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AP Photo

가치주(value stock)와 성장주(growth stock)는 대형주와 소형주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는 쌍둥이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투자 스타일 분류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서로 다투어왔던 경쟁 스타일일 수도 있겠다. 미국에서 종목별 주가를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기 시작한 192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까지의 기간만 보더라도 대개 가치주 포트폴리오(여러 개별 주식들의 조합)의 수익률은 성장주 포트폴리오보다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가치 이상현상(value anomaly)’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과 테슬라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성장주들의 최근 주가 상승은 엄청났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런 추세가 또다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성장주에 밀렸던 가치주의 자존심이 다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4월 ‘가치주가 (성장주를) 따라잡고 있는 중. 이유는 여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치주와 성장주의 상대적 수익률이 올해 들어 지난해와 확연히 다르게 변했음을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지난 2월 러셀 1000 가치주 지수가 성장주 지수 수익률을 6%포인트 이상 넘어섰다며 이는 2001년 3월 이후 가장 큰 수익률 차이라고 말했다. 또 2020년에는 낮은 이자율이 성장주의 주가 상승을 이끌어냈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강한 기대가 당분간 가치주의 앞날을 밝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 경제신문은 유명한 가치투자자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고문이 ‘가치주 시대가 올 것’을 예고했다는 발언을 전했다. 최근 성장주의 부진은 금융시장에 무겁게 드리운 인플레이션 공포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치주의 시대가 올지 오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앞으로 닥쳐올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지 아니면 보다 지속적으로 시장에 깊은 충격을 남길지에 대해서조차 의견이 대립하는 것도 이유가 될 터이다.

1. 가치주와 성장주, 그리고 PBR

가치주는 펀더멘털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그리고 성장주는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아 좀 더 고평가된 종목들을 통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그러나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 식의 구분이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런 식의 단순한 분류는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기업의 시장가치(주가)는 장부가치(book value)와 성장가능성(growth opportunity 또는 growth option)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중 장부가치는 회사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의 가치다. 다시 말해 과거의 부단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의 가치다. 그러니 과거지향적인 가치라고 볼 수 있다. 회사는 갖고 있는 것들을 투자해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그리고 이 미래가치들에 의해 지금의 주가가 결정된다. 그러니 주가는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다. 이걸 간단한 공식으로 써보자.

P는 주식의 시장가치(주가), B는 장부가치, G는 성장가능성이고 단위는 모두 한 주당 가격이다. 장부가치가 일정하다면 성장가능성이 높을수록 주가가 높을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성장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회사가 앞으로 현금을 더 많이 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금은 많이 창출될수록 좋은 것이다. 논란이 있지만 주주들은 아직 회사의 주인이라는 위치를 내놓지 않고 있으며, 어쨌든 회사가치 중에서 빚을 갚고 난 부분들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주들은 성장가능성이 높을수록 앞으로 보다 많은 배당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것이다. 성장가능성이 높을수록 주가가 높은 이유다.

지난해 12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아마존 물류센터.ⓒDPA

성장가능성의 가치는 주가와 장부가치를 비교해 추론해낼 수 있다. 위의 식에서 보이듯 단순히 주가와 장부가치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보통 주가순자산비율, 즉 PBR(또는 P/B)로 측정한다. PBR은 주가를 장부가치로 나눈 값이다.

PBR이 높다는 것은 시장이 이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에 주가가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장주란 대개 이렇게 성장가능성이 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PBR이 높은 주식들을 지칭한다. 성장가능성이 충분히 높으면 주주들은 비록 현재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이 적더라도, 따라서 배당이 크지 않거나 심지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곤 한다. 보통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배당수익률(dividend yield:주당 배당액을 주가로 나눈 비율)이 낮은 이유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들은 약탈적 가격정책(predatory pricing)을 써서 낮은 가격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 경쟁자를 고사시키고 이후 독점이윤을 얻으려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기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독점을 통해 훨씬 더 많은 현금을 벌어들이게 될 것이다.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높이 본다면 주주들은 대개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다소 극단적 사례인 듯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대형 성장주들이 애용하는 전략이다.

2019년 3월 독일 베를린에 있는 테슬라 전기차 전시장 모습. ⓒEPA

가치주라고 불리는 주식들은 성장가능성이 낮아 장부가치가 기업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니 PBR이 낮다. 이런 주식들은 주가가 펀더멘털보다 저평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저평가되어 있다면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니 지금 매수하는 게 좋을 것이다. 가치투자란 이런 방식의 투자를 널리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낮은 PBR은 또한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 기업의 영업성과가 나빠서 시장이 그 기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경우에도 PBR은 낮은 값을 갖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가능성은 투자된 장부가치가 투자비용 이상을 벌어들일 때 긍정적으로 현실화된다. 만약 투자비용도 건지지 못할 수익을 내는 회사라면 성장가능성이 손실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고, 시장은 이런 회사의 PBR을 낮게 평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낮은 PBR은 기업이 투자비용 이상도 제대로 벌어들이지 못할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슨 기계설비들로 가득 찬 공장을 생각해보자.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설비들은 장부가치에 반영된다. 이런 회사는 당연히 수익성이 나쁘고 따라서 장부가치가 주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낮은 PBR을 갖게 된 회사를 저평가된 회사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낮은 PBR을 놓고 이것이 저평가된 탓인지, 수익성이 나빠서인지 판단하는 데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보기술·전기차·헬스케어·바이오·커뮤니케이션 등에 관련된 주식들은 성장주의 사례가 된다. 반면 비즈니스 모델이 비교적 안정적인 단계에 올라 있는 금융·산업재·소재 등은 가치주로 구분된다. 물론 이와 같은 구분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서 오늘의 성장주가 내일은 가치주로 새로이 편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데 자주 쓰이는 또 다른 측정치는 주가수익비율인 PER (Price-Earnings Ratio:P/E)이다. 이는 주가를 주당순이익(Earning Per Share:EPS)으로 나눈 값이다.

PER이 높으면 주식의 시장가치가 이익 대비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밸류에이션(valuation)이 높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 이 값은 회사가 이익을 모두 배당으로 지급할 경우 주식을 사는 데 투입된 비용(주가)을 회수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PER이 10(배)이면 현 수준의 이익을 10년 동안 벌어야 주가를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PBR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PER이 낮다고 이를 해당 기업의 주가가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시장이 이 회사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 저평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기업의 낮은 성장가능성을 시장이 제대로 평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가치주의 귀환인가?

성장주는 대개 경기회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호황기에 가치주보다 유리하다고 본다. 반면 불황기와 경기회복 초기 단계에는 가치주가 선호되는 경우가 많다. 불황에서 완전히 회복된 경우가 아니라면 성장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회복이 확실시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선호는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회복에 따라 이자율이 덩달아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이자율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가치주가 선호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대개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이자율 변화에 취약한 데서 비롯된다. 이자율이 올라가면 할인율이 커져 주식가치는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하락 정도는 가치주보다 성장주가 대개 더 크다. 왜 그럴까?

5월11일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가 최근 3개월 사이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AFP PHOTO

현금 100억원(모두 배당으로 지급)을 1년 후에 벌어들이는 회사(‘금방’이라 하자)와 10년 후에 벌어들이는 회사(‘나중’)를 생각해보자. 편의상 다른 현금흐름은 없다고 하고 두 회사 모두 위험이 같아 현재 가치(다시 말해, 주가)를 계산할 때 동일한 할인율인 10%를 적용할 수 있다고 치자. 주가는 ‘금방’이 91억원(=100억/(1+0.10)), ‘나중’이 39억원(=100억/(1+0.10)10)이 된다. 이제 이자율이 20%로 올랐다고 하자. 그럼 ‘금방’의 주가는 83억원(=100억/(1+0.20)), ‘나중’은 16억원(=100억/(1+0.20)10)이 된다. 두 회사 모두 주가가 하락했지만 하락폭은 ‘나중’의 경우가 훨씬 크다. ‘금방’의 경우 91억원에서 83억원으로 8% 정도 하락했지만, ‘나중’의 경우 39억원에서 16억원으로 무려 58% 이상 폭락했다. 두 회사의 차이는 오직 현금을 벌어들이는 시점에 있었다. 같은 현금이라도 ‘금방’ 벌어들이는 회사보다 ‘나중’에 벌어들이는 회사의 주가가 이자율 변동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예의 경우 이자율 변화는 ‘나중’의 경우 10배나 증폭되어 반영된다(분모의 10승은 이자율 변화를 10번 곱해서 주가에 반영하라는 뜻이다). 가치주가 ‘이미 있는 것들’의 가치가 커서 현금을 좀 더 ‘금방’ 벌어들인다면, 성장주는 성장가능성이 실현되는 시점인 좀 더 ‘나중’에 현금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현금흐름은 예에서 보았듯 먼 미래에 발생할수록 이자율 변화에 민감하다. 이자율이 높아질수록 성장주의 주가하락이 가치주보다 더 커지는 이유다.

3월25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새 서비스를 발표하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AP Photo

대표적 성장주인 나스닥의 대형주, FAANG의 최근 주가를 살펴보자. 애플과 넷플릭스는 모두 올해 현재까지의 최고가를 1월26일에 기록했는데 각각 143.16달러, 586.34달러였다. 이들 주가는 5월12일 현재 122.77달러(애플), 484.98달러로 각각 14%, 17% 이상 하락했다. 아마존·페이스북·알파벳(구글)은 모두 올해의 최고가를 4월29일에 기록했는데 불과 2주 정도가 지난 5월12일 현재 모두 8~9% 이상 하락했다. 최근 급증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고려해 연준이 이자율을 올리거나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는 등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탓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성장주와 가치주를 맞대놓고 비교해 이들의 상대적 수익률 변화를 살펴보자.

3. 가치주 프리미엄인가?

성장주는 ‘글래머 주식(glamour stock)’이라고도 자주 불린다. 인기가 좋아 높은 밸류에이션(예를 들어 높은 PER)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가가 높아 수익률은 번번이 가치주보다 낮았다.

위 〈그림 1〉은 투자회사인 뱅가드가 만든 성장주, 가치주 지수 변화를 2000년 1월1일을 100으로 조정한 값으로 보여준다. 자주색이 가치주, 파란색이 성장주다. 그림은 1992년부터 2021년 5월 중순까지 대부분의 기간에 가치주 수익률이 성장주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340개월이 넘는 동안 성장주 수익률이 더 높았던 예외적인 기간은 1999년 12월부터 2000년 8월, 그리고 2020년 2월부터 현재 시점까지를 합친 24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가치주 프리미엄(value premium:가치주 수익률이 더 높은 현상)’은 경제학계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실증연구를 통해 보고되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0년 1월 대비 누적수익률은 2021년 5월14일 현재 가치주가 311%, 성장주가 357%로 오히려 성장주가 더 높다. 팬데믹 시기 성장주의 눈부신 주가상승의 결과다. 그러나 이를 가장 최근의 두 달로만 집중해서 보면 또 다른 패턴이 감지된다. 4월 말, 가치주 지수는 399.05, 성장주는 473.98이었다. 그림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불과 2주 후인 5월14일, 가치주는 411.46으로 상승한 반면 성장주는 456.99로 폭락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시장을 휩쓸던 시기다. 가치주의 시대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언론의 호들갑도 시작됐다.

성장주들이라 하더라도 FAANG과 같은 대형 성장주들은 다른 중소형 성장주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포브스〉는 시가총액이 큰 200개 대형주들을 대상으로 한정해 가치주와 성장주를 나눈 뒤 성과를 비교해본 기사를 실었다. 꽤 흥미로운 결과이므로 이 기사를 인용해보도록 하자. 〈그림 2〉는 시가총액이 큰 종목만으로 한정한 경우,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 올해 4월 초까지 성장주(보라색)가 가치주(오렌지색)보다 무려 두 배 가까이 성과가 좋았음을 보여준다(가운데 파란색은 200개 대형주 지수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듯 대형-성장주 포트폴리오는 불과 6종목(애플·아마존·테슬라·페이스북·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에 달해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다. 반면 대형-가치주의 경우에는 지수의 절반을 차지하려면 26개 종목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성장주의 성과는 몇몇 대형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올해의 결과만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그림 3〉은 포트폴리오들이 올해 초 같은 값을 갖도록 조정한 후 4월 초까지의 수익률 변화를 보여준다. 가치주(오렌지색)가 성장주(보라색)보다 무려 8배 이상 성과가 좋았음이 한눈에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렇게 월등하게 성과가 더 좋았던 건 가치주다, 성장주가 아니고! 그림은 특히 2월 이후 성장주의 수익률이 한껏 꺾이는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다. 2009년부터 가치주보다 무려 2배 이상 큰 성과를 보여주었던 성장주가 올해에는 단 4개월 동안 가치주에 비해 8배나 처절하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최근 성장주의 폭락과 가치주의 재림(?)이 이슈가 되는 이유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4. 가치주 프리미엄은 왜 생길까?

이제 가치주가 오랜 기간 성장주보다 수익률이 높았다는, 꽤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에 다시 주목해보자. 몇 번 이 지면에서 강조했다시피 높은 수익률은 높은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시사IN〉 제674호 ‘위험한 사모펀드에 반칙까지 더해진다면?’, 제685호 ‘동학개미 수익률은 확신 편향이 만든 허상’ 참조). 그렇다면 가치주는 성장주보다 더 위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치주 수익률이 꾸준히 성장주 수익률보다 높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위험 수준만으로는 가치주 프리미엄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의 골칫거리였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여러 종류의 위험들을 비교해보았으나 성장주와 가치주 간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위험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수익률이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골칫거리들은 가치주-성장주뿐 아니라 다양한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발견되는 것이어서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에 ‘시장 이상현상(market anomal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이상’이라는 것은 수익률을 위험으로 설명할 수 없어서 이상하다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기업가치의 많은 부분이 ‘이미 갖고 있는’ 자산인 장부가격에서 오는 경우와 아직 실현되지 않아 ‘성장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경우, 어느 쪽의 위험이 더 높다고 생각되는가. 위험을 단순히 불확실성으로만 생각해보더라도 실현되지 않은 가치가 이미 갖고 있는 가치보다 더 불확실할 것이라는 점은 상식에 가깝지 않은가. 당연히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더 위험할 텐데 그렇다면 왜 위험에 대한 보상인 수익률은 가치주에서 더 큰 것일까?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던 그 오랜 고민의 결과들을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다소 뜬금없이 지금은 은퇴하신 나의 지도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당부해달라며 예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예전에 윗세대들이 그랬듯이 좋은 직장을 잡았다고, 다시 말해 안정적이고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안심하는 것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다는 말씀이셨다. 큰 회사일수록 변화의 트렌드에 느리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어딜 가나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연마하는 것만이 가장 마땅한 헤지(위험 회피)가 될 거라는 말씀이셨다. 사실 제너럴모터스·소니·노키아·모토롤라 등 당대를 호령하던 기업이 어떻게 몰락했는지에 대한 사례는 차고 넘치지 않는가.

‘이미 갖고 있는 가치’가 많은 기업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이미 갖고 있는 자산들을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맞게 바꾸는 것이 차라리 새롭게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육상 선수가 되고 싶은 스모 선수는 얼마나 힘든 노력을 해야 할까). 변화에 저항할 때 나오는, 이러한 ‘비가역성 위험으로 인한 비용(cost of irreversibility)’은 만만치 않게 크기 마련이다.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개념을 이용해 가치주 프리미엄을 꽤 성공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었다(가치주의 비가역성 위험이 성장주보다 대개 더 크니 더 큰 보상(수익률)이 주어져야 한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기회일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다. 스승의 날이 살짝 지난 즈음 가치주가 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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