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스위스가 코로나19 봉쇄 완화 조치로 등교를 허용한 5월11일 취리히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있다.

〈까마귀 소년〉은 일본 작가 야시마 다로가 1955년에 쓴 동화다. 별명이 ‘땅꼬마’인 작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겁이 많고 공부 못하는 이 아이는 놀아주는 친구가 없어 책상의 나뭇결이나 교실 창밖 풍경만 바라본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동안, 땅꼬마는 나무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게 처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6학년 담임 이소베 선생님이다. 머루가 어디서 열리고 돼지감자가 어디서 자라는지 다 아는 건 땅꼬마뿐이라며 치켜세운다.

선생님 덕에 학예회 무대에 오른 땅꼬마는 장기자랑으로 까마귀 소리 흉내를 낸다. 알에서 갓 깨어 나온 새끼 까마귀, 엄마 까마귀,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 마을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다른 아이들은 비로소 지난 6년 동안 땅꼬마가 통학했던 길에 대해 알게 된다. 멀고 외딴 곳에서 동틀 무렵 학교로 출발해 해가 질 때쯤 집에 도착하는 날들이 쌓인 끝에 아이는 까마귀 소리 전문가가 됐다. 반에서 유일하게 개근상을 받고 졸업한 아이를, 친구들은 더 이상 땅꼬마가 아닌 ‘까마둥이’라는 새 별명으로 부른다.

이 책을 다시 꺼낸 건 코로나19 때문에 스위스 전역의 학교가 문을 닫았던 지난봄이다. 까마둥이 덕분에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이 다시 보였다. 스위스 공립초등학교 3학년인 내 딸은 입학한 지 두어 달 뒤부터 혼자 통학했다.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넌 뒤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야 하는, 15분쯤 걸리는 길이다. 아이 혼자 다니기에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 등교 시간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면 신나서 달려 나가고, 그렇게 삼삼오오 떼 지어 학교 가는 아이들을 운전자들도 알아서 조심한다. 딸은 친구들의 언니, 형, 동생들과도 등하굣길에서 친해지더니, 방과 후에 그 아이들과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나보다 동네 지리에 더 환하다. 친구들에게 길에 핀 꽃 이름을 듣고 와서 내게 그걸 스위스 독일어로 알려주기도 했고, 온갖 돌멩이와 나뭇잎, 새 깃털 따위를 주워와 집을 자연사박물관처럼 꾸미기도 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죽은 고슴도치를 보고 온종일 슬퍼한 적도 있다. 학교에 다닌다는 건 수업 내용뿐 아니라 집과 교실 사이에서 생기는 모든 일이 포함된다.

스위스 학교는 출석에 까다로운 편이다.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수업에 빠지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가족여행 등의 이유로 미리 신청할 경우에만 1년에 이틀까지 결석이 가능하다. 그 이상은 사유서를 제출하고 교장 허가도 받아야 한다. 어기면 벌금을 내거나 퇴학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의 학교가 기약 없는 휴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3월13일(하루 신규 확진 271건, 사망 4건)에 시작된 휴교는 두 달간 이어졌다. 상황이 좀 진정되고 정부가 5월11일(하루 신규 확진 39건, 사망 12건)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 문을 다시 연다고 발표하자 사람들은 또 놀랐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봉쇄 조치 후 가장 먼저 문을 열어도 된다고 허용한 업종 리스트에 학교가 들어갔다. 처음엔 한 학급을 반으로 나누어 2부제로 수업하고 수영과 체육 수업은 금지했지만, 한 달 뒤인 6월8일부터는 모든 수업을 팬데믹 이전과 똑같이 진행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8월 중순엔 확진자가 3월 휴교 때와 비슷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엔 휴교 대신 교내 위생수칙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한 교실에 어른은 한 명만 있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두 명 이상 있을 경우 마스크를 쓴다.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 건물까지 데려다주는 건 금지다. 학생들은 공용 개수대에서 물을 마시지 않고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닌다. 입학식, 졸업식, 학부모 회의 같은 행사는 취소되거나 디지털로 전환됐다.

학교생활로 인한 집단감염 없어

비슷한 상황인데 왜 3월에는 휴교를 하고 8월에는 계속 학교 문을 연다는 방침이 나왔을까. 우선 손에 쥔 정보가 달라졌다. 지난 몇 달 동안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학조사를 하고 그 결과 주어진 통계를 바탕으로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다. 내가 사는 칸톤 취리히에선 ‘학교 감염’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하고 있다. 취리히 대학은 ‘차오 코로나(Ciao Corona, 잘 가 코로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6월부터 한 달 동안 취리히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2500명의 항체 조사를 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증상이 없거나 가볍다고 하니, 항체 조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알아보려는 게 목표다.

결과는 항체 양성반응 2.8%. 같은 지역에서 성인을 무작위로 골라 항체 검사를 했을 때와 거의 같았다. 즉 학교생활을 이유로 집단감염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는 의미다. 열·기침·복통 등의 증상은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고루 나타났다. 원래 아이들에게 흔한 이런 증상만 보고 감염 여부를 추측하는 게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조사 기간이 짧아서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이르지만, 이 같은 결과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니라 가족 사이에서 더 쉽게 감염된다는 현재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올가을과 내년 봄에 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두 번 더 검사를 하면서 추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휴교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먼저 했지만, 휴교로 인한 사회적 파생 효과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럽에서는 휴교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가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이뤄졌다. 스위스 추크 교육대학은 휴교령이 내려진 뒤 스위스·독일·오스트리아에서 7100명 이상의 학생·학부모·교사를 대상으로 거리두기 학습에 대해 조사를 해 4월10일 결과를 발표했다. 10~19세 학생 중 약 20%는 학교 공부에 쓰는 시간이 일주일에 9시간 이하라고 응답했는데, 공부할 동기가 부족하고, 하고 싶어도 지원을 못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31%는 공부 시간이 일주일에 25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학교에 계속 다녔더라면 비슷했을 공부 시간이, 휴교 때문에 3배쯤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스위스 교사연합 회원인 교사 베아트 슈벤디만은 “온라인 학습은 학교 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 부모의 일자리 상황이나 교육수준에 따라 학생들이 받는 지원이 천차만별이다. 모든 학생이 조용히 공부할 장소와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부모의 지원 면에서는 나도 아픈 부분이 있다. 스위스에 사는 이민자인 우리 부부의 독일어 실력은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에 충분하지 않다. 수학이나 영어라면 상관없지만, 스위스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어를 우리 아이들은 휴교 기간에 사실상 포기했다. 한국의 이민자 부모들은 학교가 문 닫은 동안 아이들의 국어 공부를 어떻게 봐주고 있을까. 나중에 학교가 다시 문을 열 때 이런 차이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는 학습환경의 차이가 더 명확히 드러나 있다. 세계 29개국의 15세 학생 6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의 9%는 혼자 공부할 장소가 없다고 답했다. 필리핀이나 타이로 가면 그 비율은 30%를 넘어선다. 보고서는 한국을 딱 꼬집어 이렇게 지적하기도 했다. “PISA 성취도가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조차, 학생 5명 중 1명은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집에서 공부할 장소가 없다.” 디지털 기기도 문제다. 덴마크·네덜란드·노르웨이·스위스 등에선 학생 중 95% 이상이 집에 학습용 컴퓨터가 있다고 답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34%뿐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이 수치는 빈부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페루의 경우 잘사는 동네에선 88%가 집에 학습용 컴퓨터가 있지만, 못사는 동네에서는 17%다.

ⓒ김진경 제공취리히의 한 초등학생이 7월 중순 받은 성적표. 수학, 독일어, 영어 등의 과목 옆에 ‘nicht benotet(성적 안 매김)’이라고 쓰여 있다.

한국으로 치면 수능을 취소한 셈

혼자 공부할 방이 있고 컴퓨터가 있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디지털 기기를 학습에 이용할 능력이 있는지, 팬데믹 이전에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지난달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교육 2020’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교의 디지털 교육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율을 보면 1위는 네덜란드(94%), 꼴찌는 한국(41.9%)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당 주어진 컴퓨터 대수도 1위는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1.5대), 한국이 꼴찌(0.4대)였다.

온라인 교육이 제아무리 잘된다 해도, 교사나 동료 학생과의 쌍방향 소통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PISA 보고서는 조사 대상이 된 OECD 국가의 15세 학생 9명 중 1명만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었다며, “교사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학생이 온라인 검색으로 지식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저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놓고 다음과 같이 우려를 나타냈다. “학교라는 환경 자체가 중요하다. 캠퍼스에 들어가는 자체가 바깥세상과 다른 영역에 진입하는 것이다. 공부의 과정 중 지식 전달에서 배우는 건 굉장히 일부분이다. 그 여백에서 전해지는 게 교육의 핵심일 수 있다. (…) 토론 역시 상대의 보디랭귀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어우러져 효과를 띠기 때문에 동영상 강의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 동영상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단순히 강의를 촬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하나의 영화를 찍는 듯한 구성과 투자가 필요하다.”

딸이 지난 7월에 2학년을 마치면서 받아온 성적표엔 ‘성적 안 매김’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어 달의 휴교가 학습 결과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본 정부의 방침이다. 칸톤(주)마다 다르지만, 취리히에선 인문계 고등학교의 졸업시험인 마투라도 취소됐다. 한국으로 치면 수능이 취소된 셈이다. 성적이나 시험보다 학교 출석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교육철학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장 수준의 휴교 조치를 취하고도 수능은 강행한다고 한다. 이참에 고민해보자. 애초에 학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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