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아동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민선씨는 지난여름 인터넷에서 어떤 아기가 등장하는 영상을 하나 보았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 속에서 말(horse)로 변해버린 보호자의 얼굴을 보고서였다. SNS에서 유행하는 ‘필터’ 놀이 영상이다.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와 그를 보고 웃는 보호자의 모습이 온라인에 업로드됐다. 시청자들도 우는 아이를 보고 웃었다. “ㅋㅋㅋ 완전 귀엽다” “아 난 아기가 없어서 못해보겠네”….

김민선씨는 이 영상과 반응들(똑같은 내용의 영상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이들이 사람의 고통을 보고 좋아하는 거잖아요. 아동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어떤 다른 존재로, 추상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영상을 보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선씨는 이런 종류의 찜찜함을 주는 영상을 하루에 열 번 넘게 시청해야 했다. 지난 7~9월 아동권리보장원이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 ‘온라인 콘텐츠의 아동 인권 보호 모니터링’에 참여하면서다. 김씨를 비롯한 아동 권리 보호에 관심 있는 청년 ‘영세이버’ 23명이 하루에 10여 개씩 열흘 동안 아동이 출연하는 영상들을 살펴봤다. 유튜브 키즈 채널 상위권의 영상, 특정 검색어로 걸리는 영상, 자동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등 아동이 출연하는 2000여 개 영상이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모니터링단은 문제의 영상들을 카테고리별로 나눈 체크리스트를 들고 아동 권리 침해가 우려되는 지점을 살폈다. 2000여 개 중 1588개 영상의 체크리스트에 Ⅴ 표시가 찍혔다. ‘아동 최우선의 이익 침해’ 분류가 가장 많았고 ‘사생활 침해’ ‘정서적 고통’ ‘교육적·윤리적 부적합’ ‘신체적 위험 상황 연출 및 강요’ 등이 뒤를 이었다.

대학생 김민희씨(사회복지학과 4학년)는 모니터링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동 유튜브 영상’이라 하면 대개 아동들이 주체로 안전하고 재미있게 노는 내용일 줄 알았다. 영상들을 여럿 재생하다가 김민희씨는 적잖이 놀랐다. “자극적인 섬네일, 아이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분장 영상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동을 위험한 상황에 두는 장면을 연출하거나 차별적인 발언이 나오는 등 아동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거나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 내용의 콘텐츠들이 많았다.”

김민선씨는 “아동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협찬받은 옷이나 신발, 문구류를 리뷰하는 제품 홍보 영상, 아주 크거나 혹은 터트려 먹는 젤리가 나오는 ‘먹방’ 영상, 감옥에 갇힌 수감자가 된 아이가 편의점 음식을 배식받아 먹는 상황극 영상, 보호자가 할머니 가면을 쓰고 아이를 속이는 몰카 영상 등을 봤다. 김민선씨는 정말 아동이 ‘원해서’ 기획되고 촬영되고 업로드된 콘텐츠인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음식을 앞에 놓고, 구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들면서도 참고 ‘먹방 미션’을 수행하는 어린 유튜버의 모습을 보면서는 “아동이 자기 스스로를 유튜브 콘텐츠의 도구로 인식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상에서 아이들은 웃고 있었지만…

〈시사IN〉은 모니터링단이 아동 인권 침해 요소를 발견한 영상 1588개를 중심으로 유튜브 영상 속 어린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확연히 눈에 띄는 신체적 폭력과 학대는 없었다. 아동들은 재미있게 놀이하(는 것처럼 보이)고 맛있게 음식을 먹는(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이 아동의 부모인 영상 제작자(촬영자)는 존댓말로 아동의 의사를 묻고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어요?” “네, 맛있어요.” “재밌어요?” “네, 정말 재밌어요.” “안 무서워요?” “네, 안 무서워요.” “~해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정말 맛있을까? 유튜브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대용량의 젤리, 과자, 아이스크림 따위를 제한된 시간 안에 먹어치우는 ‘미션’을 수행한다. 유튜브에서 요즘 최고 유행 먹거리는 꿀젤리, 눈알젤리 등 특이한 소리와 모양을 내는 간식류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얼굴에 볼터치를 한 아이들은 이것들을 샌드위치에 발라 먹고 초코와 섞어 먹는가 하면 녹아서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먹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산낙지를 씹어먹고 통 벌집도 먹고 불닭소스도 여기저기 발라 먹는다. 삭힌 홍어와 닭발을 소주잔에 부은 우유와 함께 먹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는 50시간을 굶고 나서 매운 떡볶이와 치킨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구독’과 ‘좋아요’를 요청한다.

정말 재미있을까? 유튜브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협찬받은 장난감을 갖고 놀이를 한다. ‘언박싱(포장을 푸는 과정)’부터 시작해 장난감의 구성과 사용법을 ‘진행형 말투’로 소개하고 성인 보호자의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추어 “여러분들도 정말 하고 싶지 않나요?” “음~ ○○○(제품명) 정말 재미있는데요?” 따위 상품 홍보 멘트를 카메라를 향해 날린다. 혹은 부모가 준비해놓거나 구독자가 제안하는 놀이를 한다. 대개 상과 벌칙이 걸려 있는 게임이다. 이기면 선물이나 용돈을 받고, 지면 딱밤을 맞거나 얼굴에 낙서를 당한다. 식사를 굶거나 밤새 잠을 못 자는 벌칙도 있다.

구독자 요청에 따라 어떤 (부모) 촬영자는 아이가 먹던 사탕을 빼앗아 울리며 그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다. “너 사실 내 딸(아들) 아니야.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는 부모(촬영자)의 거짓말에 울고 불안해하는 어린 자녀들의 ‘몰래 카메라’도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영상 아이템이다.

지난해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인터넷 개인방송 출연 아동·청소년 보호지침’.ⓒ시사IN 조남진

요즘 키즈 유튜브 채널에서는 특수 영상효과 등 기술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력이 ‘출연 아동’ 혹은 ‘시청 아동’이 보기에 끔찍한 영상들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정 음식을 먹으면 등장인물의 얼굴이 괴물로 변해서 아이들을 위협하고, 과일로 변한 아빠를 부엌칼로 썰기도 한다.

특히 최근엔 19세 이상 관람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설정을 따라 하는 아동 출연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부모와 함께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리코더 배경음악 속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을 하는 영상은 그나마 양반이다. 적지 않은 아동 유튜브 영상에선 게임에서 진 사람이 죽거나 공격당하는 설정을 그대로 상황극으로 수행한다. 영상 중간중간에 도박, 빚, 대출, 사기, 배신, 자살 같은 키워드가 툭툭 튀어나온다. 아이들이 그런 단어와 내용이 포함된 대사들을 직접 읊는다. 어린 자녀와 부모가, 드라마 설정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의 ‘오징어 게임’ 방에 함께 참여해서 그 영상을 유튜브로 중계하기도 한다. 끓는 물 속에 사람이 들어 있고 연쇄살인마가 나타나 사람들의 목을 조르는 어떤 게임 중계 영상도 키즈 유튜버와 보호자들이 자주 즐기고 시청자에게 공유하는 인기 콘텐츠다.

어떤 영상 속에서 제작자(부모)는 이제 막 세상과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한 자녀에게 ‘댓글 읽어주기’를 한다. “○○이 너무 예뻐요” “○○이 귀여워~ 삼촌이 사랑한다!” “○○이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지지!” 닉네임으로 전해지는 익명의 랜선 이모·삼촌들의 칭찬과 훈수에 아이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참았다가 내뱉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가 미간을 찡그리고 집중한다. “XX(닉네임)님 저도 사랑합니다~”라며 팔로 하트를 그리고 구독자들을 위한 이벤트 선물을 직접 포장하기도 한다. 모두 4~7세 미취학 아동이다. 김아미 박사(경인교육대학교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는 “익명의 대중과 얼굴·생활이 몽땅 노출된 아동 사이엔 비대칭 권력관계가 발생하기 쉽다. 아이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외모와 행동 등을 평가받으면서 압박감을 느끼고, ‘어떤 특정 행동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구나, 싫어하는구나’ 하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기 삶의 주체성을 잃어간다. 아이돌 스타나 연예인들이 겪던 문제가 이제 유튜브를 찍는 일반 어린이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라고 말했다.

혹은 영상들 속 여자아이에겐 공주 놀이, 남자아이에겐 왕자 놀이를 시킨다. 영어 노래 배우기 영상에서 엄마(Mommy)는 선글라스를 끼고 명품 백을 든 채 전화 통화를 하고 아빠(Daddy)는 와이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다. 장난감을 ‘정상’과 ‘비정상’ ‘애꾸’ ‘못난이’ 등으로 나눈다. 출연 아동이나 성인이 누군가를 놀리고 공격할 때 특정 인종과 민족을 빗대기도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배상률 청소년미디어문화연구실장은 출연 아동과 시청 아동 모두에게 이런 영상으로 얻은 경험이 ‘사회현실 구성(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기능을 한다는 점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가치관 형성 과정 중에 있는 아동·청소년들이 영상을 통해 왜곡되고 편향된 모습의 세계를 반복적으로 전달받으면 그들은 그 세계를 거부감 없이 현실의 세계로 받아들이게 된다.”

관점을 뒤집어야 해법이 보인다

이 같은 온라인 영상 속 아동 권리 침해에 대한 사례와 심각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공론화되어왔다(〈시사IN〉 제631호 ‘‘‘구독’되는 아이의 삶, ‘구속’되는 아이의 인권” 기사 참조). 구글 등 영상 플랫폼 사업자들은 일부 키즈 콘텐츠에 댓글과 맞춤 광고를 제한하는 등 규제를 도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해 6월 ‘인터넷 개인방송 출연 아동·청소년 보호지침(이하 보호지침)’을 만들어 발표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청소년보호 책임자 제도’에 따라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보호지침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 1년에 한 번씩 서면 점검과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호지침은 그러나 강제력이 없다. 권고 사항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자율적 권고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지속되고 심각해지면 법적 의무 사항으로 승격시키자는 논의가 밖에서도 있고 내부에서도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규제가 만능은 아니다. 인터넷 영상에서 나타나는 아동 권리 침해의 양상과 기원이 다층적인 만큼 그 해법도 입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2000여 개 영상 모니터링 결과를 검토하면서 노하나 아동권리보장원 아동권리기획부장은 몇 가지 개선책을 제안했다. “다소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내용이 모호한 현 보호지침을 넓은 유형을 아우르되 구체적으로 문제를 짚어낼 수 있게끔 보완·개정하고, 보호자 등 방송 제작자와 출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아동 권리 교육과 홍보를 의무화하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며, 방송통신심의 단계에서 아동 권리 관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기구와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배상률 실장은 이에 더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출연·시청하는) 아동 자신이 영상의 내용 및 그로 인한 영향, 사회적 함의 등을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권리 침해가 사전에 예방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2020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캠페인’ 광고가 게시됐다.ⓒ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유튜브 속 아동의 ‘놀이’를 보는 관점 자체를 뒤집어야 해법이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유튜브 100위 내 아동 출연 채널에 업로드된 788개 동영상을 모니터링했다. 출연 아동의 놀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아동 놀이의 충족 조건인 ‘아동주도성’ ‘무목적성’ ‘놀이 촉진성’ ‘적절한 시간과 장소’ 요건을 모두 갖춘 영상 속 놀이는 788개 중 ‘0개’이었다. 분석 영상 속 아동은 한 달 평균 7.3개, 최대 12.75개의 동영상을 촬영했다. 영상 길이는 한 달 평균 44분 52초, 최대 1시간 23분 29초다. 촬영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편집된 횟수와 시간을 제외하고도 이만큼이다.

연구팀은 “유튜브 속 아이들의 놀이는 놀이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놀이가 아니면 무엇인가? 연구팀은 ‘노동’이라고 규정했다. 유튜브 영상에 담긴 내용물이 아동의 ‘놀이’가 아닌 아동 ‘노동’의 산물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사회가 온라인 영상 속 아동 권리 침해 문제에 실질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아동노동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아역배우나 모델처럼 예외적인 경우에도 고용노동부에서 발급하는 취직인허증(취업할 수 없는 15세 미만 청소년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취직을 인정·허가하는 증명서)을 발급받아야 한다. 놀이가 아닌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아동 영상을 관찰하면 ‘왜 자꾸 인권침해 요소가 발생하는지’ 그 이유도 간명해진다. 놀이 속에서 아동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해서는 안 되는 아동이 노동하고 있으니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기 힘든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강희주 연구원(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은 아동 출연 영상의 규제가 ‘네거티브(전체 중 문제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방식에서 ‘포지티브(바람직한 것을 찾아내 장려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영상이 쏟아지는 플랫폼에서 하나하나 점검해서 문제를 찾아내 대응하는 방식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영상 콘텐츠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놀이가 아니라 노동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합의하고, 놀 권리, 쉴 권리,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며, 좋은 아동 영상에는 인증과 검증 절차를 거쳐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유튜브 생태계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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