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달라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요구가 투영된 결과(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결코 이준석 개인기로만 설명될 수 없는 현상(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청년 최고위원).” “기성 시스템과 여기에 관여한 정치인 모두에 대한 탄핵(천하람 국민의힘 전남순천갑 당협위원장).” “폄훼할 게 아니라 큰 자극제로 삼아야 하는 사건(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청년 최고위원).”
청년 정치인들이 ‘이준석 현상’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이준석과 이준석 현상은 다르다.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평가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청년 정치인들 사이에서 엇갈렸지만, 86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독점하는 정치판에서 ‘0선’의 30대 남성 당대표 후보를 향한 지지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데는 한목소리가 나왔다.
청년 정치인들은 ‘이준석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준석 현상을 관통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세대교체였다. 이준석을 청년이라는 렌즈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국민의힘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이기도 한 천하람 당협위원장은 당대표 선거 결과 발표 이틀 전인 6월9일 〈시사IN〉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당대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전례 없이 뜨겁다. (이준석 후보가 당선되면) 중진(의원)들은 ‘흘러간 물’이 될까 봐,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패싱’되는 거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있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이번 신드롬만으로도 국민의힘에 새로운 돌풍이 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때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야당 복도 많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반전됐다. 5월31일부터 6월4일까지 진행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38%)이 민주당(29.7%)보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선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바짝 추격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이 있는데 어떻게 바뀔지 예상이 안 된다’ ‘나보다 어린 당대표를 모셔야 하나’ ‘그래도 수직적인 당내 문화가 많이 변하지 않겠나’ 등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정치 지향이 다른 청년 정치인들에게도 이번 국민의힘 대표 선거와 이준석 돌풍은 일면 고무적이었다. 특히 여야 청년 정치인에게 공통적으로 “용기 있다”라고 평가받은 장면이 있다. 6월3일 국민의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선보인 이준석 후보의 연설. “저는 제 손으로 탄생에 일조한 박근혜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서 국정농단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비판했다. 국가가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그 시점에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표를 떠나 그날은 (이준석) 정치 인생에 유의미한 연설로 기록될 것 같다. 대구의 핵심 정서를 이루는 보수 지지층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말이었다. 기성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소구력 있게 들렸다.” 나경원 후보는 이준석 후보를 ‘유승민계’로 몰아붙이거나 ‘김종인의 상왕 정치를 보게 될 것’이라며 계파 갈등을 부각시켰다. 주호영 후보는 이준석 후보에게 ‘국회 경험이 없다’며 공격했다. 문제는, 그럴수록 오히려 이준석 후보에게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쏠리는 모양새가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왜 우리에겐 젊은 기수가 없는가’라는 성토도 나왔다. 지난 5월21일 임명된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 경직돼 있는 측면이 있다. 두 단체장의 성 비위 사건 이후 한 번도 토론이 열리지 못했다. 경직돼 있어서 잘못된 선택으로 갔고 바로잡지도 못했다. 위선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런 부분을 복기해야 한다.”
‘이준석 현상’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다. 조성주 현 정치발전소 대표는 2015년 정의당 대표에 출마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37세였다. 조성주 대표는 이준석 현상을 청년 정치의 부흥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제가 냈던 메시지가 청년에 국한된 의제가 아니었음에도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청년 정치’로 계속 조명하더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산업과 가구 규모의 변화가 만들어낸 노동·주거·젠더 등 의제가 다양한데 ‘청년’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정치 의제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이준석 현상과는 별개로 ‘정치인 이준석’은 논란이 많다. 이준석 후보는 엘리트주의와 반페미니즘이라는 논란 위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석 현상과 이준석을 분리해서 보면 여러 논쟁 지점이 펼쳐진다. 이 후보의 인기는 GS25 홍보물과 이수역 폭행 사건 등에서 페미니즘을 공격의 소재로 삼으면서 급부상했다. 이는 당대표 공약으로도 이어졌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여성·청년에 대한 가산점과 할당제를 폐지하고, 공직선거 후보자 공천 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엑셀 사용 능력 등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가릴 것 없는 비판 공세가 이어졌다. 같은 당 나경원 후보의 입에서조차 “본인도 혜택을 받아놓고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 “트럼프식 분열과 혐오의 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도 이준석 후보는 당대표 예비경선과 본경선 내내 흥행했다. 후원금 계좌를 연 지 이틀 만인 지난 5월30일 후원금 한도인 1억5000만원을 채웠다. 6월4일에는 한국갤럽의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처음 등장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준석의 정치는 광장 밖에 있던 2030 남성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아니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일까.
공정한 경쟁, ‘공정’보다 ‘경쟁’에 가깝다
2020년 입당한 김재섭 국민의힘 청년비상대책위원은 “보수당이 매번 안보나 외교 등 청년의 삶과 괴리된 이야기만 했는데, 젠더 갈등은 청년 세대가 현실적으로 겪는 문제다. (이준석 후보가) 정치권이 젠더 이슈에 주목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나’를 대변해주는 정치인이 등장하며 정치적 효능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렇게 반박한다. “이준석 최고위원이 한 것은 ‘호명’이었다. 그동안 호명되지 않았던 주체를 결집시키는 방식이다. 갈등을 조정하거나 해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흔히 남녀 갈등으로 치환되는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현상을 정치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준석의 방식은 결국 통합보다는 분열을 야기하는 ‘나쁜 정치’라는 지적이다.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은 “유권자를 개척했고 정치의 빈틈을 잘 찾았지만 저희는 쓸 수 없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저서 〈공정한 경쟁〉(2019)에서 청년세대를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의 엉덩이 밑에 깔린” 세대로 정의하며 “젊은 세대의 울분과 욕구를 관통하는, 세대를 규정하는 목표”를 ‘공정사회’와 ‘실력주의’로 내건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준석 후보가 대변하겠다는 ‘이대남’에 고 이선호씨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는 없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을 말하지만 ‘공정’이 아니라 ‘경쟁’하자는 데 가깝다. 똑같은 룰로 경쟁하기에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경쟁의 결과는 늘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줄 세워서 시험 치는 것으로 공정이 확보될 수 있다면, 자원을 배분하고 불평등을 시정하는 정치의 과정이 왜 필요하냐는 비판이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공정이 청년을 호명하는 ‘만능키’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 “청년들의 1순위 어젠다가 과연 공정인가. 청년 내부에 단일하지 않은 요구들이 있음에도 공정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귀결시키는 것 역시 정치권의 나태함이고 나쁜 습관이다.”
우려와 기대 속에서 6월11일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됐다. 합산 지지율 42%로 나경원 후보(31%)를 앞질렀다. 이날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종 투표율은 45.36%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세대교체’ ‘청년세대의 절규’ ‘젊은 바람’ ‘시대정신’ 등 수식어를 여럿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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