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고양이가 며칠 전 외박을 했다. 도시 외곽의 주택에 살면서 앞산, 뒷산을 마음껏 누비는 친구의 고양이는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소속이 확실해서 밥때와 잠자리는 잘 지킨다. 그런데 가끔 날씨가 좋으면 외박을 한다. 며칠 전에도 밤을 새우고 아침에야 돌아왔다. 와서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쓰러져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고, 친구는 하소연을 했다. 도무지 사람은 알 길 없는 고양이의 밤 외출. 대체 이 녀석은 밤새 어디서 무얼 하다 온 것일까.

이 궁금증에 누구보다 열렬히 답해줄 사람들이 있다. 그림책 작가들이다. 시드니 스미스에게 묻는다면 분명 지혜를 좇아 밤을 지새우는 다정한 수도사가 있는 수도원으로 밤마실을 갔다고 할 것이다(〈흰 고양이와 수도승(The White Cat and the Monk)〉, 2016). 준코 나카무라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고양이가 먼 도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다녀온 것이 틀림없다고 할 테지(〈방문(La Visite)〉, 2016). 야닉 코트 역시 함께 살 새로운 가족을 데리러 갔다 온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 분명하다(〈놀라운 일(La Surprise)〉, 2010). 그 와중에 속삭이듯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이 다니는 비단 공장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느냐고.

김유진의 그림책 〈비단 공장의 비밀〉에는 낯선 판타지가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판테온 신전, 크렘린 궁전이 콜라주처럼 뒤엉킨 거대한 탑이 밤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고, 꼭대기 망루 끝에는 커다란 그믐달이 걸려 있다. 이곳으로 고양이들이 줄지어 출근을 한다. 이슬과 달빛을 모아 붉고 푸른 비단을 만들기 위해 고양이들은 2교대로 쉬지 않고 일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고양이들, 내가 아는 모든 고양이들은 다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아서 페이지마다 눈을 뗄 수 없는데, 그러다 어느새 세밀하게 직조된 검은 펜선의 공간에서 선명한 붉은색 실이 등장한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으면 드디어 팡! 하고 터지는 붉고 커다랗고 아름다운 장미꽃들. 그렇다. 외박한 고양이들이 이 신비로운 공장에 모여 밤새 하는 일은 장미꽃을 피우는 것이다.

장미꽃의 개화에 관여하는 고양이

비단 공장의 내부는 연료가 될 보석을 캐는 지하에서부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망루에 앉아 정교하게 비단을 짜는 꼭대기 베틀의 방까지 실재하는 공간인 듯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징그러우리만치 정교하다. 이런 노력 때문에 김유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합의한 과학적 증명, 그러니까 고양이는 절대로 협동심을 발휘해 근면한 노동을 할 수 없고, 장미꽃의 개화에 관여하는 이야기라면 고양이보다 벌이나 개미가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이성적 사고를 가볍게 밀쳐낸다.

그리고 문득, 5월의 골목마다 장미꽃이 이리 만발했으니 온 동네 고양이들이 얼마나 고단할까 하고, 한낮의 풀숲에서 잠든 고양이가 대견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가졌던 최초의 호기심은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고 이제 더 이상 꽃이 피어나는 일에, 고양이가 밤을 지새우는 일에 새롭게 알아야 할 지식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미지의 신비를 더듬기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남아 여전히 장미꽃잎의 보드라움을 매만지고 외박한 고양이의 지난 시간을 좇는다. 계절이 돌아와 새로 꽃이 피듯 이야기들은 여전히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기자명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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