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해놓고도 다른 길을 갈 때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한적한 길을 찾아 달리기도 하고, 아차 싶은 순간에는 엉뚱한 길로 빠지기도 했다. 괜히 조바심이 나는 날에는 좀 더 빠른 길을 찾아 헤매다 애초에 설정해둔 목적지로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의 일이었으며 삶의 기쁨과 슬픔, 우연과 필연의 조각들이었다.
스페인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쓰고 그린 〈두 갈래 길〉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발걸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는 자기만의 방을 나와 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여자는 신기한 것에 마음을 놓기도 하고, 남자는 두려운 것으로부터 헤쳐 나오기도 한다. 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맞닥뜨리기도 하며, 모든 걸 내려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시간의 속도 또한 매 순간 다르다. 시간은 가속페달을 밟은 듯 빠르게 내달리기도 하며, 정차된 기차처럼 느리게 흘러가기도 했다. 어두운 터널 속을 빠져나오려고 밤낮없이 걸었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각자의 길을 충실히 걸어간 그들에게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듯, 길의 교차점에서 우연과 필연처럼 마주친다.
“지난 너의 모든 길이 아름다웠기를”
〈두 갈래 길〉 속 만남은 꼭 연인과의 만남만을 일컫는 건 아닐 것이다. 삶의 길 위에서 조우한 사람들은 가족·친구·동료일 수 있으며, 그들은 삶의 지표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며 반짝이기도 한다. 무수히 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진 상황은 결국 내 마음이 선택한 결과이며 그 선택은 어떤 지향성을 갖는다. 그 지향성은 언제나 중요한 것, 소중한 것에 더 힘이 실린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선을 그어가며 길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어디에 선을 긋고 걸어갈지, 그 선이 어디까지 가닿아 길을 만들지 알 수 없지만, 선이 조금 비뚤다고 해서, 혹은 울퉁불퉁해 평탄치 않다고 해도, 이 모든 길들이 보태져 새로운 길을 만들어줄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끄고 길을 떠나본다. 길을 나설 때면 오랜 습관처럼 켜두었는데, 오늘 여정은 지금 걷는 이 길을 믿고 앞으로 걷게 될 길을 기대하며 떠나보고 싶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두 갈래 길〉의 흰 바탕에 그려진 선명한 길처럼 내가 걷는 길이 곧 길이 되리라는 간결하고 단순한 믿음이 생겨난다.
애초의 목적지로 가지 못했다 해도 자책하지 말기를.
“지난 너의 모든 길이 아름다웠기를 지금 걷는 이 길과 앞으로 걷게 될 길이 모두 눈부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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