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군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한 유가족. ⓒ연합뉴스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의 더불어민주당 이탈 현상이 발견된 이후 거대 양당은 치열한 ‘이대남(20대 남자 표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이 ‘20대 남자 달래기’에 들어갔다면 국민의힘은 ‘이대남’을 당 혁신의 모멘텀으로 삼으려는 기세다. 〈시사IN〉은 ‘이대남’ 현상 관련 기사를 기획하던 가운데 새로운소통연구소·유튜브팀 헬마우스가 2030 유튜브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주목하게 되어 기고를 요청했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편의상 ‘20대’로 분류된, 투표권을 가진 18~29세 인구집단의 특성은 무엇일까. 그들은 1992년생부터 2003년생까지로 ‘세월호 세대’라고 불릴 만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의 연령은 11~22세였다. 형제자매에 해당하는 고교생들의 참사에 감정을 이입했던 이들이다. 같은 해에 군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터졌다. 당시 현장의 교육자들은 여학생들도 이 사건에 감정을 이입했다고 증언한다. 여학생들 역시 이성 친구들이 그런 ‘끔찍한 공간’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청년들의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불안 및 공포를 맛보았던 세대다.

20대는 2016년 가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연령대로 촛불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며 정치적 효능감을 학습했다. ‘적극적인 정치적 선택으로 정치권력을 뒤흔들 수 있다’고 자각할 수 있었다. 그 특성이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20대 책임론’이 ‘투표하지 않는 20대’에 대한 질타였다면, 최근의 논의는 ‘(기성세대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투표 양상을 보인 20대’에 대한 해석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세대는 재보궐 선거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별 격차’ 투표 양상을 보여줬다.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성·연령별 비교에 따르면, 18~29세 여성의 박영선 후보(민주당) 지지율이 같은 연령대 남성의 그것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반대로 오세훈 후보(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남성의 지지율이 여성보다 30%포인트 넘게 웃돌았다. 이 연령대 여성의 15% 정도가 거대 양당 이외의 ‘기타 후보’를 지지한 반면 남성은 5% 정도만이 ‘기타 후보’에게 투표했다. 투표에서 ‘젠더 격차’가 발생했다. 남성 쪽이 (당선 가능한) 특정 후보 쪽으로 더 강한 결집도를 보였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청소년들. ⓒ시사IN 신선영

이 같은 젠더 격차는 30대에서도 10%포인트를 웃돌지만, 40대 이후 집단에서는 5%포인트 이내로 줄어든다. 이와 관련, 우리는 30대가 그 위아래의 연령집단과 별도의 특성을 가진다기보다는, 30대 초반이 20대와, 30대 후반은 40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결과로 추정한다.

그동안 ‘정치의식’ 관련 여론조사들에서 젠더 격차가 명확하게 관측된 바는 없었다. 물론 ‘20대 남성’으로 묶인 집단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20대 여성’과 다른 정권 지지율 추이를 보였으나 그 격차는 유동적이었다. 새로운소통연구소가 지난해 6월에 낸 보고서(〈20~40세대, 일반인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설문조사를 대조해서 살펴본 정치 성향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조사한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 역시 같은 연령대의 여성이나 다른 세대의 남녀에 비해 유의미하게 보수적이라고 볼 근거는 없었다.

그런데도 지난 재보궐 선거의 투표 결과가 20대 남녀 사이에서 뚜렷이 갈린 까닭은 무엇일까? 두 집단의 정치 성향이 크게 다르다기보다는 그들이 관심을 두는 특정 영역에 대한 의견이 현격하게 갈리면서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재보선 투표 결과에 대한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청취해보자는 발상은 이러한 의문에서 생겨났다. 처음엔 ‘헬마우스’ 유튜브를 통해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예상외로 답변이 많아지자 구글폼 설문조사 형식으로 채널을 확장했다. 최종적으론 이메일 154개와 구글폼(중복 응답 제외) 1125개의 답변을 받았다. 구글폼 설문조사에선 29세 이하의 의견이 전체의 53%, 30대 초반까지의 의견을 합치면 75%가 넘었다. 조사 초기엔 주로 남성들이 의견을 보냈으나 여성들의 답변도 다수 접수되어 전체의 14.8%에 이르렀다.

이런 조사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표본의 대표성’이다. 이메일과 구글폼 설문조사에 담긴 답변 내용들의 대표성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헬마우스’ 유튜브로 수렴된 답변은 인터넷 사용시간이 길고 특정 성별 커뮤니티에서 견해를 형성한 이들의 의견을 과잉 대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년세대로 갈수록 온라인 접속시간이 길고,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이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해당 채널에 상대적으로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이 드나든다는 것, 조사 결과가 즉시 정책적 효력을 미친다고 볼 수 없기에 허위 응답으로 정보를 교란하려는 시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주관식 답변에서도 표본조사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

샘플 1125개가 모인 구글폼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성별·연령·취업 여부를 신상 정보로 묻고, 나머지 문항은 순수하게 주관식으로 기입하게 했다. 문항은 1. 투표 결과에 대한 생각 2. 삶에서 가장 힘든 문제 3. 정치가 삶에 도움이 되는가 4. 가장 불만스러운 정당 5. 언론에 대한 생각 6.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7.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 8. 이상의 의견들을 형성하게 된 경로 등이다. 이 가운데 ‘투표 결과에 대한 생각(만족 -1, 중립 0, 불만족 +1)’ ‘가장 불만스러운 정당(민주당 -1, 중립 0, 국민의힘 +1)’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비판적 -1, 중립 0, 지지 +1)’은, 주관식 답변을 해석자들이 수치화해서 분류한 뒤 다른 답변들과 교차분석했다. 이메일로 받은 의견들은 해당 문항에 의한 분류와 수치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메일 의견 자체 키워드 분석과 정성 평가에만 참고했다.

이 조사의 취지에 대해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이 조사는 특정 집단, 특히 ‘20대(30대 초반까지 포함하면 2030) 남성의 목소리가 타당한 의견’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20대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필터링 없이 전달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조사 결과를 분석하다 보니,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진보 담론’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의 결과가 20대 남성들을 페미니즘 등 진보적 담론의 규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의(代議)되지 못해서 왜곡된’ 목소리가 더욱 강화·확산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차라리 20대 남성이 표출하는 불만과 현실 인식 방법을 드러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 불만들이 어떤 측면에서 터무니없고, 다른 측면에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지에 대해 구체적·사실적으로 접근할 실마리를 마련하는 게 가능하며 최근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젠더 갈등을 조정할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조사의 기조다.

투표 결과에 만족한다는 압도적 응답

‘1. 투표 결과에 대한 생각’과 관련, 응답자들은 민주당의 참패를 ‘2030 남성층의 징벌적 투표 결과’로 파악하고 있었다(위 왼쪽 〈그림 1〉 참조). 물론 지난 선거 결과가 전체적으로 젠더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은 온당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패배했다. 모든 세대가 젠더 갈등에 따라 투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응답자들은 적어도 2030 남성층의 민주당 이탈 원인을 젠더 갈등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혹은 믿고 싶어 했다).

민주당의 패인이 지자체장들의 성범죄, 부동산, 불공정 등으로 명백한데 ‘젠더 갈등 때문에 졌다’고 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지자체장들의 성범죄에 대한 징벌 투표를 ‘반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조국 사태’ 등으로 표상되는 ‘공정’ 이슈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나온 2030 남성층의 답변을 보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비난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과 혼재되어 나타난다. 불공정에 대한 항변 역시 젠더 갈등과 엉켜서 서술된다.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들과 불공정을 비난하는 20대 남성 응답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강력한 적대 의식을 표출하는 양상이다. 특정 문항이 아닌 전체 응답에서 키워드 검색을 해도 ‘페미니즘(1268회)’과 ‘페미(375회)’가 ‘공정(218회)’ ‘조국(126회)’ ‘박원순(53회)’ ‘윤미향(33회)’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 다음의 답변은 하나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위 오른쪽 〈그림 2〉 참조).

“우리는 보수화된 집단이 아니에요. 세월호 시위에도 참여했고,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에도 참여했던 세대입니다. 오히려 진보다우면 진보다웠지 보수화된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20대 남성의) 불만들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 여전히 민주당은 ‘조국이 문제니 뭐니’ 하면서 뜬구름을 잡고 있습니다.”(남성, 20~24세, 취업준비 중)

4·7 재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 ‘조국 사태’ 등으로 표상되는 공정 이슈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시사IN 신선영

선거 만족도와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교차분석한 결과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69.1%(777명)가 선거 결과에 만족했다고 답했다. ‘페미니즘 비판’ 성향 응답자들이 선거 결과에 만족한 경우는 75.6%(508명), ‘페미니즘 중립’은 59.4%(151명), ‘페미니즘 지지’ 측은 59.3%(118명)였다(〈그림 3〉 참조). 대체로 페미니즘에 비판적일수록 선거 결과에 만족하는 추세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분석에선 ‘페미니즘적 활동 중 일부’나 ‘페미니즘의 한 갈래(예컨대 래디컬 페미니즘)’를 비난해도 ‘페미니즘을 원칙적으로 긍정한다’는 응답자는 ‘페미니즘 지지’로 분류했다. 만약 이런 성향의 응답자까지 ‘페미니즘 반대’로 분류했다면, 이 집단의 선거 만족도는 훨씬 높게 나타났을 것이다. 응답자들의 다음과 같은 의견들에서 이런 흐름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성평등을 외쳤으면서 성추행을 한 정당이 선거에서 진 것은 당연한 결과.”(남성, 20~24세, 학생)/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부추겼으나, 실상은 자신들이 가장 많은 여성 착취를 해온 것으로 나타남.”(남성, 25~29세, 학생)

2030 남성들은 정부·여당의 젠더 관련 정책을 ‘분할통치’ 전략으로 인식하면서, ‘오세훈 지지’를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인식한 흔적도 나타났다.

“국민들을 갈라치는 정권. 가부장제의 절정인 50~60대가 20~30대더러 잠재적 가해자라고.”(남성, 30~34세, 취업 3~5년 차)/ “현 정부는 페미니즘을 포퓰리즘같이 활용.”(남성, 25~29세, 학생)

선거 결과에 대해선 ‘속 시원함’과 ‘당혹’이 엇갈렸으며, 한 사람의 내면에서 양자가 공존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기존의 정치 지형도를 뒤틀어버리는 흐름도 분명히 감지되었다.

“상처에 뿌린 빨간약.”(남성, 30~34세, 취업준비 중)/ “미국 지난 대선에서 백인 블루칼라들이 트럼프 찍은 것과 유사.”(남성, 25~29세, 학생)/ “박영선이 안 되어 아쉬움. …20대 남자의 의견 표시가 확실히 된 점에 기분이 좋음.”(남성, 25~29세, 학생)/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라는 문맥에서) 국민의힘은 정말 싫지만 국민의힘을 찍을밖에.”(남성, 25~29세, 취업준비 중)

20대는 4·7 재보궐 선거에서 ‘성별 격차’ 투표 양상을 보였다. 후보 시절의 오세훈 서울시장(위)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아래). ⓒ연합뉴스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준다”

2~5까지의 문항에서도 응답별 주요 키워드를 빈도수 기준으로 열거해보았다. ‘2. 삶에서 가장 힘든 문제’의 경우, 빈도수 상위에 취업/직장/일자리, 부동산/집값/서울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가리키는 단어들이 나타났다. ‘공정’에 대한 한탄이 LH 사건 등 부동산 이슈나 젠더 갈등과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단답형이 아니라 길게 답변한 2030 남성들 중 일부에서는 빈도수 분석만으론 감지되기 어려운 강렬한 ‘억울함’이 감지됐다. ‘3. 정치가 삶에 도움이 되는지’ ‘4. 가장 불만스러운 정당’ ‘5. 언론에 대한 생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내 의견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남성, 20~24세, 학생)/ “믿고 있는 정당의 무시와 조롱… 그렇다고 돌아서기엔 반대편 정당은 ×××.”(남성 30~34세, 취업준비 중)/ “남자가 역차별에 대해 소리를 내면 부모님마저 남자가 쩨쩨하다는 소리를 한다. 내 편 없는 세상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남성 20~24세, 학생)

통상적인 페미니즘적 시각의 분석에선 사회적으로 남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고,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진다고 해석된다. 그런데 지금 2030 남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말이 지워졌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본인들의 의견이 정치권과 언론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거듭 항변했다.

20대 여성들로부터는 정반대 기조의 답변들이 나왔다. 양측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페미니즘에 눈을 뜬 이후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성범죄를 다룬 기사, 그들이 받은 형량 등등.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건을 보고 나서는 아예 희망을 잃었어요. …(여성들을) 이해하려고 하질 않아요. 아직도 현실은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여성들을 취업시장에서 차별하고 있는데 말이죠.”(여성, 25~29세, 취업 1~2년 차)/ “20대 여성에게 페미니즘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저 포함해서 대부분의 지인들은 2017년 강남역 사건을 필두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고 당연하게 여겨지던 모든 시스템이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여성, 25~29세, 취업준비 중)/ “2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임신과 출산할 때 경력단절 문제이고 두 번째는 성범죄 같은 범죄에 대한 불안입니다.”(여성, 20~24세, 학생)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6.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성마른 답변들(‘정신병’ ‘나치’ ‘암’ 등)이 돌출했다. 빈도수 기준으로 상위권은 아니었다. 다소 놀라운 흐름도 있었다. 2030 남성이 페미니즘을 비판하면 ‘일베’(에 영향을 받은 이들)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부 2030 남성은 페미니즘을 비난할 때도 일베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실 2010년대 이후 대부분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일베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일베식 용어를 사용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차단 등의 징벌을 당할 수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들의 시각에서 보면 ‘일베와 거의 비슷한 행위를 하는’ 페미니즘의 일부 분파를 일베에 해오던 방식으로 공격했는데, 그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일베(라 여겨진 것)를 공격했는데 본인들이 ‘일베’로 몰린 억울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답변 흐름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남녀 불문하고 이론적 페미니즘과 온라인의 페미니즘적 실천을 분류해서 논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응답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어떤 응답자는 최근 상황을 영화 〈서프러제트〉(2015)로 표상되는 여성참정권 운동 시대와 비교했다. 페미니즘의 일부 분파나 특정 활동에 대한 비판을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공격, 여성혐오로 치환시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페미니즘은)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문제,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갭이 너무나도 큼. 온라인은 오직 흑백논리만 존재.”(남성, 25~29세, 취업준비 중)/ “페미도 크게 두 개로 나뉘죠. 래디컬 페미니즘과 리버럴 페미니즘.”(남성, 20~24세, 학생)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확산되고 있고 저도 지지합니다. 단 그 과정에서 남성들과 마찰이 생기는 것과 극단적인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여성, 30~34세, 취업 5년 차 이상)

2018년 8월, 여성단체들이 서울경찰청 앞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자에 대한 경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포토

‘혜화역 시위’에서 대의되지 못한 기억

진보 성향의 기성세대라면 페미니즘과 문재인 정부를 동일시하며 공격하는 2030 남성들의 인식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도대체 문재인 정부가 무슨 여성정책을 그렇게 열심히 했기에 저 정도의 반감을 품게 되는 것이지?’ 사실 불만을 품은 이들이 근거로 논하는 여성정책의 목록이나 내용을 실제로 살펴보면 잘못된 정보에 바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답변을 좀 더 자세히 성찰하면, 이 문제는 정책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이와 관련된 정부 측의 언행에서 2030 남성들이 어떤 효능감을 느꼈는지에 좌우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정부와 언론이 페미니즘 진영의 목소리만 경청하고 자신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한다고 인식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혜화역 시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관한 기억이다.

혜화역 시위는 여성들의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와 항의가 대중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의 남성 응답자들은 ‘(시위에서) 남성에 대한 혐오 구호가 남발되었는데도’ 경찰청장, 여가부 장관, 행안부 장관, 이후엔 대통령까지 응답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런 주장들이 이메일과 설문지를 관통해서 등장했다.

“이 집회에서 ‘문재인 재기하라’는 망언을 쏟아내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일갈한 적이 있었나요?”(이메일, 20대 남성)/ “당시 여성단체는 불법촬영 편파 규탄을 하겠답시고 혜화역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이 가관입니다. ‘남성 누드모델 몰카범(여성)은 빨리 잡으면서 왜 남성 몰카범은 빨리 안 잡느냐’고 하는 겁니다. 몰카범을 체포할 때 경찰은 특별히 남녀를 가려가며 체포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저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맹목적 혐오를 표출하는… 주류 언론은 죄다 시위 주최 세력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보도하고 실제 시위장에서 어떤 구호가 나왔는지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이메일, 20대 남성)

비슷한 사례로는 ‘35조원 규모의 성인지 예산’ 논란도 있다. 2030 남성들은 ‘여성에게 과도한 예산을 사용한다’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지출 항목을 실제로 뜯어보면 대다수 항목이 ‘여성만을 위해 쓰이는 돈’이라고 보긴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행한 〈2021년 성인지 예산 분석〉의 보건복지부 항목에 따르면, 아동수당(2조2000억여 원), 노인 일자리 지원(1조3000억여 원), 영유아보육료 지원(3조3000억여 원) 등이 모두 성인지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이런 지출을 ‘여성 전용’으로 볼 수는 없다. 모두 37개의 중앙관서가 304개 사업을 성인지 예산으로 벌이고 있다. ‘군 어린이집 운영지원’ ‘전역 예정 간부 전직 컨설팅’ ‘과학영재 양성’ ‘한국농수산대학 교육 운영’, 심지어 버스환승센터나 ‘금연 상담전화’ 같은 사업까지 ‘성인지 예산’에 포함되어 있다. 각 중앙관서들이 예산을 끌어댈 목적인지 다양한 사업을 ‘성인지’라는 주제에 가져다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성인지 예산’의 총액이 증대해도 여성들은 정책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없다. 남성들은 그 총액의 크기 때문에 자신들이 차별받거나 소외당한다고 느낀다.

“대체 그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서 이뤄낸 게 어떤 것입니까?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었나요?”(남성, 25~29세, 학생)/ “지금 소위 말하는 성평등 예산은 다 깎고 남성 및 여성의 육아휴직 확대, 출산 및 보육시설의 지원 확대 등 육아의 측면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같이 말로만 성평등이라면서 성 갈등을 조장하는 여성 편향적 지원정책, 교육정책을 다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남성, 25세~29세, 취업 5년 차)

이 같은 불만들이 이제 ‘남초 커뮤니티’에서 실제 사회로 넘쳐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 의견 형성 경로’에 대해서는 유튜브(7위), 커뮤니티(9위), 인터넷(10위)보다 대화(3위)와 친구(4위)가 빈도수에서 앞섰다. 의견이 또래 집단의 대화를 통해 형성·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이 지금까지처럼 대처해 젠더 간의 간극이 계속 벌어지기만 한다면 청년 남성의 삶은 물론이고 청년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이롭지 않다. 2030 남성들을 단지 가부장제 옹호자나 성차별주의자로 치부하기 전에 날선 목소리를 헤아려 소모적 갈등을 방지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이 될 것이다.

기자명 새로운소통연구소·유튜브팀 헬마우스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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