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15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4월23일 기준 열흘 넘게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명 아래에 머물렀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강도를 다소 완화하고 ‘생활방역지침’을 발표했다. 종교·유흥·학원·실내체육시설에 대한 ‘영업 중단’ 권고도 ‘영업 자제’로 바뀌었다. 날씨도 풀렸고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 풀렸다. 쇼핑몰, 공원, 식당가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이가 마스크를 끼고 있다는 점만 빼고는 외견상 코로나19 이전의 세상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상황은 급변한다. 대구의 ‘31번 환자’가 확진되던 2월18일 이전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5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방역 성공” “머지않아 종식” 이야기가 나오던 차였다. 이후 확진자 수가 수백 명 수준으로 치솟는 데에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혼란을 관전하던 미국과 유럽은 지금 도시 인근 섬에 시신을 집단매장하고 쏟아지는 중환자 가운데 어느 사람을 살릴지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고 있다. 방역 모범국 중 하나로 꼽히던 싱가포르도 최근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외국에서 들려오는 수만, 수천의 확진자·사망자 수치에 어느새 많은 이들이 무덤덤해졌다. 미국·유럽이 예전에 그랬듯 우리도 지금 관전 모드에 들어갔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자신만만하던 국가의 상황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다. 지난 4월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4월 들어 코로나19 감염 확산세가 확연히 줄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방심을 경계하자는 취지의 발언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정 총리가 사용한 단어 ‘폭풍 전야’는 수사적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2차 파도(Second Wave)’는 분명히 올 수 있다. 아니, 온다. 이 명제를 부인하는 전문가는 국내외에 아무도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질본) 본부장은 4월2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가 겨울철이 되면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겨울 정도면 양호한 예측이다. 당장 다음 주, 다음 달에 확진자 그래프가 다시 가팔라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적어도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낮아졌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이 폭풍전야가 맞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차 파도는 처음이라 어쩔 수 없는 재난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2차 파도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인재(人災)에 가까울 것이다. 훗날 또 뒤돌아보고 ‘그때 이걸 미리 했더라면…’ 후회할 일이 무엇인지, 한숨 돌린 지금이 바로 그 대비를 시작할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시사IN〉이 단계별로 짚어봤다.

1단계:커브 누르기

〈시사IN〉에서도 여러 차례 제시한 감염병 대유행 곡선(〈그림〉 참조)은 코로나19를 겪은 전 세계인에게 이미 익숙한 그래프이다. ①의 가파른 곡선을 ②의 완만한 곡선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코로나19의 기본 대응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국이 ①과 ② 사이 어떤 그래프이든 4월 넷째 주 현재 하강곡선에 위치해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하강 국면은 언제든 다시 상승 국면으로 바뀔 수 있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그래프는 아마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영국 등 주요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가리키는 방향이 한결같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전문가들인 예방의학, 역학 전문가가 제시하는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나처럼 실제 환자를 보는 임상 의학자의 경험과 느낌과도 일치한다. 증상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의 경우 아무 개입이 없을 때 급격하고 큰 유행이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차례 밀려드는 그 파도를 무기력하게 맞아야 하나? 아니다. 파도의 높이를 낮출 수 있다. 백신 없는 전투에서 단 하나의 방패, ‘비약물적 중재(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라 불리는 개인과 집단의 방역 지침이 그 역할을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된 손 씻기, 기침예절 지키기, 마스크 쓰기, 사람 많은 곳 피하기, 아프면 집에서 쉬기, 밀집 행사 자제 등의 중요성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든 ‘(저강도) 생활방역’ 기간이든 달라지지 않는다. 파도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는 첫 번째 전략의 시행 주체는 전문가도 아니고 질본도 아닌 바로 전 국민이다. 파도가 몇 번이고 연속으로 올 것이란 점을 받아들이고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단계:급증 국면 알아차리기

지치지 않으려면 강약 조절이 불가피하다. 김탁 교수는 “지속적인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강한 수준을 유지해달라고 해도 동기 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결국은 상태가 다시 악화되려고 할 때, 거리두기 강화가 필요할 때 다시 강도를 올릴 것을 주문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 의식 수준으로는 충분히 협조가 가능할 거라 본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할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감시체계(surveillance system)’가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는 징후를 잡고 경고를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가 준비 안 되어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단검사 체계는 ‘감염병 감시체계’라는 개념 속에서는 매우 느슨하고 수동적인 형태이다. 감염자를 ‘확진’할 순 있지만 광범위한 지역사회 확산을 ‘감지’해내지는 못한다. 그간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실시해온 신천지 교인 전수검사, 요양시설 환자·종사자 전수조사 등이 좀 더 적극적인 감시체계였지만 전국 지역사회 감염 양상을 꾸준히 읽어낼 수 있는 표본은 아니었다.

그래프 상승곡선이 매우 가팔라질 수 있다는 위험을 일주일 전 혹은 하루 전이라도 감지해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가 이후 곡선의 모양을 크게 바꿀 수 있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감염병 감시체계를 일기예보, 미세먼지 예보에 빗대 설명했다.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 확률이 높다고 하면 우산이라도 들고 나간다. 코로나19도 1년 내내가 아니라 유행하는 계절, 특정 시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다시 감염자가 급증하는 시기가 겨울에 올지 당장 다음 주에라도 올지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하나도 없게 된다. 환자가 확 급증한 뒤에 극단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봐야 이미 때는 늦을 것이다.”

어떤 방식의 감시체계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질본은 2월17일 코로나19를 기존 호흡기 감염병 감시체계에 추가하고 참여 의료기관도 50여 곳에서 200여 곳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그렇다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면역항체 검사를 실시할 수도 없다. 최근 미국 등에서 무증상 감염자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단위 표본을 선정해 코로나19 면역항체 검사를 시작했지만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교수는 그런 방식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1명을 찾아내기 위해 99명, 98명의 피도 함께 뽑아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감시체계는 무작정 돌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하며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3단계:하드웨어 개조

코로나19 감시체계를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의료기관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동네 구석구석 위치한 1차 의료기관이 코로나19의 감시망이 되는 방안이다. 지금 환경에서는 동네 병원 의사들이 기함할 이야기다. 1차 의료기관 개원의들은 추후 코로나19로 확진될 환자들의 내원을 가장 두려워한다. 의료진은 물론 동선이 겹치는 다른 환자도 감염의 위험이 있고, 일정 기간 병원을 폐쇄해야 하며, 진료 재개 후에도 환자의 발길이 끊겨 경영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만들어진 것이 ‘선별진료소’나 ‘국민안심병원’이다. 코로나19 의심환자가 기존 병원 건물로 직행해 다른 환자들과 섞이지 않도록 동선을 구분하는 안전장치이자, 비교적 폭넓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해 일종의 감시체계 기능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천막’인 선별진료소 외양에서 드러나듯 이 안전장치는 아직까지 임시 시설에 그치고 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선별진료소의 기능이 동네 곳곳 좀 더 많은 의료기관 내에 정식 인프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발병 초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을 빨리 감지해낼 수 있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코로나19 환자일까’ 무서워 의사가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눈여겨볼 만한 모델이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도되었다. 하남시는 지난 3월12일 하남시 신장동 신장도서관 1층에 ‘호흡기감염클리닉’을 열었다. 호흡기 증상이 있어서 병원 진료가 필요한데 코로나19 검사를 받기는 애매한 사각지대 환자들이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민관 협력 의료기관이다. 구성수 하남시 보건소장은 지역 내 1차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다가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빨리 환자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1차 의료기관이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동네 병원들을 방문해봤더니 모두 근린상가 시설에 위치해 있고 엘리베이터도 다 같이 타는 구조라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일반 시민의 동선이 분리될 수가 없겠더라.”

구 소장은 민관 협력 모델을 제안했고 지역 내 의사들이 흔쾌히 참여했다. ‘관에서 동선 분리가 확실한 호흡기클리닉을 세팅하면 의사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와서 잠깐씩 환자를 봐줄 수 있겠나?’ 물었더니 금세 의사 11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지역 내 군부대에서도 군의관을 보내주기로 해 코로나19 민·관·군 협력 모델이 완성됐다. 마침 보건소 가까이 위치한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앞두고 비어 있어서 그곳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핵심은 진료실을 다녀간 환자가 추후 코로나19 환자로 확진되어도 타격이 없는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모두 방역복을 입은 채 진료를 하고, 환자가 다녀간 뒤에 공간을 소독하고, 환자 간 동선이 겹치지 않게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는다. 시는 보건소 한 곳에만 설치된 선별진료소의 부담이 줄어서 좋고, 민간병원 의사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호흡기 증상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어 안심이고, 선별진료소와 일반 병원 사이 어정쩡하게 갈 곳이 없던 환자는 마음 편히 진료받을 수 있어 서로 ‘윈윈’이다.

이런 예외적인 사례가 전체 의료체계 안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히려면 아직 넘을 산이 많다. 병원 건물을 개조하고 신축해야 한다. 돈도 많이 들고 행정 절차도 복잡하다. 정부의 대대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메르스 유행 이후 종합병원 응급실을 다 개조하고 입원병동 앞 슬라이딩 도어를 만드는 등 이전에 쉽게 고쳐지지 않던 고질적 병원 환경이 일부 개선되었던 것처럼, 코로나19를 겪고 난 이후에도 호흡기 전문 클리닉과 확실한 ‘안심병원’ 하드웨어가 의료계의 ‘뉴노멀(new normal)’이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오히려 메르스 때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 특히 호흡기 환자가 급증해 코로나19 환자와 섞이는 대혼란이 펼쳐질 수 있는 올겨울이 오기 전에 필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사IN 신선영경기도 하남시가 신장도서관 1층에 마련한 ‘호흡기감염클리닉’.

4단계:의료 ‘커패서티(capacity)’ 선 높이기

첫 단계에서 언급한 그래프로 다시 돌아가보자(〈그림〉 참조). 곡선①을 곡선②로 바꾸는 일만큼 중요한 게 가로로 표시된 직선③의 위치를 직선④로 올리는 일이다. 헬스케어 시스템 커패서티(Health care system capacity), 의료체계가 마비되지 않고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이다. 주로 중환자 병상, 장비, 인력 같은 의료자원의 양과 그것의 원활한 작동과 관련이 있다. 이 능력치를 넘어설 만큼 중증 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상이 모자라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고, 산소호흡기가 부족해 숨이 차오르는 환자를 두고 볼 수밖에 없으며,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격무에 시달리던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감염되고 다시 병원 내 감염으로 퍼뜨리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결국 사망자가 속출한다. 불과 한 달여 전 대구·경북에서 일부 겪었고, 최근 이탈리아·스페인·미국 등지에서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구·경북에서 이런 혼란을 일시적으로 겪었지만 금세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은 것은 한국이 가진 최대 의료 능력치의 선이 충분히 높아서인가? 이탈리아·스페인·미국 등은 이 선이 우리보다 낮아서 더 극심한 혼란을 겪는가? 그렇지 않다. 지난 4월3일 ‘COVID-19 팬데믹 중환자 진료 실제와 해결방안’ 온라인 포럼에서 고윤석 울산대 의대 교수는 “(사망자가 속출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에는 유럽 중환자 의학을 이끌어가는 밀라노 의과대학이 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도 중환자 의학 연구가 매우 훌륭한 의과대학 병원들이 있으며, 뉴욕에도 훌륭한 중환자 진료센터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스페인·뉴욕에서 겪은 급작스러운 중증 환자 증가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도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을 거다. 현재 우리가 갖춘 서지 커패서티(Surge capacity), 중환자 진료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다고 말씀드리게 돼서 대단히 죄송한데, 그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여러분들이 믿고 계신 여러 큰 병원들이 제대로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귀하게 얻어진 지금 이 비수기에 중환자 진료 ‘커패서티’를 올리는 일이 시급하다. 중환자 병상을 확보하고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산소호흡기 등 장비 재고를 점검하고,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숙련된 의료진의 라인업을 짜놓는 일들이다. 1차 파도 때는 허겁지겁 병상을 개조하고 자원봉사와 파견 등으로 인력 문제를 해결했지만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지난 3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파견된 간호사 김수련씨(세브란스병원)는 “원래도 중환자실은 트레이닝이 길고 일이 힘들고 사직도 잦은 부서이다. 평상시에도 중환자실 인력 충원이 어렵다. 이번에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제 몸 갈아넣고 비말 뒤집어쓰며 죽도록 뛰어다녀 해결했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중환자 진료는 일반 감염병 진료와도 다르고 일반 중환자 진료와도 다르다. ‘감염병’과 ‘중환자’ 진료의 어려움이 동시에 발생한다. 단순히 병상 수를 늘리고 의사·간호사 수를 채워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음압·격벽·전실을 갖추고 공조가 분리된 특수 중환자 병상이 필요하며, 거추장스러운 보호구를 입고도 에크모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의료인이 필요하다. 한정된 인공호흡기와 에크모 장비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돼 있어 필요한 곳에 필요할 때 신속히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내 병상이 부족해 중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이송할 때는 전담 이송팀과 음압, 인공호흡 장비가 갖춰진 특수 앰뷸런스가 있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결국 개별 단위 병원,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는 이런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코로나19 중환자 진료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기 어렵다. 김제형 대한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고려대 의대 안산병원 교수)는 “코로나19 중환자 진료 전략을 전국적으로 통합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일부 광역지자체가 조금씩 움직이고는 있다. 4월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김강립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중환자 병상 준비가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큰 규모의 감염 확산에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 각 지자체의 역량과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 연계해 공동대응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12일 중증 환자 치료병상 확보를 위한 병원장 간담회를 열어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수도권 상급병원 18개 원장들에게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경기도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을 중심으로 지자체와 의료기관,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 코로나19 유행 확산 중환자 진료 대비 전략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제공코로나19 중환자 치료 모습.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5단계:‘커패서티’ 선을 넘었을 때

감염병 국면은 전시(戰時)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규칙과 질서가 바뀐다. 전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지면 제대 후 민간인도 정해진 집결 장소로 향해야 하듯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 때에도 개인의 여러 권리, 이동의 자유라든가 사생활 보호 같은 가치가 공동체의 안녕과 생존을 위해 잠시 뒤로 밀린다. 전시에는 민간 소유 각종 시설과 장비가 징발될 수 있듯 감염병 확산 시에도 사유재산으로 보호되던 민간의 의료자원이 공공 자산으로 동원될 수 있다. 분단국가 한국의 국민에게 전쟁 시나리오는 익숙하지만 이런 감염병 재난 시나리오는 아직 얼떨떨하다.

법은 이미 갖춰져 있다. 의료법 제59조(지도와 명령)는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감염병 재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감염병 심각 단계에서 보건복지부는 ‘국가 모든 가용 자원 파악 및 동원’ 의무가 있다.

아무리 준비하고 동원해도 감염 곡선이 치솟으면 언젠가는 ‘헬스케어 시스템 커패서티’를 넘는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시나리오는 그 경우의 수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뉴욕타임스〉 4월14일자 기사는 쏟아지는 중환자에 비해 병상과 인공호흡기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결국 살릴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이탈리아 파파지오바니23(Papa Giovanni XXIII) 병원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너무 나이가 많거나 증세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인공호흡기가 주어지지 않거나 중간에 빼서 좀 더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에게 옮겨 사용했다. 응급실 의사 안드레아 듀카는 그런 상황에 놓인 최초의 환자들 중 한 명을 기억했다. 폐 이식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는 68세 남자였다. 그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호흡 속도가 증가했다. 듀카는 ‘그가 잘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중치료실(ICU)에는 자리가 없었다. 회복 전망이 더 좋은 젊고 건강한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듀카는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환자를 위해 그 68세 환자에게 호흡 관을 주지 말자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 이런 비극을 피해갈 수 있을까? 절대 오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는 이야기를 지금껏 해왔다. 그런데 만약에 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도 지금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4월3일 온라인 포럼에서 홍성진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가톨릭대 의대 교수)은 중환자 진료 전략을 단계별로 제안하는 발표에서 마지막 3단계 PPT를 띄우며 말했다. “이 단계는 웬만하면 얘기 안 하고 싶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 대량의 환자가 일시에 생겨서 2단계 중환자 전략으로도 커버가 안 될 때는 리소스 트리아지(Resource Triage), 치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시민단체, 의료전문가, 윤리학자 등이 위원회를 만들어서 중환자 치료로 최대한 이익을 받을 수 있는 환자군을 분류해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살리도록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지금 준비해놔야 한다.”

코로나19의 2차 파도를 대비하는 과정은 매우 잔인한 작업이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번호를 매겨 선택의 우선순위를 작성해야 한다. 모두가 바라는 바는, 그 시나리오가 실제 사용되지 않는 미래이다. “지금이 폭풍 전야예요”라는 외침이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를 대비해놓아야 한다. 모르고 맞은 1차 파도보다 2차, 3차 파도는 더 무섭고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이라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경고음을 내고 싶다”라는 의료계 목소리를 〈시사IN〉이 전하는 이유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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