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는 의학적 질병이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해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백신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 가운데 일부가 적극적인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제때에 출간된 M. 버만의『백신 거부자들』(이상북스,2012)은 백신 거부운동에 ‘사회적 질병’이라는 명칭을 선사하는 듯하다.

〈백신 거부자들〉을 다 읽고서, 파리에 살고 있는 진보·좌파라는 한국 여성 논객이 한글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퍼뜨리고 있는 짤(짧은 동영상)을 보았다. 미국 텍사스 상원 의회가 2021년 5월6일, 백신의 안정성을 놓고 개최한 코로나 백신 청문회에 나온 벤 에드워즈 박사는 여러 과학적 근거와 통계로 코로나 백신의 위험성을 증언한 다음, 자신의 발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궁극적으로 환자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하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강력한 면역체계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면역은 백신면역보다 강력합니다. 당신이 자신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정말 많습니다. 이것들은 너무 간단하게 들리지만 진실입니다. 제조된 음식보다 자연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고, 제일 중요한 것은 평화 속에 있으세요. 당신의 면역체계는 원래 디자인된 대로 작동할 것입니다.”

벤 에드워즈 박사의 증언 서두에 나오는 몇몇 과학적 근거들, 예컨대 “1995년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백신에 따른 특정 부작용의 보고는 오직 실제 사례의 1% 정도만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백신 회사들도 백신 부작용을 50분의 1 정도로 줄여서 보고해왔습니다” 같은 내용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지난 2월26일, 한국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된 이후로 백신접종 사망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정부와 의학계는 부정하고 있지만, 백신접종 후 24~48시간 이내에 생긴 기저질환 환자들의 사망은 백신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게 그야말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곧 백신을 맞을 것이다. 모든 약은 다 부작용이 있다. 하다못해 한국인의 소화제라는 ‘까스활명수’에도 있고, 그 좋다는 건강식품에도 있다. 오이·복숭아·번데기·땅콩·커피·콜라 등, 사람의 신체 외부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크고 작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하물며 백신은 병원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약독화(弱毒化)해 몸에 주입하는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손잡은 진보 인사들

조나단 M. 버만에 따르면 백신 거부자와 백신 거부 운동은 최근에 생겨난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예방접종에 성공한 이후, 영국에서는 생후 4개월 이상의 모든 유아에게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백신접종법(1853)이 통과됐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지은이는 바로 이 해가 백신접종 거부 운동이 시작된 원년이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백신을 통해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려는 국가 및 의학계와 백신 의무접종이 개인의 신체권과 의사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백신 거부 운동자들 사이에 정보 및 문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 시대의 과학적 발견은 먼저 그 시대의 지배적 관습이나 미신과 싸워야 한다. 제너가 활동했던 때, 영국의 농촌 사람들은 백신접종을 “인간의 몸에 짐승의 병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기피했고, 접종을 하면 소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신 거부 운동은 가난하고 무지한 농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재력가와 엘리트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거부 운동의 주력도 그와 같다. 벤 에드워즈 박사처럼 병원 체인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제조된 음식보다 자연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며 평화 속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1853년의 백신접종법에 대한 식자층의 거부 운동은 당대에 유행한 정치철학 담론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당시 엘리트 계층에게 영향력을 끼친 존 로크는 “법적인 권리와는 별개의 것으로서 인간의 법률에 의해 바뀔 수 없는 모든 인간에게 속한 권리가 ‘자연권’이다”라면서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을 법률에 위탁할 수 없는 자연권으로 보았다. 당대에 인기 있었던 또 다른 대안적 견해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루소는 “피통치자의 권리는 신의 명령이 아니라 정부와 피통치자 사이의 합의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백신 거부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파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맥락은 여기에 줄을 대고 있다.

반면 파리의 여성 논객과 같은 좌파 자유주의자들의 공통 주제는 백신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들의 이윤 동기다. “빅 파마(Big Pharma)는 당신을 속이고 있다. 빅 파마는 정부에 뇌물을 주었다. 의무적인 백신접종은 빅 파마에 새로운 고객을 넘겨준다. 미디어는 빅  파마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백신 연구는 독립적이지 않고, 그래서 편향적이다. 백신접종을 장려하는 사람들도 빅 파마의 야바위꾼이다!” 빅 파마는 백신과 같은 의약품과 생약의 생산에 관여하는 회사, 연구자, 규제 당국, 의사, 과학자들을 가리킨다. 문제는 진보·좌파연하는 인사가 빅 파마를 타도한다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요 교리와 손잡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면역의 신체를 주셨을 뿐 아니라, 여자를 지배하고 성소수자를 박멸하고 이방인을 섬멸하라고 하셨다.

한때 백신 생산에는 인간의 태아 조직에서 추출한 세포나 소나 돼지의 조직이 이용되었다. 가톨릭계나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종교적이나 윤리적으로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그런 부산물을 사용하지 않는 백신이 개발되었다. 이런 백신 거부 운동은 백신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정치적 신념과 종교를 기반으로 한 중상류층의 백신 거부자들은 사회 공동의 신체를 병들게 한다. 과학의 논리를 그들만의 신념과 이념으로 뒤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조나단 M. 버만이 제시한 여러 사례는, 백신 거부 운동가들이 백신 접종률을 급격하게 떨어트리거나 의무화를 철폐한 선진국의 여러 지역에서 홍역과 백일해 발병이 예외 없이 치솟은 사실을 보여준다. 과학이 승리하면 할수록 과학의 이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 백신의 딜레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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