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통사고 다발 지역 데이터를 들고 무작정 현장으로 나갔다가 때로는 사고를 당한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아이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했다.ⓒ시사IN 이명익

“저기요… 저 그 얘기 안 하면 안 될까요?” 아이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물었다.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 취재를 나간 출장지에서였다. 사고 다발 지역 데이터를 들고 무작정 현장으로 나갔다. 사고 발생 지점들을 둘러보고 인근 아이들이 다닐 만한 동선 이곳저곳을 걸어보았다.

한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여럿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신분과 취재 목적을 밝히고 물어보았다. “혹시 이 근처에서 또래 친구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나요?”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다가 한 남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맞다, 쟤 있잖아요, 재작년에 저기서 사고 났었어요.” 사고 당사자를 만났다는 반가움(?)에 아이에게 다가가 질문을 쏟아냈다. “정말요? 사고 났었어요? 언제요?” “재작년 7월….” “어디에서요?” “(인근 한 지점을 가리키며) 저기….”

엑셀 표를 확인해보니 정말 바로 그 시기 그 장소에서 사고가 있었다. 성별과 나이도 딱 맞아떨어졌다. 데이터 속의 당사자를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다소 흥분해 더 꼬치꼬치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요… 기자님, 저 그 얘기 안 하면 안 될까요? 떠올리기가… 싫어요.”

순간 입이 얼어붙었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다른 아이들이 옆에서 속삭였다. “쟤 그때 엄청 고생했어요. 허벅지가 부러져서 1년 반 동안 휠체어 타고 깁스하고 맨날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줬어요.” 그런 아이에게 아팠던 기억을 소상히 말해달라고 요구했다니. 미안함에 얼굴이 벌게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고 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2019년 7월1일 월요일 오후 5시, 피해 아동 7세 남아, 승용차에 의한 중상 사고. ‘중상’이라는 두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아이의 아픔과 상처를 생각했다. 그 고통의 기억을 아이들에게 굳이 캐묻지 않아도, 알아서 깊이 헤아릴 줄 아는 게 어른의 역할이겠다 싶었다. ‘스쿨존 너머’ 특별 웹페이지(beyondschoolzone.sisain.co.kr)에 올려놓은 그 반성의 기록과 캠페인에 독자들도 많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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