국가투자는 쥐꼬리만 했고 나머지는 다 경영수익으로 충당해야 했다. 민간병원만큼 수익을 못 낸다고 ‘부실 방만 운영’ ‘효율성 저하’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코로나19 대응 의무를 홀로 떠안았지만 이런 짐을 벗어놓지 못했다. 환자 수와 수익이 급감했다. 회복하기까지 4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도 나온다. 국가의 일을 도맡아 생긴 결과인데 책임은 알아서 지게 될 운명에 놓였다.

손상된 공공병원의 재생 없이,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이 오면 어떻게 될까? 공공병원 없이 민간병원이 알아서 그 짐을 나눠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병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공공병원들이 겪은 지난 2년, 그사이 입은 손상과 회복 방향,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논하기 위해 전문가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정백근 경상대 의대 교수(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대담은 4월19일 서울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집무실에서 이루어졌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코로나19 외래진료센터에서 간호사가 보드 펜으로 필요한 의약품을 유리창에 적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코로나19 기간에 공공병원들은 어떤 손상을 입었나?

조승연:코로나19 1호 환자가 우리 병원에 왔다. 그게 2020년 2월19일이었다. 이후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병상을 싹 비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델타 변이 때까지만 해도 환자의 거의 80%를 지방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이 봤다. 그동안 병원은 망가지고 있었다. 코로나19 환자만 치료하라고 하니 의사들이 못 견디고 많이 나갔다. 조직 문화도 깨졌다. 처음엔 모두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내부에서조차 서로 비교를 하게 됐다. ‘나는 코로나 환자를 보는데 왜 똑같이 대우를 받지?’ 혹은 ‘내가 나머지 일들을 다 하는데 왜 코로나를 안 본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안 주지?’ 등등.

주영수:돈 문제뿐 아니다. 공공병원에 입원하는 코로나 환자들이 다 중환자는 아니었다. 중등증 이하의 경증 환자들이 훨씬 많았다. 최근 2년 사이 들어온 신규 간호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하고 경증이나 단순한 환자들만 주로 본 거다. 그러다 중간에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소강상태가 돼서 일반병동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간호사들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운 거다. 갑자기 뇌·심혈관 질환이나 복합 질환을 앓는 중증도 높은 환자들을 어떻게 보냐면서, 그런 문제로 사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조승연:인천의료원 같은 경우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에 개원 이래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호사다마라고, 직후 코로나19 대응을 시작하면서 환자 수나 매출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꺾였다. 우리 의료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0년 정도 정부에서 그나마 투자를 좀 하고 안팎으로 다양한 노력을 해와서 전국의 절반 이상 의료원들이 흑자 전환을 막 하던 참이었다. 수익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료원들이 이제 자기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겠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하늘이 코로나19라는 시련을 내렸다.

회복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주영수:최소 3~4년은 걸릴 것이다. 최근 39개 감염병 전담병원의 경영 정상화 소요 기간을 분석해보니 환자 수와 의료 손익, 당기순손익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 각각 평균 3.9년, 4.5년, 3.5년이 걸린다는 예측이 나왔다. 회복하는 과정에 생기는 이 부담을 어떻게 할 거냐에 답이 없다. 특히 정부가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 입안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건지가 굉장히 걱정스럽다. 코로나19 대응에 모든 걸 바쳐 2년 반을 보낸 건 공공병원인데 ‘나라를 구한 건 결국 민간의료다’ 이런 평가를 하는 분들도 나타나고 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평가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거꾸로 가면 공공병원은 이제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

조승연:민간병원이 코로나19 대응에 적극 덤비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우려에 있었다. 내가 민간병원 원장이라도 못 덤벼들었을 거다. 공공병원이 마구 덤빌 수 있었던 까닭은, 공공병원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정부가 책임지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데 결국 정부에선 민간이나 공공이나 다 똑같은 병원으로 보는 것 같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의료 재난 대응에서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이 다른 까닭은 뭔가? 민간병원도 공공성을 띤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지 않나?

주영수:그동안 공공병원이 고생해오면서 들어온 얘기가 이런 거다. ‘니들은 민간병원만큼 능력이 안 되니 통째로 비워서 격리 시설이나 중환자 시설로만 쓰자.’ 또 일부 전문가나 행정가들은 ‘공공병원을 너무 지원하면 민간병원이 위축돼서 시장질서가 교란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놀라운 이야기다. 대체 어떤 사고방식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편향되게 민간 중심 의료체계에서 살다 보니 공공이 민간의 자유로운 시장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요인처럼 오해하기에 이르렀다. 선진국을 보면 아무리 시장주의를 중요시하는 나라들이라도 공공병원 비율이 최저 30%가 기본이다. 우리는 5%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시장 교란인가. 그동안 국민의 건강권 문제를 시장이나 경제 논리로만 봤던 이런 편향된 시각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정백근:민간병원도 공공의료를 못하란 법은 없다. 그런데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서부경남 공공병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민간병원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공공병원을 따로 설립하지 말라고, 자신들이 공공의료 사업을 맡겠다고 했다. 어떤 병원은 자기가 땅을 기부채납하겠다고도 했다. 여기다 병원을 지어주면 위탁운영 형식으로 자신들이 공공병원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라. 사실 많은 노인 요양병원들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절대 못 받아들이는 게 뭔가 하면, 바로 병원 지배구조의 민주적 변화다. 또 사업의 진행 과정을 외부에 드러내는 투명성이다. 이 두 가지는 공공성의 핵심이지 않나. 이걸 못하면서 공공의료를 구현할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굉장히 단견이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금세 공공사업을 접곤 한다. 지속적으로 병원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건 결국 민주적 운영 행태와 지배구조 변화다.

조승연:민간병원도 공공병원 역할을 할 수 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정부가 전국에 권역 지역 책임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한 적이 있다. 몇몇 민간병원도 여기에 참여했는데, 전제조건 중 하나가 병원 이사회에 공무원이 들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공공이 이사회를 장악하기는커녕 회계장부 하나도 오픈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공병원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민간병원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스스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돈을 잘 버는데 너희는 왜 도대체 집도 사주고 장비도 주고 하는데 만날 적자냐.’ 왜 그럴까? 그게 공공이기 때문이다. 적정 의료비를 받고 법을 다 지키고 운영을 투명하게 오픈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직원들 노동법을 다 지켜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해결하고, 의사들 월급 줄 때 세금 신고 100% 다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적용했을 때 존재할 수 있는 민간병원이 있다면 거기는 정말 존경받고 지원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1월11일 윤석열 당시 후보가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당선자는 민간병원에 공공정책 수가를 주는 방식으로 필수의료나 의료 재난 대응을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조승연:민간병원 거버넌스를 민주적으로 바꾸지 않은 현 상태에서, 공공정책 수가는 조금 과장하자면 국민 세금을 민간병원에 주겠다는 말의 변형된 표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의 백령병원을 민간병원이 위탁해 운영할 때 국가에서 지원을 해줬다.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2년 하다가 못하겠다고 손들고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인천의료원이 맡아서 지금 운영하고 있다.

감염병 재난을 전쟁에 많이 비유한다. 전쟁에 대비하려면 정규군이 일정 부분 있어야 하지 않나. 사설 용병으로만 어떻게 전쟁을 하나. 정규군을 튼튼하게 키운 상태에서 민간도 공공의 역할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지, 공공병원을 약화시키기 위한 논리로서 민간의 공공 역할을 얘기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정규군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조승연:코로나19 시기 대부분 지방의료원은 중환자를 못 보고 경증 환자들을 주로 봤다. 의사 인력 등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중환자는 감염내과 의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코로나에 걸린 투석 환자는 신장내과 전문의가 봐야 하는데 인천의료원에 현재 의사가 없어서 못 본다. 에크모를 돌리려면 흉부외과, 중환자의학과가 함께 해야 한다. 코로나 환자가 골절상을 입으면 정형외과 의사가 필요하다. 공공병원이 이런 감염병 중환자들을 다 볼 수 있게끔 그걸 목표로 삼고, 이번 계기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어야 한다.

주영수:단순히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료의 거점과 모범이 되는 책임 의료기관이 되도록 공공병원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지역 거점으로서의 책임 의료기관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환자들을 모두 그 의료기관에만 입원시키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지역의 책임 의료기관인 공공병원이 컨트롤타워 구실을 맡으면서 해당 지자체와 행정적인 협력 체계를 만들어내고 보건소, 지역 내 병의원, 권역 내 상급 종합병원까지도 연계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자는 얘기다.

이렇게 지역 내 의료전달 체계의 완전성을 갖추면 의료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던,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도 뜬금없이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병상을 배정받는 식의 일들이 사라진다. ‘안성병원 모형’ 같은 시범사업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됐다. 이제는 앞으로 ‘어디를 다 비워라’ ‘어디에 다 넣어라’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자칫 공공의료가 붕괴될 수 있다. 2년 반의 경험으로 이런 교훈도 못 얻으면 말이 안 된다.

2021년 1월12일 청와대 앞에서 보건의료 노조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 보건의료 노동자 이탈 실태 발표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러한 공공의료 체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주영수:국립중앙의료원은 1958년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원조 아래 460병상 정도 규모로 지어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명성이 높고 임상적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공공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지 않고 사실상 방치됐다. 그즈음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대형 민간병원들이 설립되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의사들이 그쪽으로 상당 부분 빠져나갔고 기능과 역할도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보면 그때의 추락하는 모습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금 뭘 할 수 있겠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특히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 기능이 이전됐다. 예를 들어 지금 의료원 내 공공보건의료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이 200명 정도다. 17개 지역 응급의료센터에도 70여 명이 근무한다.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정책의 거의 대부분이 국립중앙의료원을 통해 현장으로 내려간다. 공공의료기관들 대상의 지원 예산 배정, 성과 모니터링, 성과 평가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명실상부 공공보건의료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정백근:지금 17개 시도에 책임 의료기관들이 지정·육성되고 있고 공공보건의료 지원단이라는 정책 지원 조직이 거의 다 설립돼 운영 중이다. 그나마 이런 조직들이 지역 안에서 공공의료 사업을 기획하고 성과를 내는 과정들이 국립중앙의료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없다면 사실상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임상 기능은 좀 약하지 않나?

주영수:그동안 공공투자가 안 되어, 국립중앙의료원이 임상적 리더십에서는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의 역량을 폄훼하고 ‘너희가 뭘 해’라는 분위기가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억울한 면이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탓이라기보다는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던 과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였듯, 국립중앙의료원은 필요할 때 병원 규모나 인프라에 비해 중환자 치료 등 3차 병원 역할까지도 상당히 성공적으로 발휘했다. 앞으로는 더 달라질 거다. 임상 기능 강화를 위해 바로 옆 미공병단 부지에 새로운 국립중앙의료원을 지금 설계하고 있다. 지난주 월요일(4월11일)부터 미군기지로 쓰였던 그 터에 문화재 조사를 시작으로 첫 삽을 떴다. 지금 계획대로 간다면 2027년 정도에는 1000병상 규모의 명실상부한 상급 종합병원의 역량을 갖춘 국립중앙병원 모병원이 문을 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그 필요를 매우 절실히 느꼈던 중앙감염병병원도 150병상 규모로 함께 마련된다. 중증외상 환자를 보는 중앙외상센터도 100병상 규모로 생길 거다. 이렇게 계획대로 완성된다면 공공의료 전체의 핵심 컨트롤타워 역할을 국립중앙의료원이 제대로 하게 될 거다.

국립대병원의 역할은 어떻게 보나? 민간과 공공의 애매한 지점에 걸쳐 있는데.

정백근:국립대병원에서 6년 동안 공공보건사업실장을 하며 느낀 바가 있다. 법에 따르면 국립대병원은 확실히 공공병원이 맞다. 경영 목표에도 공공의료를 항상 넣는다. 하지만 실제 간부회의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공의료가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간혹 언제 다뤄지느냐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어떤 공공의료 사업 지정 센터를 유치하고자 할 때다. 갑자기 공공의료에 없던 관심이 생기고 예방의학과 교수를 부른다. 그리고 신청서에 의료 공공성에 대해 장황하게 써놓는다. 그래서 유치가 되면 또 잘 안 한다. 공공보건의료 사업실을 비정규직으로 채워서 조직을 키워놓는 정도다. 국립대병원이 수립해놓은 공공보건의료 계획서를 평가해보면, 지역 내 공공의료체계의 네트워크와 연계성을 포괄한 종합계획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인식이 없다. 단순한 ‘우리 병원 사업’ 그 이상으로 못 나아간다. 그 근본적 이유 중 하나가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가 교육부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공공의료 예산을 줘도 그 돈은 일종의 가외 프로그램을 하기 위한 돈으로 활용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조승연: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으로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가 지방의료원을 국립대병원에 위탁 운영하겠다는 거다. 단점과 장점이 각각 존재하지만, 국립대병원이 교육부 소속인 지금 상황에서 이 정책은 왜곡되기 십상이다. 특히 국립대병원 교수를 지방의료원에 파견하는 공공임상교수제가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게 새 정부 정책과 결합하며 위탁 운영을 실질화하는 매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백근:이미 몇몇 지방의료원의 경영 적자를 해소시킨다며 국립대병원과 일부 사립대병원이 위탁 운영한 바가 있다. 결과적으로 진료비가 올라갔다. 또한 자꾸 위탁에 맡겨버리면 지방의료원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자생력을 잃는다. 국립대병원 의사가 일정 기간 왔다가 나가고, 또 새로 왔다가 나가고, 그렇게 ‘땜빵’으로 운영되면 공공병원이 겉은 살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죽는다. 국립대병원이 어떤 상황에서는 공공의료를 훼손하고 약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조승연: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나. 왜 교육부에서 병원을 운영하지? 우리나라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부서는 보건복지부인데. 국립대병원이 정말 제대로 공공의료기관이 되려면 지금처럼 계속 교육부 산하에서 민간병원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거버넌스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관할을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국립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이 결국 한 가족이 돼야 맞다. 그렇게 되면 공공임상교수제나 위탁 운영을 논할 필요도 없다.

주영수:국립대병원도 병원마다 차이가 굉장히 크다. 서울대병원처럼 지원과 자원이 집중되는 데가 있는가 하면 당장 생존하기도 어려운 비수도권 지역의 중·소규모 국립대병원도 있다. 사실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으로 환자들을 안 빼앗겼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우선이다. 국립대병원 분원 설치, 혹은 지방의료원 위탁 경영이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건 수도권 중심의 고민일 뿐이다.

고열 발생을 이유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정유엽 군의 유가족이 2021년 3월2일 의료 공백 진상규명과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며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윤석열 정부에서의 공공의료, 무엇이 가장 걱정되나?

조승연:공공의료 분야마저 민간병원 중심으로 갈까 봐 우려된다. 공공의료를 명목으로 한 지원과 예산이 정작 필요한 공공병원에 안 가고 엉뚱한 민간병원으로 갈 수도 있다. 기존 공공병원을 모범적이고 역량 있는 병원으로 키우려는 의지가 잘 안 보인다. ‘공공병원을 직접 키우기는 부담스러우니 어디다 위탁시키면 알아서 하겠지’ 할까 봐 걱정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백근:현재 부산 서구, 경남 진주, 대전 동구 3곳에서 지방의료원 설립이 확정돼 있다. 모두 300병상 이상 규모이고 투입될 예산액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새 정부에서 엎을 순 없겠지만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경남의 적십자병원 2곳 등 이전 신축 계획을 세운 공공병원도 있다. 지방정부가 재정 부담을 하는 지방의료원과 달리 적십자병원은 보건복지부가 다 부담하기 때문에 축소시키기가 더 쉽다. 신축 결정은 났는데 부지를 못 정한 병원들도 있다. 이런 경우 아예 계획 자체를 없애버리는 상황들도 발생하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하다.

주영수:‘공공병원은 원래 비효율적이고 역량이 떨어진다’는 회의론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이 프레임이 앞으로 조금 더 강화될까 우려스럽다.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이라는, 어떤 정부든 5년마다 수립하고 실행하게끔 법으로 정해진 마스터플랜이 있다. 올해가 그 2차 계획의 두 번째 해다. 공공의료 100년 대계를 이미 세워놓았다. 새 정부에서도 부디 이 계획에 따른 집행을 차질 없이 진행해주길 바란다.

조승연:코로나19 손실보상금으로 지금 거의 4조원 가까운 돈이 의료기관들에 풀리고 있다. 이 중 민간병원에 90%가 들어갔다. 3년 뒤일지 5년 뒤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오면 그때 그 돈의 효용이 돌아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때는 민간병원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할 거다. 4조원의 반만 공공병원에 투입했더라면 팬데믹이 왔을 때 아주 유용한 무기로 쓰일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그렇게 잡아서 공공의료기관들을 수준 높은 병원으로 키우는 것이 코로나19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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