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9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군부 쿠데타 항의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다. ⓒEPA

“RFA, VOA, BBC는 하늘을 찌르는 거짓말만 하네.” “RFA, VOA, BBC는 파괴분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여러분 경고합니다. RFA, VOA, BBC는 살인 방송입니다.”

2007년 가을, 당시 미얀마 군사정권 통치기구였던 ‘국가평화개발위원회’는 국영 신문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 한 면을 전부 할애해 ‘자유 아시아 라디오(RFA)’ ‘미국의 소리(VOA)’ 영국 BBC 방송을 “하늘을 찌르는 거짓말쟁이”라며 연일 맹비난했다. 그해 8~9월 승려들이 주도한 이른바 ‘사프란 혁명’을 전후해 ‘혁명 기운’을 단속하려는 군부의 반응이었다. 이 정도로 저급한 표현을 무려 국영 언론에 담았다는 건 미얀마 군부의 ‘대범함’을 역설한다. 저급한 프로파간다로 자신들의 대범함을 과시하는 것이 미얀마 군부가 시민들을 겁박해온 통치술이다.

RFA, VOA, BBC 등 영미권 방송의 ‘버마어 서비스’는 장시간 미얀마 시민들에게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독립언론이 전무한 틈새를 파고든 이들 언론을 시민들은 야시장에서 2달러면 살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라디오를 통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구석진 시골 동네를 찾아가도 “우린 VOA와 BBC를 듣는답니다”라고 속삭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미얀마 언론사에 분기점이 될 만한 상황이 전개됐다. 시위 현장에 출몰해 ‘찍고 빠지고 전송하는’ 시민들이 생산한 뉴스가 미얀마 내외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미얀마의 1세대 시민기자들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거친 영상과 사진들은 아마추어의 흔적보다는, 위험 속에서도 진실을 담아내려는 저널리즘 정신을 더 함축하고 있었다.

억압적 통치 아래 놓인 사회일수록 액티비즘과 저널리즘의 경계는 모호하고 또 공생할 때가 많다. 미얀마가 꼭 그런 경우다. 1세대 시민기자들의 취재물은 인터넷 검열을 피해 프록시 서버(Proxy server:인터넷에서 유저를 대신해 데이터를 가져오는 서버)를 타고 블로그에 게재되기도, 주류 언론에 제공되기도 했다. 일부 영상물은 아예 국경을 넘어 이웃 국가로 밀반출된 위성을 통해 다시 미얀마 시민들의 안방 TV로 전해졌다. 2000년대 미얀마 ‘망명 언론 트리오’ 중 하나였던 ‘민주 버마의 소리(DVB)’는 이 ‘VJ 시민기자들’을 잘 활용한 대표적 언론이다. DVB의 킨 마웅 윈 부국장은 2009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운이 좋았다. 3~4시간 안에 취재물을 전송할 수 있는 기술과 인터넷이 있어서 가능했다. 20년 전(88항쟁)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사프란 혁명 10년 뒤 등장한 로힝야 시민기자

DVB는 이미 사프란 혁명 전부터 ‘조슈아’라는 익명의 VJ를 팀장으로 하여 미얀마 내에 시민기자단을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시위가 터지자 이들의 촬영물을 받아 보도했다. 이들의 활동상은 이듬해인 2008년 덴마크 감독 안데르스 외스터가르트의 손을 거쳐 〈버마 VJ〉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200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다큐멘터리 편집상’을 수상했다.

미얀마 시민기자단의 활동상을 담은 2008년 다큐멘터리 〈버마 VJ〉의 한 장면. ⓒBurma VJ

이처럼 미얀마의 ‘시민 저널리즘’은 혁명 속에서 태어나, 전문 미디어 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성장하고 단련됐다. 언론사가 현장에 기자를 두고 있다는 건 촘촘한 바닥 소식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 테다. DVB가 제시한 사프란 혁명 사망자는 138명. 유엔의 미얀마 인권보고관이 그해 10월24일 유엔총회에서 발표한 “승려 30~40명, 시민 50~70명”보다 최소 28명 이상은 많다. 군부 발표 ‘공식 수치’는 사망자 13명에 불과했다.

10년 후인 2017년, 이번에는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로힝야 커뮤니티를 겨냥한 대학살이 벌어지면서 시민 저널리즘도 부활했다. 지리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라카인주는 외신기자든 국내 기자든 군이 조직하는 ‘프레스 투어’가 아닌 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다. ‘로힝야들이 자신들의 가옥을 스스로 불질렀다’라든가 로힝야 여성들이 군에 당한 성폭력이 ‘가짜 강간’이라는 등 아웅산 수치 민간정부까지 가세한 국가 프로파간다가 난무했다. 난무하는 프로파간다와 미디어의 빈자리를 채운 건 다름 아닌 로힝야 시민기자들이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학살 현장의 시민기자들과 로힝야 디아스포라 활동가, 언론인들 간 협업이 활발히 이어졌다. 학살 현장에서 쏟아지는 증언과 이미지들이 로힝야 기자들의 손을 거쳐 육하원칙이 담긴 정보로 가다듬어진 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로 소셜미디어를 타고 세상에 퍼졌다. 버마족 출신 망명 학자로, 로힝야 제노사이드 이슈에 천착해온 마웅 자니 박사는 이를 두고 ‘페이스북이 중계한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독일 거주 로힝야 활동가인 로 네이산 르윈이 현재 미얀마의 ‘포스트 쿠데타’ 상황을 구석진 동네 뉴스까지 취합해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바로 4년 전 자기 종족의 대학살을 절박함으로 전하던 과정에서 쌓인 내공이 반영된 결과다.

2021년, 역사는 또다시 시민 저널리즘을 불러내고 있다. 2월1일 불법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 ‘국가평의회(SAC)’가 ‘쿠데타 교과서’대로 언론 장악부터 들어간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SAC는 지난 3월8일, 〈미지마〉 〈DVB〉 〈킷팃 미디어〉 〈세븐데이즈 뉴스〉 그리고 〈미얀마 나우〉 등 미얀마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5개 언론사의 라이선스부터 취소했다. 탐사보도로 빛을 발해온 독립언론 〈미얀마 나우〉, 1998년 인도에서 망명 언론으로 시작해 디지털 방송으로까지 꾸준히 성장해왔던 〈미지마〉, 그리고 안티무슬림 이슈를 보도해왔던 〈카마윳 미디어〉(2018년 1월 창간) 등 주요 언론사 사무실이 차례로 침탈당했다. 지난 10년간 제한적이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었던 언론자유는 다시 초토화됐다. 그럼에도 편집장이 모두 잡혀간 〈카마윳 미디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네 개 언론은 모두 망명지에서, 피난처에서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취재하고 보도하는 행위를 멈춘 적이 없다. 시민 저널리즘은 ‘매체 창간’이라는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몰로토프 뉴스레터(몰로토프)〉는 대표 사례 중 하나다.

‘경계 없는 저널리즘’

‘몰로토프’는 화염병을 뜻하는 영어 합성어 ‘몰로토프 칵테일’의 앞 단어에서 이름을 땄다. 매체의 로고 역시 화염병을 형상화하는데, 강렬한 이미지는 매체의 ‘혁명적’ 성격을 암시해준다. 〈몰로토프〉 에디터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매체가) 진보적 이름이어야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봄의) 혁명을 완수할 때까지 발행을 이어가겠다”라고 공언한 〈몰로토프〉는 현재 미얀마어로만 발행된다. 그러나 “조만간 영어 버전으로 발행을 준비 중”이라는 게 〈몰로토프〉 기자 민초(가명)의 말이다. 그는 “(당신이 도와준다면) 한국어 버전도 계획해볼 수 있다”라고 꽤 진지한 농담도 덧붙였다. 〈몰로토프〉 팀은 일주일에 한 번씩 거처를 옮기며 작업 중이다. 최신호 ‘No.4-Volumn.2’(7월22일 발행)에는 시가 실리고, ‘정치와 페미니즘’ 기사가 담겼다. 7월26일 기준 〈몰로토프〉 페이스북 팔로어는 11만4001명, ‘봄의 혁명’ 과정에서 생겨난 시민 저널리즘 매체 중에서 〈버마연합언론〉(2월20일 창간, 이하 BAP)과 함께 팔로어가 10만명을 넘긴 매체다.

2007년 한 면을 할애해 외신을 비난한 국영 신문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왼쪽)와 2021년 창간된 시민 저널리즘 매체 〈몰로토브 뉴스레터〉.ⓒ이유경

BAP는 페이스북과 블로그 형태의 사이트를 통해 보도하는 매체다. “쿠데타 발발 후인 2월20일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창간했다. BAP는 “글로벌 독자들을 위해 영어와 미얀마어로 뉴스는 물론 심층기사를 제공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7월23일에는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의료진을 향해 ‘일에 복귀하라’고 명한 사실을 최초 보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A4 한 장 양면으로 ‘봄의 혁명’ 소식을 전하는 〈일간 봄의 소리〉(VSD, 팔로어 5만2786명)가 있다. 4월5일 창간된 VSD는 “A4 두 페이지, 매일 밤 10시 혁명 소식을 들고 찾아갑니다”라고 공언해놓았다. 이 매체는 20대 후반의 저널리즘 전공 학생이 내놓은 1인 미디어로 알려져 있다. VSD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공유하고, 퍼트리고, 무엇보다 배포하세요. 그래야 시민들이 정보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시민기자가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CJ(Citizen Journalist·시민 저널리스트)’ 크레디트를 달고 〈미얀마 나우〉 〈이라와디〉 등에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시민기자와 전문기자들의 협업은 위기에 직면한 미얀마에서 ‘경계 없는 저널리즘’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다. 어느덧 미얀마 시민 저널리즘의 전통이 되었다. 사프란 혁명과 함께 시작된 시민 저널리즘이 협업의 형태로만 빛을 발했다면, 2021년 봄의 혁명이 추동한 시민 저널리즘은 독자적 매체 창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숨 가쁘게 커버스토리와 지면을 기획하는 이들 매체의 모습은 프로페셔널 언론의 그것과 닮았다. 또 다른 의미의 ‘경계 없는 저널리즘’이다.

 

■ 8월23일 온라인으로 열리는 ‘2021년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에 참가하시면 미얀마 언론 현황을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2021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참가 신청하기(무료)

기자명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