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니콜라: 개구장이들의 휴식 시간〉르네 고시니 지음, 장자크 상페 그림, 거암, 1982년 ⓒ윤성근 제공

얼마 전 결혼한 두 사람은 어렸을 때 읽은 책 한 권을 찾으려고 책방으로 연락해왔다. 어릴 때 읽은 책이야 저마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부부가 함께 같은 책을 찾는다는 게 우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내인 L 씨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 중 하나예요. 상페 그림이 있는 책 말이죠. 저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봤던 책이니까 1980년대 초에 출판되었을 거예요.”

“거암출판사라는 곳에서 초기 니콜라 시리즈를 번역했어요. 당시엔 르네 고시니는 물론 삽화가 상페도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죠. 찾아볼게요.”

어릴 때부터 친구인 두 사람은 최근에 결혼했다. 그리고 책을 찾는 이유는 곧 태어날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며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추억이 있는 걸까?

수줍음이 많은 남학생 C 씨는 성격 탓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인기 있는 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즈음 부모님과 함께 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책에 마음이 끌렸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니콜라가 너무 멋있었다. 덜렁거리는 성격이지만 인기 있는 아이였다. C 씨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책에 있는 니콜라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니콜라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니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C 씨는 니콜라를 롤모델로 삼아 단박에 인기 있는 남학생이 됐다. 그런데 갑자기 성격이 바뀐 C 씨를 수상하게 여긴 L 씨는 그 비밀을 눈치채고 있었다. L 씨 역시 니콜라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L 씨는 C 씨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수줍은 성격을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기에 한 가지 꾀를 내어 골탕 먹이기로 했다. 책에 나오는 한 일화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다. 책 속엔 니콜라가 같은 동네 사는 여자아이 마리 에드비주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착해보니 손님은 모두 여자이고 자기 혼자 남자여서 당황했다는 게 내용이다.

마침 L 씨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 계획을 부모님과 공모하여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C 씨는 여자아이들만 있는 생일파티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반에서 인기 있는 다른 남학생과 같이 갔다. 초대받지도 않은 다른 아이를 데려온 C 씨의 돌발 행동으로 작전이 책 내용대로 되지 않아 생일파티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C 씨는 자기가 L 씨의 생일을 망친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 한참 울었다. C 씨도 L 씨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니콜라 흉내를 낸 것도 L 씨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울고 있는데 L 씨가 집에 찾아왔다. 그녀는 명랑한 목소리로 C 씨를 위로해줬다. 그리고 생일파티 작전의 자초지종도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알게 됐다.

아기에게 책을 보여주자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 보니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손은 어느 사이엔가 꼭 맞잡은 상태였다.

“정말 멋진 사랑 이야기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오래 간직하신 두 분이니까, 태어날 아기도 아주 예쁠 것 같습니다. 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너무 오래된 책이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그 책은 아기가 태어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전해줄 수 있었다. 아기를 안고 책방에 다시 온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책을 받아든 C 씨는 아직 그게 뭔지도 모를 아기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아기는 사연까지 다 아는 것처럼 표지를 보자마자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손을 뻗어 책을 잡으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아기를 따라 큰 소리로 웃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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