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작고한 어느 문학평론가가 “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을 본다”라고 시작하는 김유담의 〈이완의 자세〉(창비, 2021)를 읽을 수 있었다면 필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김유담의 이 소설을 목욕탕계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말하는 고인은 아마도 장 필리프 투생의 〈욕조〉(세계사, 1991), 김지현의 〈춤추는 목욕탕〉(민음사, 2009),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을유문화사, 2011) 같은 작품을 염두에 두었을 터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갔을 것이다. “샤워꼭지가 있고, 욕조가 있고, 이태리 타올만 주어진 장소. 벌거벗고 자신의 살과 싸우는 그 자리엔 왕후장상이 따로 없소. 주관도 객관도, 갑도 을도 없는 범속하기 짝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인 것. 목욕탕으로 쳐들어간 작가는 자신의 문운을 평범하고 속된 것에 모두 걸었소.”

목욕탕계 소설에는 A형과 B형이 있다면서 고인은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때를 벗기다가 힘이 들어서 바나나 우유도 사 마시고 평상에 놓인 바구니 속의 곤달걀도 까먹었소. 때밀이를 불렀소. 그러니까 목욕탕은 범속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의 축소판인 것(A형). 반면, 얼음물이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서 수도를 하는 고승들처럼 목욕을 육체의 때나 벗기는 게 아니라 정신의 세신으로 여기는 부류도 있는 것(B형). 〈욕조〉가 B형이라면 〈이완의 자세〉는 A형에 든다고 하겠지요.”

〈이완의 자세〉의 주인공 유라는 경기도 외곽 재래시장에 위치한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구 선녀탕)에서 20년 넘게 때밀이로 일해온 오혜자의 딸이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계급장인 밑바닥 사회에서 엄마는 딸에게 일찍부터 무용을 시켰으나, 딸의 효도는 E여대 무용과에 합격하는 데까지였다. 그 자신이 실패한 무용가였던 변두리 무용학원의 윤 원장은 졸업과 함께 무용을 포기해버린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니나 내나 이거밖에 안 되는 기라. 우리는 내를 버리고 학이 될 수 없다 아이가.” 학춤의 최고 경지는 인간을 떠나 학(鶴)이 되는 것이라는 윤 원장의 말을 유라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종(種)이 다른데 무슨….”

과장이 심했던 문학평론가의 어투를 다시 빌린다. “그러니까 유라는 E여대 무용과 속의 별종이었던 셈이지요. 예술중, 예술고를 나와서 학이 되려는 계층과 한갓 때밀이의 딸로 학이 되려는 계층은 애초에 종이 다르다는 것 아닙니까. 무용학원의 윤 원장이 아무리 자세를 교정해주려고 해도 몸이 뻣뻣해서 너 혼자 해보라며 다시는 유라의 몸에 손대지 않았다는 것. 반면 태어나서 한 번도 대중탕에 가본 적 없었던 E여대 무용과 동문들의 몸은 유연했다는 것. 지금 작가는 삶에서 두 계층이 누리는 이완의 강도를 따지고 있군요. 부는 신체도 생활양식도 유연하게 만들고 가난은 그 모두를 강퍅하게 만드는 법. 작가는 계층이 유물론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종의 문제라고 강변하는 형국입니다. 양극화가 서로 다른 몸을 만드는 데까지 왔다는 거니까요.”

이 소설에는 유라 말고, 변두리 동네를 뜨는 게 꿈인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의 늦둥이이자 외동아들인 만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부터 야구선수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작중에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지만, 만수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야구를 시키려는 이유는 뻔하다. 신분 상승. 야구는 축구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다. 목욕탕을 하는 정도의 집안에서 외동아들에게 시킬 수 있는 운동이 야구나 축구였던 것.

때밀이 딸과 목욕탕 집 아들의 운명

매슈 스튜어트는 〈부당 세습〉(이음, 2018)에서 이렇게 말한다. “체육 특기생 전형 또한 따져보면 일반적 통념과는 반대로 부유층에게 유리하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은 사립학교와 엘리트 공립학교가 두각을 나타내는 라크로스, 스쿼시, 펜싱 등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를 한다.” 상류층은 자식을 체육 특기생으로 만들기 위해서거나 직업 스포츠 선수로 만들기 위해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로 내몰지 않는다. 상류층은 가난한 이들이 돈 때문에 넘보기 힘든 진입장벽 높은 스포츠를 선택해서 자식을 체육 특기생으로 만든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특기생으로 E여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완의 자세〉김유담 지음 창비 펴냄

다시 그분의 어투로 말해보자.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미 그것을 말하였소. 그는 1979년에 나온 대표작에서 각종 문화 활동이 특정 계층의 취향이듯이 스포츠에 대한 취향 역시 계층을 반영한다고 했소. 그는 상류층이 즐기는 요트·승마·스키를 ‘캘리포니아적 스포츠’라고 했는데, 이 스포츠의 특징을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형식이라고 하면 또 어떨까. 상류층은 너무 고귀해서 경쟁을 멸시한다오. 그리하여 이들은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을 나와 자연(=외화된 내면)에 대한 싸움으로 대체했소. 반면 중산층과 하류층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신의 고단한 삶을 축구나 야구 경기장 그리고 링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소. 노동자의 삶과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하드 보디(hard body)’가 필수인 것. 야구나 축구를 가리켜 ‘몸으로 때우기’라고 말하면 저속하다고 나무랄 독자도 있을 테지요.”

저속한 것은 야구나 축구가 아니다. 폭력과 비상식이 판치는 엘리트 스포츠가 저속하다. 만수가 중학교 때부터 코치에게 ‘빠따’를 맞아온 것이 증거다. 유라가 부모에게 알리려고 하자 만수는 이렇게 만류한다. “말씀드리면 뭐? 뭐가 해결되나? 야구 관둘 거 아닌 이상은 그냥 참아야 해. 다들 그렇게 운동 배우는 거야.” 목욕탕이 재벌은 아니지만 그 정도라도 해야 자식에게 축구든 야구든 시킬 수 있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간식비 추렴하고, 전지훈련비 대고, 감독에게 상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 나온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의 실태를 보면 그 사정이 더욱 확실해진다. 운동하는 아이를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돈이 1억원 안팎인데, 감독과 코치의 월급을 주는 건 학교가 아니라 선수의 학부모다(“학부모가 월급 주는데 감독이 왜 갑질 하나요?”, MBC ‘뉴스인사이트’ 2021년 7월3일). 서민에게 1억원은 크지만, 말 한 마리를 사는 데는 턱도 없는 액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투수 유망주였던 만수는 일본의 야구 명문고로 유학까지 갔으나 부상을 당해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왼쪽 어깨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은 그는 재활 불능 판정을 받았다. 〈이완의 자세〉는 몸밖에 없는 때밀이의 딸과 목욕탕 집 아들이 몸뚱어리 하나로 신분 상승을 꿈꾸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다. 유라도 만수도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올 운명이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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