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1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위한 형식적인 의견 수렴을 중단하라!’ 퍼포먼스.

필자 숀 버니는 지난 35년 동안 아시아·구소련·유럽·남북미·중동의 핵 문제를 다루어왔다. 1991년부터 그린피스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 국제해사기구, 뉴욕과 제네바의 유엔 회의 등에서 그린피스를 대표하고 있다. 1997년부터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그가 일본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한 원고를 보내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9주년인 올해, 일본 정부는 논란거리 하나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 120만t이나 되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처리를 결정하려는 것이다. 아베 행정부는 모두의 관심이 코로나19 사태에 쏠려 있는 상황을 틈타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 버리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지난 1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오염수 전문가 소위원회는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두 가지 방안을 서둘러 내놓았다. 태평양에 방류하거나 대기 중으로 비산시키는 방안이다. 오염수 장기 저장 및 처리라는 유력한 대안을 신중히 검토하지 않고 손쉽게 배제해버렸다. 올가을 태평양 방류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제한적으로 공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했다. 후쿠시마현에서 이른바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4월 면담에서 수산협동조합과 산림업계 대표들은 방사성물질을 대기나 해양으로 방류하는 계획에 강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후쿠시마 주민은 2011년 3월11일 지진·쓰나미·원자로 붕괴라는 재앙을 한꺼번에 겪은 당사자로서 존중되어야 마땅하며 그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베 행정부는 후쿠시마 주민의 인권이나 의사를 존중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건강이나 환경, 경제를 보호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사실은, 오염수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 고위 관료인 기노 마사코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기노는 올해 3월11일 일본 텔레비전에 나와서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한다기보다 의견을 듣는 정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조처란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흘려보낼 준비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그는 방류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2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시간표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TEPCO)이 해온 주장, 즉 저장공간이 2022년에 고갈되므로 방류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과 맞아떨어진다.

원자력발전 문제에 관한 한, 후쿠시마와 일본 전체의 다수 의견을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베 행정부의 기본 태도다. 허위와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 경향도 보였다. 오염수 처리 방법을 결정해온 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염수 저장을 위한 물리적 공간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도쿄전력은 지난해 8월 정부 오염수 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점을 마지못해 인정한 바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처리할 최고 기술을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를 위해 사용한 ALPS 기술은 관련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일본 기업들(도시바와 히타치)이 운용해왔다. 자신들이 공언한 결과를 달성하지도 못했다. 더 효율적인 운용 결과를 낼 수 있는 해외 기업들은 애초부터 배제되었다. 이와 같은 파행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약 80%에 녹아 있는 막대한 양의 방사성핵종을 재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됐다. ALPS는 오염수 처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수년간 ALPS의 실패를 부인했다. 재처리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주변 환경으로 배출될 방사성물질이 삼중수소뿐이며 아무런 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오염수를 방류하면 삼중수소뿐 아니라 스트론튬-90을 비롯한 많은 방사성핵종들이 함께 배출될 것이다. 스트론튬-90은 생선과 사람의 뼈에 축적되며 암을 일으키는 방사성핵종이다. 삼중수소 역시 위험한 방사성물질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제시한 해결책을 외면한 채 삼중수소 제거 기술을 개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이유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국내 사안으로 간주한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UNCLOS)을 준수할 의무를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 협약은 예컨대 제194조 2항에서 “각국은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자국의 환경에 대하여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주지 않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고, 또한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사고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이 협약에 따라 자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확산되지 아니하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라고 규정한다.

ⓒEPA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방사성 오염수를 보관하고 있는 대형 저장탱크.

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해사기구(IMO)나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회의에서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문미옥 제1차관은 2019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체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과학적·객관적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원자로 및 오염수의 상태 조사와 환경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문 차관은 “보건, 안전, 환경보호를 고려하여 의미 있으며 투명한 방안을 선택하고 이행하는 일이 일본에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올해 도쿄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연기시켰지만, 동시에 아베 행정부에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에 관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올림픽 연기로 1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된 올가을에 방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결정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 와중에 희석될 뿐 아니라 내년의 올림픽을 낙관하는 분위기에도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와 같은 아베 행정부의 사고방식은 수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의 권리와 의사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위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오염수 문제도 조만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오염수는 하루 150t, 연간 5만4750t씩 증가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를 2025년까지 하루 100t, 연 3만6500t 수준으로 줄이려는 계획이다.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방안을 선택한다면 금세기 중반을 넘어서는 기간까지 방사성핵종은 계속해서 공해로 쏟아져 나갈 것이다. 인접국인 한국은 동해를 비롯한 해양 생태계의 방사성오염을 막을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강력한 문제 제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숀 버니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수석 원자력 전문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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