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김병철(28)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었다. 열여덟 살에 당시 막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던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고 10년 넘게 집행부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되었다. 그의 목표는 언젠가 청년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국가정책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가현(28)은 알바노조 위원장이었다. 열아홉 살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동료 친구들의 삶을 개선해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알바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당시 시급 4500원 수준이던 최저임금이 1만원은 되어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 곳에 있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동료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개량’이라는 비판이 두려워 제도에 참여하길 회피하지 않았고 인터넷 공간에 관념적인 비평을 남발하기보다는 나서서 실천하는 삶을 우선시했다. 어느새 그들은 노동운동 10년 경력의 노련한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실패한 곳에서 다시 도전

2019년 봄, 한 명은 총자본과 정권의 ‘괘씸죄’ 목록 맨 윗순위에 오른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둘러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본회의 파행 논란 속에서 본회의 참석 거부를 주도했다는 ‘죄목’이다. 수백만 조합원을 자랑하는 거대 노동조직이나 정당의 대표가 아닌 고작 조합원 2000명 수준의 작은 조직 대표가 이 거대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서 모든 비난과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청년단체들에게도 ‘예민한 노동문제에 청년문제를 휘말리게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는 결국 위원장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해야 했다.

2018년 봄, 다른 한 명은 운동의 ‘신비함’을 훼손한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었다. 사회운동단체의, 공식적인 절차와 논의를 무시한 채 뒤에서 진행되는 낡은 관행과 조직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른바 ‘비선’의 문제점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시대였지만 정작 운동 내부의 ‘비선 조직’에 대해 문제 제기한 그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차가웠다. 조직을 ‘보위’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적당히 하지 그랬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역시 위원장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그들은 갓 20대 후반 나이에 벌써 ‘실패한’ 전직 노조활동가가 되었다.

그들의 짧은 성공과 좌절은 사실 2010년대에 등장한 ‘청년 노동운동’의 빠른 성취와 뒤이은 정체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청년의 불안정한 노동과 삶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대표하는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어느새 ‘공정’과 ‘능력주의’로 무장한 청년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를 말하며 배타적으로 보상받아야만 하는 ‘노오오오력’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2020년대 청년 노동운동은 이 딜레마 속에서 방황하고 고뇌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우리 사회는 그들의 20대 청춘과 청년 노동운동에 빚진 것이 많다. 사문화되어 있던 주휴수당이 되살아나고 서울시의 청년수당 제도를 거쳐 고용보험에 실업부조 등이 도입된 과정에는 김병철과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기여한 바가 크다. 최저임금이 1만원에 육박하게 되고 다양한 불안정노동 청년들의 삶과 문제가 조명된 배경에 이가현과 알바노조의 활동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너무 빨리 ‘실패한 20대 노동운동가’가 된 그들은 그러나 실패한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도전을 모색한다. 사회적 대화가 중앙이 아닌 지역과 업종 차원에서 가능한지 탐색하고 잘못된 조직문화와 활동방식이 여성주의와 민주주의를 경시한 데서 초래된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

다시 시작되는 10년이 또 한 번 ‘실패한 30대 무엇’이 될지언정, 지난 10년이 그러했듯이 그것은 다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의 궤적으로 남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갑내기 ‘전직 노조활동가’ 둘의 새로운 도전도, 작금의 청년 노동운동의 고뇌에도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기자명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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