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제공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독창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와 함께 대학 강단에 섰던 헤겔에게조차 참신함이 없다며 독설을 퍼부었던 쇼펜하우어다. 그는 평생 이미 있던 누구의 이론에도 기대지 않는 독창적인 철학을 찾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내가 시작부터 이런 말을 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독창성에 집착하는 현대의 쇼펜하우어를 만난 일이 있기 때문이다. 60대 나이로 보이는 이 쇼펜하우어 선생(그를 S씨라고 부르겠다)은 최근에 승적을 정리한 ‘전직 승려’다. S씨가 내게 찾아달라고 부탁한 책은 루소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그 책은 워낙 유명해 여러 판본이 있는데, 원하는 건 동서문화사에서 1970년대에 펴낸 문고판이다.

그는 불경을 외듯 낮은 목소리로 “그 책은 진정으로 독창적인 철학서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루소가 사망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았지요.”

내가 그렇게 덧붙이자 S씨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는 루소가 그 책을 일부러 미완성으로 남겼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불교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저는 불교가 완벽한 교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이해합니다. 석가의 가르침 또한 그렇습니다. ‘내가 완전한 철학을 설파하니까 너희들은 나를 믿고 따르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정반대죠. 석가는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합니다. 그 질문을 통해 제자들은 발전하는 겁니다. 석가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아는 걸 완벽하게 구현해놓지 않고 떠났습니다. 미완성인 채로 남겨놓은 것이지요. 루소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읽는 내내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젊은 시절 S씨는 불경이 아닌 루소의 책을 읽고 승려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승적을 정리할 때도 곁에 있던 이는 루소였다. 그를 출가와 환속의 길로 인도했던 한 문장이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여섯 번째 산책 부분에 있다.

“모든 점을 고려해보건대, 마법의 반지가 내게 무슨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만들기 전에 던져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S씨는 그 작은 책을 서울 청계천 한 헌책방에서 500원에 샀다. 독창적인 삶의 지혜에 목말라 있던 그는 대학 불교학과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루소의 책을 읽고 승려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불교를 공부하고 불경 번역에 힘썼다. 과연 불교는 독창적인 학문이자 삶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겨질수록 그것을 던져버리는 것만이 가장 독창적인 길이라는 고민이 그를 흔들었다. 몇 년 동안 궁리했고 루소의 도움으로 결정을 내렸다.

현대의 쇼펜하우어 될 수 있을까

승려로 사는 게 오히려 독창적인 사고에는 걸림돌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S씨는 과감하게 승적을 포기하고 평범한 생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전문 종교인은 아니지만, 그는 전보다 더 자유롭게 불경을 읽을 수 있으니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고 고백했다.

S씨의 목표는 참신한 삶의 진실을 찾아서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나와 이야기를 마칠 즈음 요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과 비슷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루소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면, 그는 책을 완성할 것이고 루소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한 산책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겠다는 거다.

그는 과연 현대의 쇼펜하우어가 될 수 있을까? 그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루소를 뛰어넘겠다는 그 목표는 대단히 독창적이다. 나 또한 루소를 즐겨 읽기에, 그가 쓴 책도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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