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지도부와 기존 비상대책위원들이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권의 여성·청년 할당제를 줄곧 비판했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배려의 잔재” “과도한 갈등 유발자”라며 할당제 폐지를 당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는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싣는 듯했다.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중 3명이 여성, 그중 1~2위는 초선의원이었다. 온라인에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당당하게 승부했다”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할당제는 2000년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보를 위해 법제화되었다. 공직선거법 제47조는 국회·지방의회 비례대표 공천 시 50% 여성 할당을 ‘의무화’하고(이 조항에 근거해 여성 비례후보는 홀수 번호를 받는다), 지역구의원 공천 시 30% 여성 할당을 ‘권고’한다. 또 정당의 당헌·당규에 따라 여성과 청년에 대한 가산점제를 시행하고 있다.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은 ‘기계적 할당을 할 만큼 여성이 더 이상 정치적 약자가 아니며, 남녀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만든다’고 반발한다.

전현직 여성 정치인들은 할당제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할당제는 성평등과 다양성 확보에 실제로 기여했을까, 혹은 실력 없는 이들을 등용시키는 불공정한 제도로 전락했을까. 또 이준석 대표가 제안하는 시험은 여성 정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여성으로 정치 현장에서 뛰거나 뛰었던 여야 정치인에게 물었다.

제20대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한 신보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 의원은 “성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변화의 물꼬가 터진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청년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그는 2019년 자유한국당 청년 최고위원을 지냈다. 그때에도 ‘여풍’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헌에 ‘4위 내에 여성이 없으면 여성 후보 중 최다 득표자를 최고위원에 올리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최근 그 조항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당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등 기존 관행이 작동하기 어려운 선거였다.”

그럼에도 신 전 의원은 선뜻 ‘할당제 폐지’에 동의하기 어려워했다. 여전히 배지를 다는 여성들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인천·대전·울산·세종, 강원도·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남도·경상남도·제주도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 국회의원도 당선되지 못했다. 신보라 전 의원은 여성 정치인이 공천 과정을 뚫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성 후보 공천은 공천관리위원회나 당협위원장, 당대표가 얼마나 의지를 가졌느냐에 따라 다르다. 40대 초반의 여성 의원이 출마한다고 하면 ‘젊은데 뭐하러 나가냐’는 얘기를 듣는다.”

여성의 정치권 진입 자체가 어렵다는 인식은 진보·보수를 가르지 않았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대구 북구갑)은 여성 정치인이 ‘유리천장’에 이르는 복잡한 현실에 주목한다. “출산과 육아로 10년 경력단절을 겪었다. 이런 경험이 여성의 보편적 삶일 것이다. 여전히 여성이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상황에 놓인다. 그 결과 정치권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숫자가 보여준다. 의회 현실은 여전히 비대칭적이다. 1995년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2%였다. 25년이 지난 21대 국회는 57명(19%)으로 국내에서는 ‘역대 최고’ 수치이지만 OECD 회원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이다. 여성할당제가 적용되지 않는 단체장 부문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광역단체장도 없었다.

‘지역구 여성 공천 30% 의무화’는 국회의 오랜 과제였다. 의회가 다양한 관점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여성 의원 수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2020년 6월 양금희 의원은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30% 여성 추천을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21대 총선부터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가 의무화되었음에도(그전까지는 권고) 여성 의원 비율이 20대 총선(17%) 대비 2% 포인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결국 지역구에서 여성 할당 비율을 의무 조항으로 둬야 (정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양금희 의원).”

수많은 장치 있었지만 여성 의원은 19%

제21대 총선에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던 정다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경주지역위원장은 지역구 여성 할당제 30% 의무화가 되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할당제가 있어도 저 같은 사람은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 적은 자릿수를 두고 보직 경험, 돈, 스펙이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통로를 넓혔으면 한다. 그래야 용기를 낼 수 있다.”

이러한 현실과 맥락을 지운 채, 할당제가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납작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20년간 수많은 장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밖에 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년·남성·수도권’으로 대표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시작하려 할 때 많은 걸림돌에 부딪힌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도 정춘숙 의원, 김영배 의원, 남인순 의원이 여성 의무 공천을 강화하는 법안을 냈다. 정춘숙 의원은 “현재 193개국 중 126개국이 여성할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30% 이상의 여성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 53개국 중 할당제가 없는 국가는 8개국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들은 현재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당장 국민의힘이 다음 지방선거에서 여성·청년 가산점제를 폐지할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당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인 황보승희 의원(부산 중구영도구)은 “지금은 당대표가 비전을 말한 단계이고 세부적인 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과연 여성할당제 폐지를 논의할 단계인지 고민이 있다고 덧붙였다. “만족할 만한 (여성 정치인) 숫자에 이르면 할당제를 없애야 하는 건 맞다. 진입 자체가 쉬운 구조로 바뀌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졌나? 그 해결 방안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치열한 논의를 해봐야 한다.” 할당제 폐지 현실화를 위해서는 당내에서도 토론해야 할 문제가 많다. 황보 의원은 “필요하다면 당대표와도 토론하겠다”라고 밝혔다.

공직 후보자 선출 시 기초 자격시험과 ‘토론 배틀’이 할당제의 대안으로 논의된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의 대안이 반갑지만 토론 배틀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있다. 20대 대학생이 우리 당 대변인으로 들어오는 통로도 필요하고, 토론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나름 훌륭한 철학적 배경을 지니고 우리 당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고도 ‘다양한’ 국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준석 대표는 할당제 폐지는 당헌 당규 개정 사항이기에 그전에 토론 배틀을 통한 대변인 선임 과정을 먼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젠더 문제를 공정한 경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같다”라는 이 대표의 주장이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검증대에 오를 전망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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