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질문 하나. “미국에서 주요 노조들은 왜 본부를 워싱턴에 두고 있을까?” “정치하려고.” 우스갯말 같지만 유명 학자의 논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이 추진하는 두드러진 전략의 하나다. 정치세력화 전략이 선거를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는다면 그중에서도 대선은 정치적 기회의 절정이다.
내년에 열릴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속속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 캠프에 합류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산별노조(연맹) 간부를 지낸 인사들 이름도 잉크처럼 번져간다. ‘그분’이 가진 노동친화적인 이미지에다 높은 당선 가능성이 고려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지만 여러 후보에게 몰리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목말랐던 탓일까.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에 결합해 대선을 치른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이념이나 지향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은 노동조합운동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다. 흠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두 가지는 지적할 수 있다.
먼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개인이 아닌, 조직노동의 집단적 선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정치적 근육을 늘리기 위해 사회세력으로서 노동조합이 나서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한다는 이야기다. 개인이 정치에 참여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일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 부르지는 않는다.
두 번째로 민주당은 그간 민주노총이 연대하거나 지지했던 정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노총 어법으로 말하면 민주당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주의 정당’일 뿐이다. 노동자의 요구를 전면에 배치하는 계급정당이 아니라 득표를 위해서라면 노동조합과 거리두기 전략도 취할 수 있는 대중정당이다.
물론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해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저당 잡힐 이유는 없다. 노동조합은 정당과 달리 사상이나 신조, 지지 정당을 같이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이다. 그래도 한때는 지도적인 위치에서 조직의 정치 방침을 외치던 사람들이 임기가 끝났다고 말을 바꾸는 것까지도 정치적 자유라고 둘러대기는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노동조합이 정당과 맺는 관계는, 비록 그것이 진보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논쟁적인 동맹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제안하는 것은 이참에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대중적인 논쟁을 조직해 민주노총이 민주당을 연대의 대상으로 삼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거다. 개인의 정치참여를 집단적인 정치세력화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적지 않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민주노총도 분명하게 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눈앞의 정치적 실리를 포기하더라도 길게 보고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방침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을 향해 연대의 문을 열어 잠재적인 집권정당을 노동친화적으로 견인할 것인가. 논쟁이 어떻게 결론 나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관심도 되살릴 겸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직노동의 집단적 선택은 찾을 수 없고 활동가의 개인적 선택만 부산한 게 요즘의 현실이다. 정파를 둘러싼 풍부한 내부 정치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외부 정치는 빈곤하다. 노동 없는 정치는 노동운동 출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 전략이 부재한 탓인지도 모른다. 정치세력화를 강령으로 가진 정치조직이자 110만 조합원을 가진 대중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자기 역할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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