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4일 〈빈과일보〉의 한 기자가 사옥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마지막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PHOTO

1995년 6월20일 창간된 〈빈과일보(蘋果日報)〉가 26년 역사를 마감했다. 6월24일 마지막 신문 제작을 끝낸 이날 새벽, 람만청 집행총편집인은 〈빈과일보〉 모회사인 ‘넥스트미디어그룹(壹傳媒)’ 사옥 밖으로 나가 〈빈과일보〉를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심경을 전했다. “현재 〈빈과일보〉가 겪는 어려움은 이미 한 회사가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홍콩 당국이 총을 들고 ‘윤전기 운영을 중단하라’고 협박하지는 않았지만, 〈빈과일보〉는 창업주 체포와 본사 압수수색을 수차례 경험했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급기야 6월22일 경찰은 다시 넥스트미디어그룹 본사에 들이닥쳐 구속영장을 내밀었다. 그날 이사회는 이틀 뒤인 6월24일 〈빈과일보〉의 최종판을 인쇄한 후 폐간하기로 결정했다. 경영진은 넥스트미디어그룹에서 퇴출되었고 이 언론사 웹사이트와 SNS 계정도 함께 사라졌다. “회사는 그간 지지를 보내준 독자들과 26년간 헌신해온 기자, 스태프, 광고주에게 감사를 표한다.”

2020년 6월30일 시행된 홍콩보안법은 기존 법률들의 위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홍콩보안법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부분 보석 신청이 승인되지 않았다. 사건 심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의 죄명을 씌우기도 했다. 홍콩보안법 시행 1년, 홍콩은 중국 체제와 비슷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홍콩 일간지 〈빈과일보〉는 베이징 당국의 첫 번째 적이 되었다. 이 신문 창업주인 지미 라이는 지난해 8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체포되어 2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폐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지난 5월이다. 홍콩 정치권에서는 ‘베이징 당국이 7월1일까지 꼭 〈빈과일보〉를 단속하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6월17일 〈빈과일보〉 사옥에 경찰 500여 명이 출동해 편집국장 등 5명을 체포했다. ⓒ〈빈과일보〉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 사법 당국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극소수만 홍콩보안법의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라고 말했으나 올해 6월 ‘외국 세력과의 결탁·공모’ 혐의를 이유로 넥스트미디어그룹 자금을 동결했다. 경찰은 이 신문에 실린 글 30여 편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다.

〈빈과일보〉의 폐간은 홍콩 언론계에 공포감을 확산시켰다. 홍콩 당국의 다음 타깃으로 알려진 인터넷 언론 〈입장신문(立場新聞)〉에서는 6월27일 이사 6명 전원이 사퇴했고 유료회원 모집도 중단했다. 또 올해 5월 이전의 기고글과 칼럼을 모두 내리고 홍콩보안법 위반 여지가 있는지 법률 자문을 검토하기로 했다.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중국 왕조시대에 황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지식인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던 사건)’이 왔기에 후원자와 저자, 편집자 등을 보호하고 모든 부분의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

“〈빈과일보〉가 보도하면 경찰이 수사한다”

〈빈과일보〉 주필 펑웨이광도 ‘외국 세력과 결탁’ 혐의로 6월27일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언론계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베이징 당국은 “넥스트미디어그룹이 〈빈과일보〉의 직원 정보를 당국에 건네주면 자산동결을 해제해주겠다”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베이징 당국이 홍콩 언론인의 ‘데스 노트’를 쓰려고 작정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한자로 ‘빈과(蘋果·핑궈)’는 사과라는 의미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 후 홍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홍콩에서 〈빈과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홍콩에서 이 신문의 중요한 역할은 권력 감시였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이 언론사는 항상 날카롭게 질문하고 금기를 깼다.

6월18일 〈빈과일보〉가 인쇄되고 있다. 하루 전 편집국장 등이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HK feature

7년 전 탐사보도팀 기자로 일할 때, 팀장은 나에게 일본 오키나와에 가서 홍콩인 부부 호텔 자살 사건을 추적하라고 지시했다. 깊이 취재해봤더니 한 홍콩의 금융 평론가가 이 부부의 종교단체 인맥을 이용해 주식투자를 종용했다. 결국 투자가 실패해 재정난에 빠졌고 종교단체 지인들의 빚 독촉을 감당하지 못한 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취재 결과, 이 부부에게 투자를 종용한 금융 평론가는 〈빈과일보〉 칼럼니스트였다. 금융 평론가의 사기 행위를 적발한 훌륭한 탐사보도가 될 수 있었지만, 하필 가해자가 회사와 관련이 있었다. 회사에 돌아와 보고했는데 팀장이 귓속말을 했다. “이 금융 평론가는 편집국장의 친구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의기소침한 채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팀장이 안건을 들고 편집회의에 들어갔지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10년 차 기자로서 보통 신문사의 불문율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기자들이 편집국장 친구의 죄를 고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편집회의가 끝나자 팀장이 나에게 신난 얼굴로 다가와 “축하해. 내일 지면 6쪽에 나올 거야!”라고 말했다. ‘공중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기사 게재 후 해당 금융 평론가는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결국 금융 자격증 30개월 효력 중지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선배들은 항상 기자들에게 ‘브레인스토밍’을 해주었다. “취재에는 한계가 없다” “못한다고 하지 마라. 취재에는 성역이 없다” “물어봐도 안 되거나, 알아봐서 안 되는 것은 없다” “취재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봐주면 안 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내가 〈빈과일보〉에서 들었던 말이자, 기자들이 공유하는 원칙이다.

6월17일 〈빈과일보〉 편집국 모습. “동료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HK feature

폐간 며칠 전 〈빈과일보〉는 지역 유력 인사의 부패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옛 동료다. 그는 “최초 제보자가 친중파다”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 제보자는 이미 수많은 언론사에 제보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빈과일보〉는 성역 없이 보도하기에, 친중국파 취재원도 제보를 하러 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빈과일보〉가 1면에 부정부패 의혹, 스캔들을 보도하거나 진범을 찾으면, 경찰서에서는 아침부터 회의를 소집해 어떻게 이 신문을 따라서 수사할지 논의한다.”

매체와 시민이 함께한 집단 감시 체계

이 신문은 홍콩 사람을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홍콩의 장점은 〈빈과일보〉 같은 신문이 있어서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못하는 이야기도 없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래 이 신문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두 체제 공존) 원칙을 ‘감시’해왔다. 그러니 〈빈과일보〉가 당국의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온·오프라인에서 철저히 분쇄된 것은 홍콩의 일국양제가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의미다.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편집자가 다음 날 발행될 신문을 살펴보고 있다. ⓒEPA

다른 언론이 〈빈과일보〉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신문이 그동안 홍콩 시민들과 함께 다져온 신뢰 때문이다. 지난 26년간 매체와 시민들이 함께한 ‘집단 감시’ 체계를 만들었다. 〈빈과일보〉의 탐사보도가 이뤄지면 시민기자들이 조사와 고발을 했다. 이어 〈빈과일보〉의 후속 보도가 이뤄졌고 공권력 및 사법기관이 개입해 조사했다. 다른 매체가 후속 보도하면서 시민들의 의식도 높아졌다. 정권에 질문하고 비판하며 ‘공중의 이익’을 위해 끝까지 추적하는 신문은 〈빈과일보〉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과일보〉의 보도 뒤에는 꼭 다른 매체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매체와 시민들이 함께한 집단 감시 체계가 가능했고 이 신문의 영향력도 점차 커졌다.

왜 다른 홍콩 매체들은 집단 감시 체계를 만들지 못했을까. 이는 기자 개인의 취재 경험과 기술 그리고 〈빈과일보〉라는 브랜드의 영향력과 연관돼 있다. 〈빈과일보〉는 홍콩 매체 중 선임기자가 제일 많은 회사다. 편집국의 40명 이상이 경력 20년 이상이다. 그들은 권력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또 날카롭게 사회문제의 핵심을 지적할 수 있는 인재다. 그중 특히 사회부 기자들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는 ‘Be Water(물이 되자)’라는 전략을 내세웠다. 얼음처럼 강하고, 물처럼 유동적이며, 이슬처럼 모여서 안개처럼 흩어진다는 의미다. 〈빈과일보〉는 홍콩 시민들이 물처럼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게 만든 언론이었다. 모든 것이 개별화되는 온라인 세계에서 이 신문의 소멸은 홍콩 매체의 ‘적극적’ 기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앞으로 홍콩은 시사·정치 이슈를 집중 토론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홍콩은 강력한 권력 감시의 힘을 잃게 되었다.

번역·양첸하오 (프리랜서 기자)

2011년에 만들어진 속보팀. ⓒHK feature
기자명 홍콩·관춘호이 (關鎭海·전 〈빈과일보 〉,현 〈HK feature〉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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