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개가 강아지에게 말한다. “짖어봐, 조지야.” 조지가 짖는다. “야옹.” 엄마가 개는 멍멍 짖는 법임을 가르치지만, 이어지는 소리는 점입가경이다. 꽥꽥, 꿀꿀, 음매… 점점 일그러지는 엄마 개의 얼굴. 엄마는 우리 애가 병이구나! 싶었는지 의사를 찾는다. 개 모자를 맞이한 인간 의사는 그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심상한 얼굴로 수술 장갑을 끼고는, 조지의 입에 손을 집어넣어, 뱃속에서 고양이를, 오리를, 돼지를, 소를 차례차례 꺼낸다. 드디어 멍멍! 제대로 짖게 된 조지. 얼핏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여러 종류 동물의 모양과 소리를 장난스럽게 알려주는 교재로 여길 법하지만, 이 책에는 그 이상이 담겨 있다. 작은 강아지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커다란 동물들 같은 생각을 끌어낸다. 조지의 뱃속이 따뜻해서 모두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라는 아이들의 천진하고 따뜻한 감상이 있는가 하면, 듣고 싶은 소리만 내도록 윽박지르는 교육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엄마들의 가열한 반성도 있다. 볼 때마다 깔깔거리는 어린 독자들 옆에, 갑자기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라 무섭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어른 독자도 있다.

나는 어떤 편인가 하면, 〈23 아이덴티티〉라는 해리성 인격장애에 관한 영화를 보다가 엉뚱하게도 이 책을 떠올렸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가 그렇게나 많음을 그 영화가 그토록 무시무시하게 보여준다면, 이 책은 이토록 유쾌하고 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렇게 내 안의 복합적인 자아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무서운 자아도, 유쾌한 자아도 빛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 이 그림책이 고마운 점은, 그 무서운 영화처럼 여러 자아가 분열적인 것이 아니라 안정과 평온을 향해 간다는 데 있다. 놀라거나 아파하는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강아지는 뱃속에서 누가 나오든 네 다리를 굳건히 땅에 붙인 채 자기 자세를 지킨다. 꺼내진 다른 동물들도 잠시 눈이 휘둥그레지거나, 날개를 맹렬히 퍼덕이거나, 허공에 굳어 있거나 하지만 곧 얌전히 모여 엎드린다. 기뻐하는 엄마의 뽀뽀 세례를 느긋하게 받아내면서.

조지 안의 또 다른 조지들이 만날 때

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때가 많다.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무서울 때도 있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그걸로 내가 무너지거나 남을 무너뜨릴 일은 아니다. 내 안에 고양이·오리·돼지·소가 들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으면 된다. 늑대나 악어도 있을지 모른다. 그들을 제때 꺼내 분별 있게 할 일을 하도록 만드는 법을 부단히 익히면 된다. 그 과정에는 강아지답게 짖도록 가르치는 엄마(부모)가 필요하다. 무서워 보이겠지만 뱃속에 손을 집어넣는 의사(교사)도 필요하다. 안 그랬다면 조지 안의 또 다른 조지들이 밖으로 나와 모일 수 있었겠는가. 모두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는 한 장면이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내 안의 나에게 관대해질 수 있게 해준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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