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확진된 노인들은 요양원 꼭대기 층에 격리돼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가자 1층과 또 다른 긴장감이 어른거렸다. 이 공간 중앙의 간호사실에선 요양원 소속 간호사 한 명이 무얼 하는지 분주했다. 전신 방호복 밖으로 삐져나온 잔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다. 이 요양원에서는 3월14일부터 일주일째 매일같이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는 직원과 입소자를 가리지 않았다. 확진된 요양보호사들이 확진된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었다.

안성병원 방문진료팀 김선영 팀장은 이 간호사를 붙잡고 그날 진료할 입소자들의 정보를 체크했다. 김 팀장이 미리 정리해온 표에 적혀 있는 인원은 총 21명. 이름 옆에 쓰인 ‘진단’ 칸에는 치매, 고혈압, 파킨슨, 뇌졸중, 와상 등 한 사람당 적어도 두세 개의 기저질환이 적혀 있다. 가장 끝 방인 1호부터 진료가 시작됐다.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는 임승관 안성병원 원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의료진의 방문을 알리며 방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안성의료원에서 의사랑 간호사가 왕진 왔어요!”

안성. 경기도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인구 18만명의 중소 도시. 변화의 조짐이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 오래된 고장. 이 도시에서 작지만 어디에도 없던 움직임이 시작된 건 2022년 3월의 일이다. 지역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친근감을 담아 ‘안성의료원’이라 부르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3월21일 월요일 오전 10시, 안성병원 3층 회의실. 아침 8시쯤 출근해 벌써 초록색 가운으로 갈아입은 전지은·윤현정·서경화 간호사가 나란히 회의실에 들어왔다. 회의 시작 15분 전 다급하게 병원 입구를 통과한 임승관 원장도 제시간에 자리에 앉았다. 김선영 팀장은 미리 출력해온 한 장짜리 회의 자료를 팀원들에게 돌렸다. ‘2022년 3월21일 월요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요양시설 재택치료 일일 보고.’

“대장님, 간략하게 브리핑해주시죠.” 임승관 원장이 김선영 팀장을 향해 말했다. ‘대장님’은 방문진료팀 팀원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선영 팀장을 부르는 호칭이다. 김 팀장은 29년 차 간호사다. 15년은 병동에서 근무하고, 14년은 공공사업과에서 가정간호사업을 담당해왔다. 지난 3월7일, 안성병원에 ‘요양시설 코로나19 방문진료팀(이하 안성병원 방문진료팀)’이 꾸려지며 팀장으로 낙점됐다.

“어제는 주말이라 신규 등록 환자가 7명 정도였는데 이번 주는 밀려들 거 각오해야 할 거예요.” 오미크론 대확산으로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30만명에서 50만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안성 지역에 위치한 크고 작은 요양시설에도 집단감염이 들불처럼 번졌다. 안성병원 방문진료팀에 등록된 요양시설은 13곳이다. 관리 대상인 요양시설 내 확진자가 90명으로 늘었다.

김선영 팀장은 그날 진료하러 갈 두리요양원에 대해 설명했다. 각 요양원의 확진자 규모와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해 그날 방문할 시설을 선정하는 것도 ‘대장님’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다. “지난주에 한 차례 다녀온 곳이에요. 이후에 추가로 25명이 더 확진되었고요. 입소한 어르신이 200명가량 되는 꽤 큰 시설입니다.”

경기의료원 안성병원 요양시설 집중관리팀원들이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있는 경기도 안성의 요양원 진료를 나가기 전 회의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나흘 동안 ‘요양시설 방문진료’ 동행 취재

10시30분에 아침 미팅이 끝나자 팀원들은 각자의 업무를 향해 빠르게 흩어졌다. 오전에 방문진료를 나가는 멤버는 임승관 원장, 김선영 팀장, 배현석 임상병리사. 김선영 팀장은 3월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안성병원 방문진료팀을 동행 취재하게 된 〈시사IN〉 기자들을 휘휘 둘러보더니 방호복 두 세트를 더 챙겼다. 오전 11시10분 안성병원 정문을 빠져나가는 차 안에서 김 팀장이 전화를 걸었다. “예, 시설장님. 지금 안성의료원에서 출발해요. 11시40분 정도에 도착할 거예요.” 내비게이션이 안성시와 용인시 경계에 가까운 북쪽 방향을 가리켰다.

정부가 요양시설 입소자에게까지 코로나19 재택치료를 확대한 건 오미크론 유행이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던 지난 2월 중순이다. 요양시설 입소자에게 ‘재택’이란 요양시설 내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을 뜻한다. 관내 요양시설의 재택치료 관리 의료기관을 맡으라는 공문이 내려왔을 때, 임승관 원장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병원의 여러 기능이 중단된 상태였다.

공공병원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다. 2년 넘도록 병실은 코로나19 환자들로 채워졌다. 요양시설이 아닌 일반 확진자 재택치료는 이미 지난해부터 담당하고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 병원장까지 당직을 서는 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임 원장이 깊은 한숨을 내쉰 까닭은 아니었다. 지난 2년 지방의료원 병원장으로서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데에는 어느덧 이골이 났다.

임승관 원장이 보기에 요양시설을 재택치료로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다. 요양원 입소자들을 집중관리군으로 분류해 하루 두 번 모니터링 전화를 한다 해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공산이 컸다. 입원 치료가 능사라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치명률이 낮아진 오미크론 특성상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일지라도 백신을 맞았다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단감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그들 모두를 입원시킨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코로나19에 걸린 입소자를 요양시설에서 자체적으로 케어한다는 계획은 이론상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장 상황을 ‘보고’와 ‘서류’로 접하는 대다수 중앙 관료들과 달리 요양시설의 ‘리얼리티’를 알고 있었다. 임승관 원장은 2020년 2월부터 1년5개월 동안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을 겸임했다. 단장을 맡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군포의 한 요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상가 건물에 노인 30여 명이 입소해 있는 소규모 요양원이었다. 겁먹은 직원들은 출근을 하지 않았고, 요양보호사 한두 명이 남아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었다. ‘요양원에 남겨진 노인 수십 명이 기저귀도 제때 갈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안성병원 코로나19 대면외래진료센터 격리실에서 요양원에서 온 코로나19 환자가 진료를 받는 모습. ⓒ시사IN 이명익

임 원장은 요양원으로 대변되는 장기요양시설 보호가 팬데믹 대응의 8할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2020년 3월 내내 상급종합병원에 사정을 해가며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열 몇 개 겨우 확보했어요. 요양원 한 곳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니까 한나절 만에 다 차버리더라고요. ‘이게 팬데믹이구나’ 정신이 확 들었죠. 지금은 오미크론이라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80대 이상 치사율이 20%에 달했어요. 그 요양원에서도 많이 돌아가셨어요.”

집단감염이 터진 이후에 움직이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요양시설을 보호할 방법을 미리 찾아야 한다고, 그것이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앞줄에 놓여야 하는 의제라고 기회가 닿는 대로 외치고 시스템화하려 애썼지만 중앙정부도, 전문가들도, 언론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도권 병상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던 2020년 12월, 임승관 원장은 정부를 향한 신뢰를 접었다. “그때 요양시설 ‘병상 대기자’가 엄청 늘어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중수본에서 요양시설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를 한다고 발표하더니 다음 날 바로 ‘병상 대기자’가 0명이 됐어요. 코로나19에 걸린 노인들이 치료를 못 받고 시설에 누워 있는 건 그대로인데 분류가 ‘병상 대기자’에서 ‘코호트’로 바뀌면서 통계에서 사라진 거예요. 그 어르신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정부는 시설에 있는 노인들을 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구나.”

경기도 안성의 한 요양원의 코로나 확진 환자가 정맥주사를 맞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리고 2022년 2월. 요양시설 대응이 전면 ‘재택치료’로 전환되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입소자들은 이제 외부 전담병원의 입원 병상으로 가는 대신 ‘정책적으로’ 요양시설에 남게 됐다. 방호복은 어디에서 구해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 확진자와 접촉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감염된 노인들의 어떤 증상을 살펴야 하는지, 놀란 보호자들에게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지난 2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며 익혔어도 모자랐을 임무들이 하루아침에 무더기로 요양시설 앞에 떨어졌다.

그런 면에서 2022년의 요양원은 2020년 4월 군포의 ‘그 요양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는 요양원 직원들에게 도움을 줄 곳이 필요했다. 숨이 차고 맥박이 희미해져도 의사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링거 한번 꽂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비극에 더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안성병원 의료진이 요양시설 코로나19 방문진료팀을 꾸린 이유다. 임 원장은 이 프로그램이 “일종의 속죄 의식”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으로) 있을 때 노력했지만 안착시키지 못했던 일을 안성에서라도 해보자, 우리 힘으로 지역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지켜내보자 싶었어요.”

3월21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 안성병원을 빠져나온 방문진료팀은, 아직 봄보다는 겨울의 기운이 짙은 시골길을 30여 분 달려서 두리요양원에 도착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이었다면 입소 노인들이 소소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했을 1층 로비에 적막이 흘렀다. 방문진료팀을 맞이한 요양원 직원이 ‘가족 면회실’이라고 적힌 방으로 의료진을 안내했다. 지금은 방호복을 착용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직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김선영 팀장이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따가 방호복을 벗으면 쏙 넣어서 버릴 수 있도록 종이 상자에 비닐 씌워서 하나만 준비해주세요.”

김선영 간호사(오른쪽)와 배현석 임상병리사가 요양원에 도착해 방역복을 입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안성병원에서 가져온 봉투를 뜯자 5종 보호구 세트가 나왔다. 우선 양발에 덧신을 신고, 전신 가운을 두른 뒤, 헤어캡, N95 마스크, 페이스 실드 순서로 착용했다. 라텍스 장갑은 가장 마지막에 낀다. 방호복 착용을 마친 임승관 원장이 청진기를 챙겼다. 직접 환자의 숨소리를 듣는 데에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요양원 노인들에게 의사와 간호사가 왔다는 걸 알리려는 상징물로서의 용도가 크다.

임승관 원장 등이 요양원 꼭대기 층의 확진자 방에 들어섰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에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여성 노인 3명이 보호복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출현에 미세하게 술렁였다. 임 원장은 창가 쪽 침대에 누워 있는 김도순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주름진 손이 라텍스 장갑을 낀 하얀 손을 맞잡았다. 김씨는 희미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임 원장은 옆에 있는 요양보호사를 찾아 열이 나는지, 식사는 평소처럼 하는지 물었다. 방문 진료에서는 많은 시간이 입소자를 직접 돌보는 요양보호사와의 대화에 할애된다. “제일 중요한 건 ‘평상시하고 요즘하고 기력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예요. 입맛, 활기, 눈동자의 힘, 표정 같은 것.”

요양원에 있던 코로나19 환자가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구급차에서 내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의료계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랩(lab·검사)보다 때깔(안색)이다.’ 그만큼 환자를 직접 보고 진료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안성병원 방문진료팀이 매일같이 이 요양원을 찾을 수는 없다. 입소자의 평소 컨디션과 습관을 잘 아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의 상태와 변화를 알아채고, 하루 두 번 병원과의 전화 모니터링에서 제때 전달하는 것이 요양시설 재택치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문 진료는 일차적으로 의료사업이지만, 요양원이 코로나19에 걸린 어르신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의지를 북돋아주는 활동이기도 하다고, 임 원장은 생각한다.

4호 방에 들어서자 문가 침대에 앉아 있던 임효섭씨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기운이 좋아 보이는 임씨와 달리 가운데 침대에 누워 있는 박정기씨는 축 처진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청진기 좀 대볼게요.” 김선영 팀장이 웃옷을 잡고 있는 사이 임승관 원장이 그의 배와 등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다. 청진을 마친 임 원장이 배현석 임상병리사에게 ‘랩(혈액검사)’을 주문했다. 랩 오더가 나오면 임상병리사는 그 환자의 피를 채혈하고, 병원으로 가져가 한 시간 안에 혈액검사를 마친다. 임 원장은 검사 결과와 문진 내용을 바탕으로 팍스로비드(경구용 치료제)를 처방할지, 렘데시비르(항바이러스제) 주사 요법을 시작할지, 며칠 더 경과를 관찰할지 판단한다. 상태가 심각하다면 바로 입원을 결정한다. 이날 진료한 환자 21명 가운데 7명에게 ‘랩 오더’가 붙었다.

요양원 노인들의 머리맡에는 이름과 함께 나이, 입소 날짜가 적혀 있었다. 90세 박정기씨는 2016년 요양원에 들어왔다. 81세 임효섭씨는 2017년부터 이곳에서 생활한다. 95세 김도순씨는 10년 넘게 요양원에서 지냈다. 입소자 대부분이 인생의 마지막 수년에서 10여 년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있다. 팬데믹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공간이지만 모두 쉽게 고개를 돌린 건 요양시설에 어떤 이들이 머무르는지 공통의 암묵적인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난 시기에 중요한 가치란 그저 살리고, 살아남는 일뿐일까.

3월21일 저녁 무렵, 안성병원으로 돌아온 김선영 팀장은 환자 보호자와 한동안 통화를 했다. 오전의 두리요양원 방문 때 진료했던 오양순씨 가족이다. 오씨는 코로나19에 걸리기 이전부터 생의 맨 끝자락에 접어들어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가망이 없어 보였다. 가족들은 DNR(연명치료 중단 동의서)을 쓰고 이별을 준비해왔다. 오전에 채혈해온 혈액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무척 나빴다. 임승관 원장은 항바이러스제 주사 요법을 처방하기 전에 요양원 측에 가족과 상의해볼 것을 요청했다. 가족들이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어 할머니의 자녀 중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안성병원 요양시설 방문진료팀의 윤현정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에게 정맥주사를 놓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

그는 김선영 팀장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편히 보내드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결정을 내리니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김 팀장은 “제가 병원에 간호사로 오래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라고 말문을 열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본인이라면 치료를 받지 않으시게 했을 거라고, 지금도 힘든 상황인데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해서 조금 더 사시게 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다고, 가족이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고.

김선영 팀장은 방문진료팀의 임무에 ‘잘 보내드리는 것’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안다. 의료진이 요양시설에 찾아가 환자를 보고 최선의 판단을 내려 가족들에게 숙고할 시간을 준 뒤 찾아온 죽음과, 광풍에 휘말려 통보받듯이 맞이한 죽음이 같을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의료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다. 보호자와 통화를 마치고 새로 들어온 환자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3월22일 오후 2시. 윤현정 간호사가 4명분의 정맥주사제가 담긴 봉투를 들고 안성병원 구급차에 올라탔다. 두리요양원을 포함해 두 곳의 시설을 다녀오는 일정이다. 임순자·박정기·최만수씨는 항바이러스제인 렘데시비르를 처방받았다. 전해질 포도당 수액인 하트만덱스액은 고덕순씨의 약이었다. “고덕순 할머니는 식사를 잘 못하시나 봐요”라고 윤 간호사가 말했다.

오전에 임승권 원장 등이 요양원 진료를 다녀와 처방을 내리면, 오후에는 ‘액팅(acting) 간호사’ 역할을 하는 방문진료팀이 나선다. 전지은·서경화·윤현정 간호사가 번갈아가며 주사 처치를 위해 출장을 나간다. 3월22일은 윤현정 간호사의 순서였다. 액팅 간호사가 구급차를 타고 요양원을 찾아다니는 사이 안성병원 4층 사무실에 남은 간호사 2명은 관리 중인 요양시설 13곳에 연락을 돌리며 재택치료 대상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전화 모니터링을 맡는다.

전지은·서경화·윤현정 간호사는 각각 26년 차, 23년 차, 22년 차이다. 29년 차 김선영 팀장까지 간호 경력 20년 넘는 간호사 4명이 한 팀을 이루는 일은 병원에서 보기 드물다. 노련하면서도 유기적인 팀을 만들고자 했던 병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팀원들끼리는 ‘나이 먹고 무수리처럼 일한다’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 베테랑 간호사들에게도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의료적 처치를 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노인들은 혈관에 탄력이 떨어져 주사 놓을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날도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어르신들을 겨우 달래가며 주삿바늘을 꽂느라 진땀을 뺐다. 3월7일 방문진료팀이 결성된 이후 16일 연속 근무였다. “그래도”를 윤현정 간호사는 자주 문장에 붙였다. “고생스럽지만 그래도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방문 진료가 더 좋아요. 병원에 계시면 시설에서처럼 케어를 받기가 어렵거든요.”

경기의료원 안성병원 요양시설 집중관리팀원인 윤현정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경기도 안성의 한 요양원에 도착 방진복을 착용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3월24일 오후 3시, 안성병원 5층 51병동. 창문에 연결된 음압기가 툴툴툴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이진배 할아버지는 무료한 듯 누워 있었다. 그는 임승관 원장이 5층 병동에서 주치의를 맡은 코로나19 확진 환자 4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환자다. 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병동으로 옮겨 입원한 노인들은 대부분 병원 말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지남력)이 안 서는’ 환자다. 여기가 안성병원인지 요양원인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노인들의 건강에는 익숙한 이들의 ‘돌봄’이 치료 못지않게 필수적이다. 전담병원의 격리병상에서는 쉽게 제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임승관 원장이 병동 회진을 하는 동안 507호실 김경자 할머니는 입에 손을 갖다 대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요양보호사라면 손짓의 뜻을 알아채고 필요한 조치를 곧바로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병동 간호사들로서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환자의 필요를 파악하기 어렵다.

확진자가 나온 요양원 중에는 패닉에 빠져 되든 안 되든 마구잡이로 병상 배정을 요청하는 곳이 적지 않다. 불안한 보호자도 왜 어서 부모님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느냐고 요양원을 채근한다. 하루 두 번 전화 모니터링으로는 잠재우기 어려운 불안이다. 안성병원 방문진료팀은 요양원을 찾아가 안면을 트고, 환자 상태를 살피고, 격리 해제가 될 때까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잔뜩 위축돼 있던 요양원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하루하루 목격한다. 이른바 ‘라포르(rapport·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이 경우에는 요양원), 의료진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면 비로소 꼭 필요한 환자만 입원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진배씨는 방문 진료 프로그램을 통해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를 찾아낸 경우다. 이틀 전인 3월22일 전화 모니터링으로 확인한 ‘바이털 사인(혈압·맥박·산소포화도 등)’ 수치는 안정적이었다. 할아버지가 구토 증세를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윤현정 간호사가 요양원에 들러 채혈을 해왔다. 혈액검사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튿날 안성병원 코로나19 대면외래센터로 모신 다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렴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곧바로 입원이 결정됐다.

임승관 안성병원 원장이 요양원에서 진료하던 중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다만 “우애와 연대”라고 답했다

3월24일 병동 회진을 돌며 이진배씨 병실을 찾은 임승관 원장이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그날 오전 방문 진료로 마침 이씨가 있었던 실버요양원에 다녀온 참이었다. 이진배씨는 아내인 정순옥씨와 함께 그 요양원에서 지내왔다. 이씨가 먼저 코로나19에 걸리고 뒤이어 정씨까지 양성 판정을 받았다. 3월24일 오전 요양원에서 만난 정순옥씨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치매가 심한 정씨는 평소에도 남편 이외 사람들의 접근을 극도로 경계했다고 한다.

“오늘 어디 다녀왔게요? 실버요양원에 아내 분 보러 갔다 왔지. 할아버지는 입원했는데 할머니는 별문제 없는지.” 표정 없이 누워 있던 얼굴에 화색이 스쳐 지나갔다. “만…만났어요?” 할아버지가 더듬거리며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안식구는 그… 먹는 거 챙겨주고, 그… 충전하는 것도 모르고, 아니 그거를 내가 (요양원에) 얘기를 해주고 왔어야 되는데···. 그냥 두면 안식구가 그 박카스를 먹으면 그냥 통째로 열 개고 스무 개고 먹어요. 게토레이에 그걸 섞어서 줘야 한다고.” 숨을 쌕쌕거리면서 아내 걱정을 늘어놓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임승관 원장이 말했다. “근데 할아버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폐렴이 너무 심했어. 바로 입원을 안 하면 안 될 만큼. 오래 잡고 있지는 않을게요. 최대한 빨리 가서 아내 분이랑 있게 해드릴게.” 침상 옆 폴대에 걸린 주머니에서 조금씩 수액이 떨어지고 있었다.

렘데시비르 주사 5일 요법이 끝난 3월28일 상태가 많이 호전된 이진배씨는 요양원으로 돌아갔다. 김선영 팀장이 요양원에서 전해온 소식을 방문진료팀 단체대화방에 공유했다. “다행히 이진배님 퇴원 후 부인 정순옥님도 수액 끝까지 잘 맞고 컨디션 좋다고 합니다. 입원 중 안성병원 밥은 맛있었다고 합니다.”

경기의료원 안성병원 코로나 확진 환자 외래진료센터 음압격리병동 안 간호사가 보드 펜으로 필요한 의약품을 유리창에 적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재난의 구체적인 형태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족함’일 것이다. 병상이 고갈되고, 의료진은 소진되고, 돌봄망은 쪼그라들고, 예산은 바닥난다. 주위를 살피는 여유와 인내심도 점차 희박해진다.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자원이 돌아갈 수 없는 탓에 재난기의 희생은 온전히 피할 길 없는 숙명이다. 재난을 맞닥뜨린 공동체에 주어진 선택지는 어쩌면 희생을 대하는 태도뿐일지도 모른다. 요양시설 방문 진료를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물었을 때 임승관 원장은 어떤 가시적 수치나 성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애와 연대”라고 답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확진자 규모가 작았다든지, 사망률이 낮았다든지, 세계 최초로 엔데믹을 맞는 나라가 될 거라든지 하는 기록들이 한국 사회의 공식적 기억을 빠르게 채워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이들이 있다. 3월24일 저녁 6시, 안성병원 방문진료팀 단체대화방 알림음이 울렸다. “대장님, 내일은 어디로 가나요?” 저녁 6시30분 김선영 팀장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소망요양원에 가볼까요?”

안성병원 요양시설 방문진료팀의 앰뷸런스가 요양시설에서 치료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안성/글 김연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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