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경남 통영시에서 열린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3월3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경남 통영시에서 열린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수산물이 있다. 일본어로는 호야(ホヤ), 일본 내 최대 생산지는 미야기현이다. 연간 1만2000t을 생산한다. 이 중 7000t이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2013년 9월 한국 정부가 일본 8개 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기 전까지의 일이다. 미야기현 연안에서 잡히는 호야 7000t은 이제 모두 폐기 처분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이 ㎏당 단가를 정해 호야 생산자에게 보상을 진행한다.

호야는 한국어로 멍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논의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고 알려졌지만 대통령실은 부인했다는, 그 논란의 수산물이다. 멍게는 한동안 한·일 양국, 국내 여야 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입 재개 요청을 받아들였다, 아니다’, ‘멍게라는 단어가 나왔다, 안 나왔다’ 등을 두고 진실게임과 정쟁이 불거졌다. 멍게는 시작에 불과하다. 원래도 뜨거웠던 ‘일본’ ‘수산물’ ‘안전’과 같은 키워드들이, 지금까지보다 더 첨예한 이슈로 떠오를 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2013년 8월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냉각수 탱크에서 방사능 오염수 300여t이 바다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한국 정부는 2013년 9월부터 일본 후쿠시마·아오모리·이와테·미야기·도치기·군마·이바라키·지바 등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다. 2015년 5월 세계무역기구(WTO) 소송까지 진행하며 한국에 수산물 수입 재개를 압박했다. 이후 4년간 이어진 무역분쟁에서 한국이 최종 승소했고 지금까지 규제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

ⓒ시사IN 최예린

한국에 일본산 수산물이 아예 수입되지 않는 건 아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 통계를 보면, 원전 사고가 발생한 2011년 이후부터 일본산 어패류 수입량은 급감했지만 그래도 3만t 수준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수입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1억7414만 달러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그림 〉 참조). 가장 많이 들어오는 어종은 가리비(2022년 기준 1만1970t), 돔(5570t), 패각(3347t) 등이다. 일본산 우렁쉥이(멍게)도 지난해 3025t이 국내로 수입되었다. 일본 21개 현 중 8개 현 수산물만 들어오지 못할 뿐이다.

수입산 멍게 98%, 방어 100%가 ‘일본산’

어떤 어종들은 일본산이 우리나라 수입산 수산물 비중의 전부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해양수산부 수산정보포털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유통되는 수입산 가리비(1만1970t/전체 1만6092t)의 74%, 수입산 돔(5570t/8990t)의 62%, 수입산 가오리의 46%(740t/1612t)가 일본에서 수입된 물량이었다. 수입산 멍게(3025t/3072t)는 98%, 수입산 능성어는 99%(72.8t/73.9t), 수입산 방어(2693t)와 수입산 병어(410㎏)는 100%가 일본 원산지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20년 기준 중국-타이-베트남 다음으로 많이 일본의 수산물을 수입하는 국가다.

ⓒ시사IN 최예린

일본산 수산물은 국내 수산시장·마트·음식점 등 곳곳에서 유통되지만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사먹는 경우도 다반사다. 음식점에서 반드시 원산지를 표기해야 하는 수산물 품목은 이제껏 15가지(넙치·조피볼락·참돔·미꾸라지·뱀장어·낙지·명태·고등어·갈치·오징어·꽃게·참조기·다랑어·아귀·주꾸미)에 불과했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는 멍게·방어·가리비·전복·부세(조기) 등 5개 품목도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었다. 횟집에서 제공되는 방어와 멍게도 이제 ‘일본산’ ‘중국산’ 등 원산지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 정직하게 표기되지는 않는다.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가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실(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일본산 수산물을 국내산 등으로 속여 판매하다가 적발된 것이 403건에 이르렀다. 최근 일본산 수산물 수입에 대한 우려가 늘어나자 경기·인천·경남 등 일부 지자체는 수산물 원산지 표시 지도·단속과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해 3월30일 언론 공지를 통해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수산물이 걱정이었다면, 이제는 그 수산물을 둘러싼 바닷물 전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지금도 하루 100t씩 방사능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다. 녹아버린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처리수에다 원자로 건물에 흘러 들어가는 빗물·지하수까지 더해져, 2023년 2월 현재 132만t의 오염수가 모여 있다. 원전 부지 내 탱크 1000개 안에 담아놓고 있는데 전체 용량의 96%가 찼다. 일본 정부는 올봄과 여름 사이부터 이 처리수를 바다에 내보내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탱크 속 물을 다 내보내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이 걸린다.

4월5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2022년 일본산 농·축·수산물 방사능 오염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측은 한국 등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지난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대한 한국의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 3월17일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윤 대통령을 만나 비슷한 발언을 건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국민조차 아직 설득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업인들의 반발이 가장 격렬하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 후쿠시마 어업협동조합연합회와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처리수의)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하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 약속을 깬 일본 정부를 향해 어업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원자력문화재단이 지난해 9~10월 전국 15~7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51.9%가 ‘(오염수) 방출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라는 문장에 동의했다. ‘어업을 중심으로 한 관계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는 (방출)해서는 안 된다’에도 42.3%가 동의했다. 반면 ‘국민의 이해가 얻어지고 있다’는 6.5%, ‘관계자의 이해를 얻지 못해도 (방출)해야 한다’에는 5.6%가 동의했다.

일본 정부는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다핵종 제거 설비(ALPS)를 통해 방사성 물질 농도를 기준치 이하로 낮춰 방출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가 일으킬 해양·수산물 방사능 오염도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바깥의 생각은 다르다. 도쿄대학 세키야 나오야 교수는 지난해 3월 일본·한국·중국·타이완·싱가포르·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미국 등 10개 국가 20~60대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둘러싼 국제 의식조사를 벌였다. ‘처리수가 방출되었을 경우 후쿠시마산 식품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 60%를 넘었다. 한국 93%, 중국 87%, 독일 82%, 프랑스 77%, 타이완 76%, 미국 74%였다. 일본에서는 응답자의 36%가 ‘(매우) 위험하다’고 답했다.

일본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에 마련된 방사능 오염수 탱크, 약 132만t을 보관 중이다. ⓒREUTERS
일본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에 마련된 방사능 오염수 탱크, 약 132만t을 보관 중이다. ⓒREUTERS

자국민도 설득 못한 ‘오염수 방출’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대한 일본의 양해 요청에 세 가지 기준(①국제기준 검증 ②과학적 방식 ③한국 전문가의 참여)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미 일본 편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조사해 안정성에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이를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수산물은 수입을 금지해서 국내 유입을 차단할 수 있지만 흐르는 바닷물은 막을 수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일본산뿐 아니라 한국 수산물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에서 방출한 오염수는 4~5년 뒤 본격적으로 한국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연구진은 방사능 물질은 바닷물에 희석돼 분석기기로 검출되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양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분석 결과는 일본 측이 공개하는 데이터를 모두 신뢰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다.

실제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쳐도,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을 넘어선 심리적 문제다. 국산 수산물이 입을 타격도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따른 피해조사 및 세부 대응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4%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라고 답했다.

수산업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예정된 방출 시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다.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반쯤은 포기한 상태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너무 없다. 방출하지 않으면 정말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방출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다만 오염수 방출 이후 국내 수산업계가 입을 손해를 최소화할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국민들이 수산물을 멀리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대책을 빨리 세워줘야 한다. 소비 급감 대책과 더불어 어업인 지원정책, 안정적 조업 대책, 경영안정자금 대책도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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