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5월14일 서울 용산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줄선 시민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 한 번 이상씩은 공공보건의료의 혜택을 받아보았다. 인근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동 동선과 방역 여부를 알리는 지자체의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는 무료로 검사를 해줬다. 자가격리자에겐 보건소 직원이 매일 안부 겸 감시 전화를 걸고 즉석밥, 김, 참치캔, 생수, 휴지 등을 가져다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 앰뷸런스가 병원까지 태워줬다.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간 환자는 PCR 검사에서 음성이 두 번 나올 때까지 모든 입원비와 검사·진료·치료비가 무료였다. 많은 국민이 자부심을 느낀 이 모든 일들은 시장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 작동한 보건의료 서비스였다.

물밑에선 위태로웠다. 늘어나는 수요를 한정된 공급으로 감당해내는 현장은 수면 아래 백조의 발놀림처럼 숨 가쁘고 치열했다. 가까스로 감당해낸 부분도 있지만 바닥을 드러내거나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공공보건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은 “모래 위의 성 같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부족하고 허약했다. 공공병원의 병상이 턱없이 모자랐고 보건소, 선별진료소, 병원 모든 곳에서 일손이 부족했다. 임시방편과 행운으로 버텨갔다고들 술회한다.

이번에는 버텼지만 다음에는? 공공보건의료가 튼튼한 토대 위에 쌓은 건축물이 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이고, 국민의 세금이다. 토대는 하루아침에 다져질 수 없다. 군대와 소방서처럼, 전쟁이 없고 불이 나지 않았을 때에도 유지되어야 진짜 일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사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를 지나오면서 공공보건의료 전문가들은 국민의 마음이 궁금하다. 공공보건의료의 토대를 위해 사회자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을까? 더 정확하게, 국민들은 이 부문에 일정한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갖게 되었을까?

‘주간 코로나19’ 여덟 번째 이야기는 ‘공공보건의료’이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몇 개 짓고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논의가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모두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조금 더 폭넓은 공공보건·공공의료 이야기를 위해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와 안병선 부산시 건강정책과장을 모셨다. 김 교수는 오랜 기간 국내외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며 보건의료 개혁, 건강 불평등 완화 등에 목소리를 내온 학자 겸 활동가이다. 안 과장은 우리 사회 몇 안 되는 의사 출신 공무원이다. 보건소장, 역학조사관 등 지역 사회 공공보건의료 현장을 두루 거쳐 왔다. 최근 부산시청에서 코로나19 대응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그는 ‘부산의 정은경’으로도 통한다. 고정 멤버인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 전문의),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감염내과 전문의·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대담은 5월12일 저녁 충북 청주시 KTX 오송역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

코로나19 이후 공공보건의료 분야에서 어떤 날들을 보내왔나?

안병선:부산시의 주요 정책과제인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일하다가 지난 1월 중순부터는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주력해오고 있다. 현재(5월12일)까지 부산시 코로나19 확진자는 144명이다. 매일 브리핑을 하다가 환자가 많이 줄어서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이겠다고 했는데, 오늘 오는 중에 부산에서 클럽 관련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공보건의료와 코로나19 두 개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번 기회에 공공보건의료가 정말 필요하다는 걸 좀 더 강력히 알리고 싶다.

김창엽:지난 메르스 유행 때 한국의 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보험, 병원에서의 치료 등이 의료 시스템이라면 예방, 방역, 감염병 관리는 보건 시스템이다.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일부는 의료 시스템에 맡겨놓고 일부는 지방행정에 맡겨놓았다. 그걸 메르스 때 절감했다. 그사이 무엇인가 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바꿔놓지 못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는 해결책이랄 게 잘 안 보였다. 제대로 봉쇄를 안 하면 영국이나 미국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병사하고, 열심히 봉쇄하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굶어 죽는다. 병에 걸려 죽거나 굶어 죽거나 그 사이에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무력감이라고 할까, 해결책이 안 보이니 주장할 만한 것도 별로 없어서 좀 무력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느낀 한국 공공보건의료의 현실은 어땠나?

임승관:경기도 내에서 공공의료자원을 확보하고 배분하고 활용하는 역할을 맡아왔는데, 경기도 의료원들의 규모가 다 작다. 제가 일하는 안성병원이 경기도 의료원 중 허가 병상 규모가 제일 큰데 겨우 249병상이다. 도내 공공병원들만으로 중환자 진료 기능을 제공할 수 없으니 민간 부문과 함께 일하는 구조를 짜야 했다. 공공의료기관이 기능적으로 약해서 민간 병원들에 협력을 요청하고 네트워킹하는 일들을 지난 3개월간 긴급대책단이 해왔다. 그런 속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기능적으로 결핍된 부분의 한계를 계속 절감하고 있다. 의료는 전달체계가 핵심이다. 공공의료기관이 의료적으로 상위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면 지역 체계의 중심이 되어 전체 의료 시스템을 주도하거나 코디네이션(조정)하기 어렵다. 교육훈련 등 인적자원의 재생산과 정책 수행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규모의 공공병원이 꼭 필요하다. 공공병원의 양적 확대, 결핍 지역의 확충, 지역별 안배도 중요하지만 권역별로 기능적 전달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안병선:부산시 안에도 부산의료원 외에 보훈병원, 동남권 원자력병원, 부산대병원 등이 있지만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쟤가 진짜 공공병원 맞아?’ 하는 병원들이 나왔다. 외피는 공공병원인데 코로나19 환자를 한 명도 안 보는 곳들이 있다. 부산은 제구실을 하는 게 사실상 540병상의 부산의료원 하나뿐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부산의료원을 소개(疏開)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부산의료원이 아니면 어디에도 못 가는 환자들이 있다. 노숙자, 취약계층 등 민간 병원에서 안 받아주는 분들이다. 최근 부산의료원 일부를 다시 열었더니 응급실과 외래가 미어터졌다. 그동안 못 왔던 환자들이 입원을 하기 위해서 온 거다. 공공의료원이 두세 개만 되어도 좋았을 텐데. 코로나19가 아니라 다른 병으로도 더 아프고 돌아가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창엽:다른 필수 의료체계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나중에 다 평가해봐야 한다. 대구의 투석 환자가 인천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구만 그랬을까? 투석이니 심장질환이니 많은 응급환자들이 코로나19가 아니라 본래 있던 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연합뉴스5월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이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단순히 공공병원, 공공병상 수를 늘리는 일 이상이 필요할 것 같다.

김창엽:절대적인 병상수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기능이 필수적이다. 이번에 대구에서 하루 확진자가 1000명 가까이 생겼을 때 ‘이거 큰 사달이 나겠다’ 했다. 한국의 지금 시스템에서 빤히 짐작이 갔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장 시스템이다. 아프면 의원에 가고 의원에서 “큰 병원 가셔야겠습니다” 하면 환자가 직접 알아서 2차, 3차 병원 응급실이나 외래를 찾아갔다.

코로나19 경증·중증 환자를 어떤 병원에 어떻게 배치할 건지 (이런 조정을) 누가 지휘할 것인지, 지금까지 한국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공의료원이 몇 개 더 있다 한들 바깥에서 환자 2000명이 입원을 못하고 있으면, 누가 (어떤 병원에 어떤 환자를 배치할지) 가릴 수 있을까. 같은 지역 안에서도 2차와 3차 사이, 3차 여러 병원 사이 공식적인 조정 메커니즘이 없었다. 시도 경계를 넘어가면 더 안 되었다. 의사들끼리 알음알음 “받아주라” 하면서 꾸역꾸역 3~4주를 지나왔다. 환자가 이탈리아처럼 많이 발생했으면 정말 대재앙으로 갔을 거다.

이게 바로 공공 시스템이다. 공공병원 말고 공공 시스템. 정부는 민간이 열심히 자원봉사도 하고 병상도 내줬다며 ‘공공과 민간 협력모델로 성공했다’고 모른 척 지나가려 한다. 그러나 민간 측은 어쩔 수 없이 눈치 보고 한 거다.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2차 대유행이 오면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공적 시스템을 급한 대로 올가을과 겨울에 대비해서 임시로라도 좀 만들고 과거보다 빨리 돌아가게 해야 한다.

김명희: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보건의료자원의) 양이 부족하다는 게 1차적 문제다. 지금쯤이면 양이 최소한으로 갖춰진 다음 어떻게 소프트 거버넌스를 구축할 것인가 논의돼야 할 것 같은데 어째 양 이야기도 들어가는 분위기다. ‘민간이 잘해줬다’ ‘민간도 공공의료자원이다’ ‘그래서 공공자원 확보가 굳이 더 필요 없다’ 같은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안병선:민간이 잘해줬나? 잘 모르겠다. 지금도 제일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병원장님들 연락처를 들고 있다가 전화 거는 일이다. 어느 병원서 환자를 안 받아주더라 하면 전화해서 호소한다. 소위 말하는 상급 종합병원에서 ‘코로나19 의심되면 못 받겠다’고 한다. 그러면 “거기서 안 받아주시면 누가 받아줄 거냐”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김창엽:이게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의 현 상황이다.

ⓒ시사IN 이명익왼쪽부터 안병선 부산시 건강정책과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 교수.

중앙과 지방정부 간 네트워크는 잘되었나?

김창엽: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코로나를 대하는 민감도가 다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도 다르다. 중앙정부는 기준이 전국이다. 다른 나라와 전국 수치를 비교한다. 한국의 사망자가 다른 나라보다 적으니 국가 차원에서는 잘했다고 하는데, 각 지역에서는 정말 이상한 일, 실수한 일 등이 굉장히 많았다.

중앙정부 관료가 지자체에 많이 내려갔다. 중앙 관료는 ‘이게 당신들이 할 일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한다. 지방정부는 ‘지방자치에서 보건이나 의료 문제를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하라면 어떡하나’라는 반응이다. 이렇게 서로 혼선이 있었다고 들었다. 청도대남병원 같은 경우에도 확진자가 내부에서 많이 나오고 ‘코호트 격리를 할 거냐, 환자를 뺄 거냐’ 빨리 결정해야 할 때 청도군수, 경북도지사, 중앙부처 아무도 결정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고 한다.

안병선:중앙의 역할이 있고 지방의 역할이 존재한다. 중앙정부는 자원을 배분하고 전체 기조를 잡아가야 한다. 지역 상황에서 감염병 환자가 생기면 컨트롤하는 건 결국 지역사회이다. 부산에서도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를 하면서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사람들이 내려왔지만 사실상 그분들이 지역 현장에 와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빨리 파악하고 전달하는 게 일이었다. 행정안전부, 국무조정실, 청와대, 보건복지부에서 각자 자료를 요청했고 따로 다 보내야 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경험이 이제껏 없었던 거다.

이번 경험을 발판 삼아 어떤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할까?

김창엽:공공‘보건’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검역하고 확진자 찾고 역학조사하고 동선 추적하고 코호트 격리하고 등등, 치료받기 전까지 모든 공공보건 분야에서의 시스템이다. 공공‘의료’ 시스템은 그나마 이야기가 되지만 공공보건 시스템에 대해선 무슨 역할을 하고 뭐가 보완돼야 하는지 관심이 없다. 그 가운데 질병관리본부(질본) 정도가 유일하게 관심을 받지만 사실 질본은 전국적인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다. 질본이 질병관리청이 되면서 지방청 조직이 생기는 것도 좋다.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시군구의 기본 구조를 강화하지 않은 채 지방청만 둬봤자 거의 기능을 못할 거다. 시군구 보건소 중심의 공공보건 시스템을 정비하고 확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안병선: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격상한다고 하니 당장 일선 보건소장님들이 하는 말씀이 “병목이 더 심해지겠다”라는 것이다. 위는 커지는데 말단 조직은 그대로 있으니 깔때기 조직이 된다. 업무는 결국 보건소로 내려온다. 예전 감염병 관리 파트가 국립보건원에 있다가 질병관리본부로 옮겨가고 커지면서 결핵·에이즈 등 세부 파트마다 과가 나뉘었다. 보건소 처지에서는 한 과에서 문서 하나만 내려오고 올려 보내던 걸, 과가 여러 개로 나뉜 뒤에는 계획서나 보고서를 각각 따로 올려 보내게 됐다. 보건소 직원 수는 그대로인데. 질본이 커지고 격상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방의 공공보건의료 실행 업무를 다 맡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임승관:중앙정부 조직의 지방본부를 권역별로 몇 개 두면서 지도와 조정 역할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17개 시도를 각각 강화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역에서 10년 이상 감염병 관리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지방정부를 도와 활동했던 전문가로서 솔직히 둘 중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지역 강화가 핵심’이라는 의제에 동의하지만 단지 인원을 늘리고 예산을 배정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긴 어렵다. 17개 시도를 동시에 기능 상승을 꾀할 만큼 인적자원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청으로 승격될 질병관리본부 지역조직 방안은 권역별로 소수만 설치하면 되고,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과 매치하면 기능적 완성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순기능을 하려면 중앙정부 조직이 실질적인 지원과 서비스 기능을 해야 한다. 늘 겪어온 일이지 않은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단념한 일일 수도 있고. 중앙과 지방정부 기관 사이의 혹은 관료 사이의 권력관계를 혁신하지 않으면 공공보건의료의 기능적 혁신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명희:공공병원을 돌면서 인터뷰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공공병원들이 지금 다 지방의료원이 돼서 지방에서 관할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떡하니 독립만 시켜주면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이론적으로는 지자체 능력을 강화하는 게 좋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잘 안 된다. 기술지원과 인력, 활동할 수 있는 구조와 역량 없이 떡하니 지방에 넘겨서는 안 된다.

김창엽:‘보건소냐 질본이냐’의 문제를 넘는다. 돈과 인력은 어떻게 하고, 누가 지휘하며, 의뢰는 어떤 경로로 할 건지, 병원과의 연계는 어떻게 할 건지 모든 시스템 요소를 다 건드려야 한다. 한마디로 중앙정부부터 최일선 또는 지자체에 이르는 국가보건 시스템에 대한 설계 및 종합계획이 필요하다.

ⓒ연합뉴스5월12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호흡기안심진료소에서 한 의료인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공보건의료 부문의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 거론된다. 질본에 전문가가 없다, 역학조사관 수가 부족하다 등등. 그런데 막상 또 보건의료 부문 공무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안병선:보건소 업무량은 계속 늘지만 공무원 수는 늘지 않았다. 사람 숫자가 많은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전부 계약직이나 위탁 형태다. 감염병관리지원단도 모두 민간 위탁 방식이다. 여기에 속한 역학조사관이 정식 직원이 아니다. 공무원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줄 수가 없다. 보건소 선별진료소 검체 채취도 정식 공무원이 아니면 위험업무라 잘 못 시킨다. 많은 국민이 공무원 조직을 늘리는 걸 꺼려한다. 보건의료 공무원도 효율성을 따지며 늘리지 않았던 게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비효율을 낳았다.

(임승관 원장을 보며) 혹시 경기도에도 ‘살찐 고양이 조례’(공공기관 임원의 급여를 제한하는 조례)가 있나? 공무원 급여 기준에 맞추다 보니 의무직 의사 수당이 2003년도 이후 고정돼 있다. 시중 의사와 급여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의사들이 공무직에 들어왔다가 몇 개월 못 넘기고 나간다. 역학조사관으로 들어온 한 의사 선생님은 5개월을 못 넘기고 나가면서 하는 말이, “공무원 되면 ‘나인 투 식스’는 확실히 보장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였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소에 많은 의사들이 남아 있는 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임승관:어쨌든 대중은 질본 같은 특수 관료조직이 좀 더 전문화되길 원하고 그게 시대 흐름에 맞기도 하다. 이번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때에도 질병관리청 승격 이야기를 하면서 전문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국립감염병연구소 얘기도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문성이 담보된 정부 조직이 필요한데, 적임자들을 찾아내고 조직 안에서 오래 유지시키거나 발전시킬 토대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준비가 부족하다. 어쩌면 시행착오가 불가피한데, 충분한 사유와 토론 없이 너무 빠른 속도로 가면 오히려 피하고 싶은 오류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창엽:어떤 전문인력이 왜 필요한지가 정리돼야 한다. 예를 들어 역학조사관이 꼭 의사일 필요는 없다.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배우면 되는 거다. 해당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이 어디에 얼마나 필요한지 정리가 되어야 월급을 줄 건지 말 건지, 승진을 시켜줄지 말지, 계약직도 괜찮은지 정해진다.

경제적 처우보다 더 중요한 게 경력 발전의 가능성이다. 관료를 하게 되었을 때 월급이 적어도 그것을 상쇄하는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데, 보건의료 부문 관료에게는 적다. 보건소장이나 역학조사관이나 ‘여기에서 끝이다’라고 생각하면 별로 동기가 없다. 일반 국민의 인식이나 채용하는 쪽에서나 경제적 보상 문제만 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 있다.

안병선:관료조직에서는 전문직 개방형 채용을 좋아한다. 승진을 안 시켜도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조직에서 분명 전문가가 필요한 자리가 있다. 그 전문가를 넣기 위해 우리가 그만한 대가나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면 그건 시스템 차원으로 해야 한다. 이번에 많은 분들이 감염병이 우리의 안전이나 안보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감염병이 유행하지 않을 때도 계속 지불할 의사가 있을까? 전쟁이 안 일어나도 군대를 유지하듯이 감염병과 관련된 공공보건의료 체계에 계속 일정하게 지불을 할 수 있다는 국민 동의가 있어야 사실은 탄탄해질 것이다.

공감대가 좀 생기지 않았을까?

김명희:그렇게 보기엔 K방역 성공 담론이 너무 강하다. 일반인 친구들을 만날 때와 보건의료 현장 이야기를 들을 때 간극이 너무 크다. 보건의료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더 큰 사고 안 난 게 너무 다행이고 정말 천운이 도왔다’고 한다. 잘한 것도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것도 많다. 잘한 것만 얘기하다 보니 이대로 충분히 좋다, 뭘 더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김창엽:공공보건의료에 관한 위기감, 이걸 변화를 위한 에너지라고 한다면 오히려 중앙보다 지방에 더 있는 것 같다. 경남 서부의 경우 해당 지역에 중환자실이 모자라서 확진자들을 전부 바깥으로 보내며 ‘진주의료원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다. 광주에서도 ‘우리가 시립병원 하나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이런 목소리가 있다. 지역주민, 지방정부의 요구와 에너지가 국회를 통해 분출될 채널이 있다고 본다.

임승관: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무대가 열리니 여기저기서 병원 건립 얘기가 나오는데, 공공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분석적 계량 없이 병상을 늘리고 인력 뽑고 자원을 확충하면, 결국은 또 한 차례의 짜깁기가 되어서 기본원리에 맞는 새로운 설계의 기회가 다시 한번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안병선:그런 부분도 있지만 지역에서 보면 공공보건의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산시가 지역에 공공병원 두 개를 추가로 지을 계획인데,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경제적 효율성을 검증하는 제도, 예타)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공공병원은 예타 면제를 해줄 필요가 있다. 소방서, 학교, 도서관 지을 때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나? 공공도서관더러 돈 벌라고 하지 않듯이 공공병원에도 수익을 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EPA영국 국민보건서비스 소속 의료 인력들은 개인보호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 놓여 있다.

공공보건의료가 발달한 유럽의 코로나19 상황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민보건 서비스) 같은 국영 의료체계가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창엽:어불성설이다.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말이 안 된다. 영국이나 스페인이 공영의료 체계라서 엉망이라면, 미국은? 반대의 경우 아닌가. 시장형도 나쁘고 공영형도 나쁘다면, 중간에 있는 사회보험형이 좋을까? 그러면 일본은 왜 저 모양이지? 공통점은 이거다. 민영의료든 공영의료든 감염병 유행 국면에서 꼭 필요한 데 돈을 쓰지 않았다. 공영의료 체계는 긴축하느라, 민간시장 체계는 딴 걸로 돈 버느라고…. 한쪽은 시장 논리로, 다른 쪽은 긴축 논리로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공영의료 체계에서 정부가 긴축하면 시장형보다 타격이 더 크다. 돈줄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일본도 돈을 안 썼다. 보건소 기능 줄이고 검사도 줄였다. 공공의료 측면에서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돈을 안 썼다. 그게 공통점이다.

김명희:캐나다 사례도 있다. 캐나다는 메디케어 시스템에 의해 병원 서비스가 무상의료에다 진료의 질도 상당히 높다. 그러나 장기요양은 다 시장화되어 이번에 캐나다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대부분 장기요양시설에서 나왔다. 캐나다 연구자들은 ‘이럴 줄 알았다. 예전부터 장기요양도 메디케어에 넣어 공공보험 안에서 운영하자고 했는데 안 하더니 결국 이런 일이 터졌다’라는 반응이다. 미국·캐나다·이탈리아 등의 사례도 결국 공공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은 결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임승관:이 문제를 의료 시스템만으로 논의하기는 힘들다. 훨씬 결정적인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행의 확산 과정에서 ‘본격적인 대응을 언제 시작했느냐’ ‘언제부터 준비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한국과 타이완은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준비와 대응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유행의 양적 확산을 막았다. 전 세계 어느 국가라도 방심하고 늦게 시작했다면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 성격이 어떻든 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어떤 보건의료 체계가 팬데믹을 견뎌내기에 더 건강하거나 회복성이 있느냐는 어쩌면 제2라운드에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시사IN 이명익2013년 5월29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립 진주의료원을 폐업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병원 로비 앞에서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촛불을 든 모습.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공공의료, 의료의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안병선:공공의료란 취약계층만 이용하는 질 낮은 의료가 아니다.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의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 안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필수적인, 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의료를 담당해야 하는 중심이다. 상업화하는 의료에 표준을 만들고 건강성을 지켜내는 소임도 중요하다.

김명희:의료의 공공성이 교과서적으로 반드시 국가나 정부가 소유한 것으로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가 소유해서 망한 것도 많다. 국민 탄압하고 부정부패 심하고…. 국민들은 이런 공공성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공공성이 아니라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이름을 붙여나가야 한다.

김창엽:공공성은 사회마다, 시기마다 다른 개념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보건의료에 대한 문제의식이 뭐냐. 첫째는 비용이고 두 번째는 접근성·질·불평등이다. 그 바탕에는 상품으로 거래되는 의료라는 문제가 있다. 상품화된 의료가 비용·불평등·질·접근성 문제를 다 빚어낸다. 이런 문제들을 뒤집어놓은 게 공공성의 실체다. 결국 공공성 강화의 핵심은 탈상품화다.

임승관: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발굴해내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의 공공보건의료 구조와 형상을 새로 잡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시도와 모델이 만들어지고 허용되는 구조면 좋겠다. 공공보건의료의 인프라를 새로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최소 10~20년은 걸리지 않을까. 좋은 공공보건의료가 우리 세대에는 안 오더라도 다음 세대에는 꼭 오게끔 긴 호흡도 필요하다. 당장의 오류를 고쳐가는 일과는 별개로,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차근차근 일구겠다는 소망의 마음도 필요할 것 같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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