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림책 〈무무 씨의 달그네〉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고정순 작가는 장정일 시인의 시 〈강정 간다〉를 낭독했다. 이 시로부터 달에 가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강정에 간다.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한 얼굴로’ ‘총총히 떠나간다’. 그들이 떠나가려는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저마다 이고 지며 살아가는 ‘울적하고’ ‘숨 막히고’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사람들은 ‘3번 버스’를 탄다. 실제 시인이 타고 자주 강정에 갔다던 바로 그 버스다.

구두를 닦는 무무 씨의 세상에서 동물들은 강정 대신 달에 간다. 그들은 떠나기 전 무무 씨에게 와서 마지막으로 구두를 닦는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구둣방을 찾은 동물들은 저마다 생김도 사연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달에 갈 기대에 부풀어 있다. 달에만 가면 신나는 일들이, 새로운 생활이,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무무 씨는 그들의 구두를 깨끗이 닦아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이토록 다정한 배웅을 받으며 달로 떠나기 전 동물들은 무무 씨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달에 가지 않느냐고.

이상은 거리가 만들어낸다

무무 씨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구보다 달을 좋아한다. 고단한 날에도, 외로운 날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무무 씨는 달을 본다. 하지만 달에 갈 생각은 없다. 달에 가면 달을 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무무 씨는 말없이 조금 외로워진 마음을 안고 달이 잘 보이는 곳에 그네를 매달아 탄다. 그네가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달의 모양은 달라진다. 달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의 달이 다르고, 이곳과 저곳의 달이 다르다.

그렇다면 행복은? 행복은 모두에게 언제나 같은 모양일까. 행복이 기다리는 곳은 따로 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날마다 그림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날마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 위에 날마다 구두를 닦는 무무 씨가 겹쳐 보인다. 매일 묵묵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먼 곳에서 반짝이는 빛을 쫓지도, 새로운 바람에 몸을 훌쩍 일으키지도 않고, 시시하고 하찮고 지루해 보이는 나날을 요령 없이 우직하게 살아온 얼굴들이다. 이야기도 사람도 앞다투어 달에 가고 강정에 가는 동안 이들은 현실의 땅 위에 부지런히 뿌리를 내렸다. 외로이 남아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사랑했다.

〈강정 간다〉에서 마침내 강정에 가는 화자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그는 알고 있다. 이상은 거리가 만들어낸다는 것을. 달은 언제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내일의 이름이다. 유토피아는 항상 지금 여기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짐을 꾸리고 문을 나선다. 고정순 작가의 전작에서도 늙은 산양은 죽기 딱 좋은 장소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모든 장소에서 실패한다. 그러나 산양에게는 반드시 도전하고 실패했어야 하는 여정이었다. 무무 씨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닦고 길을 떠난 이들의 여정은 성공할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달 표면에 발이 닿는 순간 고개를 들어 또 다른 달을 찾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멀리서 보던 달을 그리워하기도 할 것이다.

기자명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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