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서 엄마가 어떻게 그려지는가를 조사하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얼핏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엄마 상이 제법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새엄마는 옛이야기의 정석이다시피 하고, 현대 그림책에서 폭력적인 엄마, 억압적인 엄마, 집착하는 엄마, 무심한 엄마, 떠나는 엄마를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엄마 상을 보여주는 책들 중에는 훌륭한 작가들의, 강력한 인상과 오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많았다.

그중에서 집착하는 엄마의 대표가 메두사 엄마였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 세계와의 관계에서 갖는 의문과 갈등을 신화적인 세계관 안에서 깊이 있게 풀어내는 키티 크라우더답게 메두사를 모티프로 가져온 작품이다. 딸은 엄마의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에 감싸여 땅에 발 닿을 새 없이 살아간다. 머리카락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아이를 안아 하늘로 들어 올려주고, 물속에 담가주고, 말 모양으로 변해 태워주기도 하고, 글자 모양으로 변해 책 읽기도 가르친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외부와 단절시킨 채 품안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이 조가비가 되어 딸을 진주로 만들겠다 다짐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내주는 ‘부정적 엄마’

딸은 “나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메두사다!”라고 말하며 엄마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가도 돼요?”라고 너무나 반색하는 얼굴로 되물어 엄마의 마음을 찢어놓은 딸은, 아이들이 무서워하니 따라오지 말라는 매몰찬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다.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절망과 체념으로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해피엔딩이다. 결말에서는 엄마도 딸도,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도 모두 기쁜 얼굴이다.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카락도 행복해졌다. 다른 ‘부정적인’ 엄마를 그린 그림책들도 거의 모두 그렇게 해피엔딩이다.

처음부터 사랑에 넘치고 따뜻한, 긍정적 엄마가 감사할 거리를 준다면, 부정적 엄마는 생각할 거리를 내어준다. 이 엄마는 왜 이렇게 아이에게 집착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머리카락’에서 보인다. 가장 야생적인 몸의 조건. 몸의 다른 부분이 죽은 뒤에도 계속 자랄 수 있는 머리카락. 어떤 강력한 본능적 충동이나 환경에 어찌할 수 없이 얽매여 있음이 거기서 읽힌다. 그렇게 칭칭 동여매져본 적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도 그런 머리카락은 잘라야 한다. 자랄 수 없게 하지는 못하지만, 자를 수는 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매몰차게 떠나는 용기를 낸 딸, 그 뒷모습을 보며 낙담하지만 머리를 싹둑 자르고 딸 앞에 나타날 용기를 낸 엄마는 결국 그렇게 했다.

책에서는 두어 페이지 안에서 단숨에 진행되지만 실제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 둘이 겪었을 갈등과 혼란의 긴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는가. 메두사의 길고 풍성하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대신 말해주며 위안을 남긴다. 한때 메두사 엄마였고 그 딸이었던 엄마와 딸들의 잘린 머리카락도 이 책에서처럼 ‘예쁜’ 무언가가 되어 ‘따뜻한’ 어딘가로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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