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소 노동자가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옮기고 있다. ⓒ시사IN 주하은

7월19일 오전 9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입구 앞에 대형 쓰레기봉투 8개가 쌓여 있었다. 100리터들이 ‘일반 쓰레기’ 네 봉투, 비슷한 부피의 검은색 ‘재활용 쓰레기’ 네 봉투였다. 음식물 쓰레기도 50리터가량 모였다.

서울대 925동은 4층 높이, 정원 196명의 학생 기숙사 건물이다. 925동은 지난 6월26일 사망한 청소 노동자 고 이 아무개씨(59)의 일터였다. 이씨는 기숙사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치우고 복도와 샤워실 등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6월26일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친 뒤 “씻고 가겠다”라고 동료와 인사를 나눴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경찰이 발견했을 때, 그는 얇은 이불을 덮고 925동 휴게실에 누워 있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고인의 남편 이 아무개씨(59)는 아내의 초상을 치른 뒤인 7월2일, 서울대로 ‘출근’했다. 그 역시 서울대의 기계 담당 시설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 이씨는 일단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925동에 들렀다. 아내의 동료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 관리자가 부임한 이후 고인이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퇴근 후 종종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7월5일 노조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조각들을 맞춰본 후 이씨는 아내의 ‘급성 심근경색’이 우연한 사고나 불행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절한 노동환경이 주어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다. 내 아내의 죽음은 산업재해다.”

7월7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와 남편 이씨가 함께 기자회견을 연 뒤, 서울대의 청소 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불거졌다. 6월1일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으로 부임한 상급자가 청소 노동자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영어와 한문 등의 필기시험을 보게 했고, 회의 참석 시 ‘드레스 코드’를 강요하는 ‘갑질’을 행했다는 것이다. 고인 이씨와 함께 근무한 동료 청소 노동자는 기자회견에서 “동료 한 분은 필기시험 점수가 공개되어 동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 저희들 앞에서 울었다”라고 말했다. 고인이 출퇴근 시 옷차림에 대해 팀장에게 지적을 받았다며 “아무래도 정장 하나 사놔야 할까 봐”라며 씁쓸해했다는 동료들의 증언도 나왔다.

서울대는 노조 측의 ‘갑질’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행정대학원 교수)은 7월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다음과 같이 노조를 비난하는 글을 게시했다.

“(조문 가서 만난) 유족 모두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이었는데 노조가 개입하며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

그는 이 글로 인한 논란이 커지자 게시 이틀 뒤에 삭제했다. 7월10일엔 남성현 관악학생생활관 기획시설부관장(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이 기숙사 홈페이지에 “해당 관리자를 마녀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반박 공지문을 올렸다.

노조와 학교의 진실 공방이 격화되며 사회적 관심은 관리자의 ‘갑질’ 여부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유로 제기된 것은 관리자 개인의 ‘갑질’만이 아니다. 유족과 노조 측은 고용주인 서울대 측이 청소 노동자들에게 부여한 과도한 업무량과 업무 강도가 이씨의 사망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과로는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주요인 중 하나다. 유족 대리인인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노무사는 “갑질과 과로가 이 사건을 설명하는 두 축이지만, ‘평소 지병이 없던 50대 여성 노동자를 심근경색으로 몰아갈 만큼 청소 및 기타 업무의 강도가 셌는지’가 일단 밝혀져야 이 사망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고인 이씨에게 할당된 업무 강도가 상식적이고 합당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한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일의 절대량이 많고 업무 강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고인이 담당한 기숙사 925동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혼자 하루 수십 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4층 건물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서울대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일반 쓰레기봉투’ 용량은 100리터다. 한 봉투당 무게가 최대 25㎏에 육박할 수 있다. 100리터 ‘일반 쓰레기봉투’ 수거 과정에서 환경미화원들의 부상과 안전사고가 이어지자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대 75리터까지만 사용하도록 조례를 개정하기도 했다.

노조 측은 고인이 100리터 일반 쓰레기봉투를 하루 평균 6~7개 처리했다고 주장한다. 구민교 학생처장은 7월9일 게시했다가 삭제한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925동에서는 하루 100리터 (일반) 쓰레기봉투(가) 2개 이내 발생했다”라며 노조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시사IN〉이 지난 7월19일 월요일 아침, 925동 앞에서 확인한 100리터 일반 쓰레기봉투는 모두 4개였다. 이전 주의 토·일요일(7월17~18일)에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틀에 4개면 하루에 2개다. 구 교수 측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7월17~18일은 ‘방학 중’이었다. 고인의 동료는 방학 동안엔 기숙사 거주 학생 수가 평소의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서울대 기숙사의 하계 임시 퇴거는 6월30일까지였다. 고인이 사망하던 6월26일 당시는 기숙사가 정상 운영되던 시기다.

7월15일 서울대학교에서 민주당 산업재해TF 의원이 서울대 청소 노동자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심장 기능은 정상인보다 더 좋았다”

코로나19 이후 기숙사의 쓰레기 배출량이 더욱 증가하기도 했다. 서울대가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에 이르기까지 925동에서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양은 2019년 한 해 전체 배출량에 비해서도 1.6배 높았다. 일반 쓰레기 배출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대비 증가 추세는 추정할 수 있다.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새 관리팀장이 부임한 이후 군대식 ‘청소 검열’이 도입되기도 했다. 고인이 사망하기 나흘 전인 6월22일부터 이틀간 안전관리팀장 등 교직원 3~4명이 건물 각각의 청소 상태를 확인하는 ‘청소 검열’이 실시됐다. 이씨의 동료 허 아무개씨는 “(청소 검열을 겪은 뒤) 사망하기 직전 이틀 동안 고인은 925동 전체 건물 대청소를 한 번에 다 하기도 했다. 남에게 지적받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그만하라고 말려도 계속했다”라고 말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고인 이씨가 평소 지병이 없고 건강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지난해 건강검진 종합소견에서 ‘정상A’ 판정을 받았다. 남편 이씨의 말에 따르면 “심장 기능은 정상인보다도 더 좋다고 나왔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에 지원하려면 ‘국민체력 100’ 검사에서 3등급 이상(만 65세 미만 성인 중 상위 70%)을 받아야 한다. 박문순 노무사는 “별다른 질병이 없던 분이 갑자기 사망했고 다른 뚜렷한 요인이 없다면 노동환경이 사망 원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과로 여부에 대해 7월22일 현재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대 홍보팀은 〈시사IN〉의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인권센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관계로 구체적 사항에 대해 설명드릴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기자명 주하은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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