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헤링본 체크 코트 한 벌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누가 어디에서 입어도 좋을 평범하고 무난한 코트다. 그런데 슬쩍 드러나는 코트의 안감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색 바탕에 흰 구름이 잔뜩 그려져 있고 넥 라벨 위로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Nessuno라고 쓰여 있다. 이탈리아어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았다. 왜소한 체구에 초라한 모습을 한 남자는 조용하기까지 해서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웃에 살고 있는지조차 몰랐고, 아이들은 한술 더 떠서 그가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그의 시선을 불쾌해했다. 기대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남자. 보잘것없는 노인. 명패도 없는 집에 사는 그의 이름은 아무개씨였다.

이 마을에는 또 이런 노인도 살았다. 차를 마실 때면 뜨거운 찻잔 위로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고 다 우러난 찻잎에서는 새싹이 돋아났다. 빨래한 물에서는 금붕어가 헤엄을 치고 설거지한 물에서는 꽃향기가 가득 퍼져 나갔다. 무엇도 해치지 않고 어떤 것도 취하지 않으면서 그는 주변의 작은 것들을 소생시켰다. 이 신비로운 노인의 이름 역시 아무개씨였다.

그렇다. 두 아무개씨는 실은 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노인이던 아무개씨가 실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가 별을 만드는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이 질 때마다 새 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임무다. 매일 밤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커피 그라인더를 돌려 별을 만든다. 그 일을 그는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슬픈 일일까, 아니면 다행스러운 일일까.

‘안다’는 감각과 ‘모른다’는 감각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함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다. 별을 만드는 남자가 바로 내 옆을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의 코트 안자락에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자 콘세이요가 하려는 이야기는, 거지인 줄 알고 친절을 베풀었더니 천사였다더라 하는 식의 교훈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고백에 가깝다. 한 고독한 창작자의 고백 말이다. 매일 밤 별을 만드는 것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백지 위에 수없이 펼쳐놓았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회색빛 코트를 입고 세상 속에서 무명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오래전 작가의 마음이 어쩐지 아무개씨에게서 엿보인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빛나는 많은 것들이 오직 홀로 깨어 있는 시간에 만들어진다. 그렇게 매일 어딘가에서 저마다 고독한 별들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외로움이 아름다움과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보다 ‘모른다’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기자명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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