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의 증권거래소. 2020년 독일 젊은 층의 주식투자 인구는 전년보다 67%나 늘었다. ⓒReuter

독일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식 붐이 일고 있다. 독일 주식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인 1240만명이 직접 주식을 사거나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방식을 통해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14세 이상 독일인을 기준으로 주식투자 인구가 전체의 17.5%에 해당된다. 그 전해(2019년)에 비해 28%(270만명)나 증가했다.

특히 10·20 세대에서 60만명이 주식시장에 뛰어들며 붐을 주도했다. 이 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경제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절대적 인구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해 14세 이상 30세 미만 젊은 층의 주식투자 인구는 그 전해보다 67%나 늘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 20년 동안 독일에서 주식은 선호도가 낮은 투자처였다. 대다수 시민이 주식에 회의적이었다. 2019년 올라프 숄츠 재무장관은 시사주간지 〈포쿠스〉의 온라인 토크쇼에서 “나는 은행 통장 외에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주식시장을 두려워하는 전통적인 구세대의 생각을 대변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독일 주식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독일 전체 인구의 6%만이 주식투자를 했다. 같은 시기의 네덜란드(30%), 일본(28%), 미국(25%), 영국(23%)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율이다.

독일에서 주식의 인기가 낮았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불안전성이다. 특히 ‘도이치텔레콤’ 주식 사태는 독일인에게 주식에 대한 커다란 불신을 남겼다. 국영 통신기업이었던 도이치텔레콤은 1996년 주식을 상장하며 민영화된다. 도이치텔레콤은 약 1억 마르크(약 5100만 유로)에 달하는 홍보비를 사용하며 자사의 주식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안전하고 투자가치 높은 ‘국민 자산’으로 선전한다. 이런 공격적 홍보에 힘입어 도이치텔레콤 주식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발행가 28.50마르크(약 14.57유로)로 시작한 주가는 상장 당일 33.90마르크(16.51유로)로 마감했다. 도이치텔레콤은 이 상장을 통해 약 100억 유로에 이르는 자본을 조달했다. 이 회사의 주가는 2000년 3월에는 103유로를 기록했다.

독일 주식시장은 도이치텔레콤 주식 붐과 닷컴버블(인터넷 관련 주식의 급성장)로 1999~2000년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2000년에는 독일인 약 620만명이 주식에 직접 투자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순식간에 붕괴하고 만다. 도이치텔레콤 주가 또한 회사의 사업 실패로 2001년에 20유로로, 2002년에는 10유로 이하로 떨어진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자산의 대부분을 잃거나 빚을 지게 되었다. 이후 독일의 개인 주식투자자는 2008년 350만명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지난 5월 여론조사 기관 ‘치베이’가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의뢰를 받아 시행한 독일인 투자 선호조사 결과, 응답자의 34%가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를 선택했다.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투자 대상이 주식이다. 전통적 투자 대상인 부동산과 예금통장은 각각 21%(2위)와 5%(3위)를 기록했지만 주식투자에 비해 선호도가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주식시장 선호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독일 부동산투자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접근 불가능할 정도로 진입장벽(가격)이 높다. 전통적인 은행 통장은 저금리로 인해 수익률이 너무 낮다. 결국 상당수 시민에게는 주식이 유일한 투자처로 남았다.

코로나19 유행 또한 주식 붐의 요인이다. 독일중앙은행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인의 저축률은 역대 최고인 16%를 기록했다. 레스토랑과 상점이 문을 닫고 휴가도 갈 수 없게 되어 지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인해 시민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와 함께 불과 10~20분 만에 계정을 열고 거래에 돌입할 수 있는 주식거래 앱들이 공급되자 자택에 갇힌 시민들이 주식투자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앱을 통해 주식은 물론 각종 펀드·파생상품·가상화폐 등에 투자할 길도 열렸다.

전문가들은 앱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덕분에 젊은 세대가 주식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장기 투자가 아니라 단기 매매를 통한 높은 수익만 좇게 되었다고 우려한다. 젊은이들이 위험도가 높은 고리스크-고수익 파생상품에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된 점도 결코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린 청년들의 사례가 공유되면서 요행을 바라는 주식투자를 자극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독일의 대표적 주식거래 앱인 ‘트레이드 리퍼블릭(Trade Republic)’의 창업주 크리스티안 해커는 〈슈피겔〉 인터뷰에서 자기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에 투자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면서 ‘단기적 등락이 아닌 주식시장에 대한 정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서는 ‘이용자의 자율적 판단이 중요하다’며 투자자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파생상품 판매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2015년 창립한 트레이드 리퍼블릭의 회원 수는 2020년 4월까지는 15만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 기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회사의 자산가치는 430억 유로(약 5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핀테크 기업 중 가장 높은 가격이다.

독일 최대의 주식 유튜브 채널인 피난츠플루스를 운영하는 토마스 켈. ⓒYouTube 갈무리

할머니 유산 종잣돈으로 주식투자

유튜브는 10·20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가장 중요한 창구다. 31세인 토마스 켈은 독일에서 가장 큰 주식 관련 유튜브 채널 ‘피난츠플루스(Finanzfluss)’를 운영한다. 토마스 켈의 채널은 74만명이 구독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30세 미만이다. 그는 〈베를리너 차이퉁〉과 인터뷰하면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과거보다 주식시장 접근이 쉬운 데다, 다양한 상장지수펀드를 통해 투자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으므로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특히 젊은 여성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환경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기업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주식투자 붐의 사회적 순기능을 강조하기도 했다.

〈슈피겔〉에 소개된 사브리나 마운츠 씨(31) 사례는 주식투자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일반적 생각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자산의 절반을 펀드매니저에게 위탁하고 있으며 나머지 절반은 앱을 통해 직접 주식투자를 한다. 그는 할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아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할머니가 근검절약하며 돈을 저축했지만 은행 직원의 제안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투자를 위해 은행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게 마운츠 씨의 생각이다. 은행의 상담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는 스스로 투자에 대해 공부하고 자본을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정보를 찾아본 뒤 첫 번째 주식을 구입했다. 그는 홀로 주식투자를 하면서 처음에는 조금 손해를 봤지만 최근 독일 주식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대체로 큰 수익을 냈다고 한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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