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미니 카드와 토스 유스카드 서비스(왼쪽부터).ⓒ김흥구

중학생 신소윤 양(13)은 지난 5월 인생 첫 본인 명의의 계좌와 카드를 만들었다. 만드는 데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에서 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이용약관에 동의 버튼을 누르고, 본인과 보호자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인증 문자를 받고, 마음에 드는 카드 디자인을 고르면 끝이었다. 며칠 뒤 배송된 카드로 편의점·식당 등에서도 쓰고 인터넷 쇼핑할 때도 활용했다. 앱으로 간편히 송금도 되니 친구들과 놀고 나서 더치페이를 하기도 용이했다. 신 양은 “내 이름으로 된 카드가 있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카드를 긁을 때마다 알림 문자가 와서 관리가 편하다. 내가 어디에 가장 많이 소비를 했는지, 지난달과 비교해 어떤지도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내돈내관(내 돈은 내가 관리하는)’ 10대가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과 금융사 앱이 그 필수 수단이다. 돼지 저금통에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모으고 종이 용돈기입장에 지출액과 소비액을 꼼꼼히 기록하는 대신, 이제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핀테크’를 활용해 성인처럼 돈을 쓰고 모으고 부치고 받는다. 카카오뱅크의 ‘미니’, 토스의 ‘토스 유스카드’, 국민은행의 ‘리브 넥스트’, 하나은행의 ‘아이부자’, 신한은행의 ‘신한밈’ 등이 10대를 겨냥한 대표적인 금융 서비스다.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현행법상 금융 활동에 여러 제한을 받는다. 만 19세까지는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고 만 14세 미만은 스스로 통장을 개설할 수 없다. 보호자가 각종 서류와 도장을 갖추고 은행을 방문해야 미성년자 명의의 정식 계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성장하는 10대 금융 서비스들은 이 규제의 틈새에서 방법을 찾았다. 대부분 가상계좌, 선불충전 방식을 활용한다. 정식 계좌가 아니어서 예금자보호법의 대상이 아니고 이자도 붙지 않는다. 일별·월별 사용 한도도 작다. 하지만 일상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성인의 계좌·카드와 별다를 바가 없다. 스마트폰 앱으로 이용내역과 잔액을 확인하고, 지문 인식이나 비밀번호 입력 하나로 송금을 하며, 간편결제를 등록해 각종 ‘페이’로 인터넷 쇼핑이 가능하다.

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시장은 더욱 커졌다. 카카오뱅크는 2020년 10월 만 14~18세 청소년 대상의 선불 전자 지급수단 서비스 ‘미니’를 출시했다. 온·오프라인 결제, ATM 현금 인출은 물론이고 카카오톡으로 친구 간 간편이체도 할 수 있다. 2년 사이 146만명, 해당 연령대 인구의 약 64%가 가입했다.

토스는 지난 2월 ‘토스 유스카드’를 내놓았다. 연령대를 더 낮춰, 만 7세부터 가입을 받았다. 이제 초등학생도 자기 명의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소비와 송금은 모두 보호자의 관리나 승인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토스 측은 “지금까지 어린이와 청소년의 금융 생활은 부모 의존적이었다. 돈을 벌고 쓰고 관리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10대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금융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라고 밝혔다.

‘카뱅’이나 ‘토스’ 생활은 이제 10대 사이에 유행이 되었다. 유튜브·틱톡 등에는 ‘카뱅 미니 발급기’ ‘토스 유스카드 (부모님 몰래) 만드는 법’과 같은 동영상이 인기를 끈다. 많은 청소년들이 SNS 프로필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카뱅·토스 계좌번호를 함께 공개해놓기도 한다. 친구들과 같이 밥 먹거나 놀고 나서 비용을 나눌 때 현금이나 ‘엄카(엄마 카드)’를 내밀면 영 폼이 나지 않는다며 너도나도 ‘내 명의 카드를 만들게 해달라’고 보호자를 조른다. 토스 유스카드를 사용하는 한 청소년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부모님에게 사용내역 알림이 안 간다는 장점 때문에 특히 이 카드의 인기가 높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 학부모 은 아무개씨는 최근 또래 친구들이 다 가입했다며 자신에게도 토스 계좌 개설을 동의해달라는(가입 시 보호자 휴대전화 번호로 인증 확인이 1회 간다) 중학생 1학년 자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은씨는 “아이가 돈을 어디에서 얼마나 썼는지 동선 체크도, 안전관리도 전혀 할 수가 없다. 금융범죄나 학교폭력 등에 악용될 소지도 많은 것 같아 아이에게 허락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실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올해 알려진 사건만 보자면, 광주광역시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 사이 토스 앱을 통한 금전 갈취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토스로 ‘월 상납’을 받았다. 이를 거부하면 앱 화면 인증을 요구했다. 충남 당진시의 한 고등학교 학교폭력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돈받는 날마다 스마트폰을 빼앗아 카카오뱅크·토스 등에 접속한 다음, 자신의 계좌로 돈을 인출했다.

무분별한 인터넷 쇼핑이나 게임 아이템 구매에서부터 금융 사기나 불법 사채에 연루되는 일까지, 어른들에게 돈과 관련돼 일어나는 모든 어두운 사건들이 10대에게도 지금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자녀의 친구들이 토스나 카카오 계좌 등을 활용해 고금리 사채놀이, 불법도박(스포츠) 자금 거래, 중고거래 사기, 주식이나 비트코인 거래 등에 가담하거나 연루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 학부모 김민정씨(가명)는 “자기들끼리 삥 뜯기, 이자놀이, 돈세탁 등 난리도 아니다. 애초 용돈 말고 소득이 없는 10대 청소년들이 이토록 자유롭게 계좌를 만들고 돈거래를 할 수 있게끔 놔두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주식계좌 비대면 개설도 검토

윤정하 토스 커뮤니케이션팀 매니저는 미성년자의 계좌 사용내역이 보호자에게 공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청소년도 소비와 지출을 할 때 프라이버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비자 목소리를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윤 매니저는 “보호자가 고객센터에 연락을 주면 미성년 자녀의 입출금 내역 확인이 가능하고, 미성년자가 앱 내 새로운 기능을 최초로 쓰면 보호자에게 알림이 가기도 한다. 또 청소년 유해 업종에서는 카드 이용을 금지하며, 송금이나 결제 시 반복적이고 의심스러운 거래를 미리 감지하고 차단하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금융 세대가 출현했다. 돼지 저금통을 안고 은행을 방문하던 ‘첫 금융 기억’은 옛말이다. 이제 자라나는 세대는 SNS 메시지를 보내듯, 클릭 몇 번으로 계좌 속 숫자가 오르내리는 경험을 통해 돈의 세계를 배우고 있다. 과거 세대에게 없던 새로운 금융 이해도와 상상력이 이들에게 주어질 순 있을 것이다. 반면 안전한 금융 생활에 필수적인 신중함·인내심 같은 미덕은 경험해볼 기회가 줄어들었다.

핀테크 시장은 10대와 점점 더 접점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만 14세부터 19세 미만 미성년자도 마이데이터(개인 금융·신용정보 통합조회 및 관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었다. 청소년이 주식계좌를 비대면으로 개설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증권업계의 요구도 금융 당국이 계속 검토하는 중이다. 규제가 풀리면, 만 14~18세 청소년도 간단한 본인인증과 보호자 동의 절차 등만 거치면 스마트폰 앱으로 자유롭게 주식계좌 개설과 거래가 가능해진다.

시장은 앞서 나가는데 이에 걸맞은 10대 금융 교육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아직 ‘지폐와 동전의 종류를 알아봅시다’ ‘은행 창구를 방문해보아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배중기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국 학교금융교육팀 부국장은 “금감원에서 초중고용 표준 금융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지만 정규 교과과정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학생들이 불법 금융거래 예방, 개인정보 보호 등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금융 교육 노출 기회가 더욱 많아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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