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를 펴낸 박형민씨와 김동규씨(왼쪽부터)가 광주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베드로지성전 앞에 섰다.

지금도 정확한 날짜가 먼저 튀어나온다. “잊어버리지도 못해요. 2016년 5월13일이었어요.” 그날 김동규씨(24)는 친구 박형민씨(24)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낯모르는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너 지금 공부하던 거 그만뒀지? 나중에 정말 큰일 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 같은데….” 당황할 틈도 없었다. 여성은 속사포처럼 제 할 말만 하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짐작 가는 데가 있었다. 동규씨는 형민씨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네가 그랬냐?” 형민씨는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뭘? 무슨 일 있었어?” 동규씨가 다른 무엇보다 마음 아팠던 건 애써 모른 척하는 오랜 친구의 얼굴이었다.

동규씨가 경험한 일은 이른바 ‘은사치기’라고 불리는 신천지 전도 수법 중 하나다. 교육과정에서 이탈한 사람을 재포섭할 때 사용한다. 동규씨는 그 일이 있기 한 달 전쯤 신천지를 빠져나온 터였다. 친구 형민씨의 권유로 3개월간 성경 공부를 했던 동규씨는 자신이 받은 교육이 신천지 입교 과정임을 알고 난 뒤 그만뒀다. 은사치기는 나름 치밀하게 이뤄졌다. 신천지는 형민씨를 ‘고리’ 삼아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미리 고지받았고, 두 사람이 만나기 직전 다른 신천지 교인을 동원해 악담을 퍼붓고 사라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은사치기 같은 가스라이팅이 신천지 조직 전반에 일상적으로 존재해요. 이게 신천지 문제의 핵심이에요.” 일종의 ‘정신적 학대’인 가스라이팅 상황을 설명하는 형민씨는 담담했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고 의존하게 한다. 신천지에서 보낸 5년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일기를 들춰 보는 동안 형민씨는 여러 번 놀랐다. 과거의 자신이 그렇게 낯설 수 없었다. 동규씨를 전도하던 날, 형민씨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동규가 하루빨리 구원의 비밀을 깨닫기를…. 동규가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내가 더 정신 차려야 한다. 더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

신천지 혐오 기사, 내부 결속용으로 악용 가능

일기 쓰기는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한 말 중 거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는 설교 도중 “신앙을 하며 느끼는 것을 매일 일기에 쓰면 나중에 아주 멋진 책 한 권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일기는 정말 책이 되었다. 형민씨와 동규씨가 신천지에서 보낸 시간을 ‘드러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한때 신천지 내부자였던 두 사람은 탈퇴자가 되기까지 과정을 얼마 전 자비출판으로 펴냈다. 이들이 쓴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는 자신들의 탈출을 ‘운 좋은 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결심한 결과물이다. 형민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신천지라는 집단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조직에 일조했던 가해자이기도 하거든요. 신천지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알려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일을 막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교육과정에서 바로 빠져나온 동규씨와 달리 형민씨는 한때나마 ‘신천지 그 자체’였다. 전 통합진보당 계열이 조직했던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하던 형민씨는 2013년 한 집회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그 집회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죽지 않자 단체 내 일부 ‘선배’들은 아쉬워했다. 열사가 탄생할 수도 있었다는 이유였다. 미련 없이 단체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가 열아홉 살 형민씨를 압도했다. 신천지를 만난 건 그때였다.

형민씨를 신천지로 인도한 사람은 ‘마음 밭에서 돌을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네 번 매일 2시간을 몰아치듯 강의를 들었다. 교리라는 ‘정답’이 있는 세계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미디어 금식’도 한몫했다. 인터넷을 보면 영이 죽는다고 했다. 그 과정을 6개월 넘게 반복하고서야 ‘S가 풀렸다’. 신천지라는 사실을 밝힌다는 의미다. 형민씨는 자신이 받은 교육이 신천지라는 것에 당혹했지만 발을 빼기 어려웠다. “제가 이미 투자한 시간이 있으니까,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의 주장을 내면화하는 거예요. 광주광역시 인구가 145만명인데, 그중 2만명이 같은 교회 사람이잖아요. 이게 도움이 되면 됐지, 피해가 되겠나 싶은 마음도 있고요.”

신천지는 자신들을 문제 집단으로 규정하는 각종 보도를 역으로 내부 교육에 활용했다. 자극적으로 편집된 보도 영상은 일부의 진실일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강사는 그 지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든다. 영상을 보여주며 ‘여러분 우리가 정말 이래요? 직접 경험해봐서 알잖아요. 아니죠?’라고 묻는다. “실제 제가 경험한 센터에서는 감금이나 폭행은 없었거든요. 어쩌면 신천지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를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형민씨는 그래서 신천지를 다룬 각종 보도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코로나19 유행의 변곡점이었던 31번 환자가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쏟아진 각종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되레 이 기사들이 내부를 결속하는 용도로 쓰일까 봐 염려되었다. 대다수 교인은 자신처럼 ‘평범’하다. 형민씨나 동규씨가 보기에 이들은 광신도가 아닌 ‘피해자’였다. “20만명이 넘는 신도 전부를 ‘악’으로 규정하는 일은 편리하고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요. 혐오하고 낙인찍을수록 숨어버리니까요.”

코로나19는 한 사회가 실패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비로소 일부나마 실체가 드러난 신천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종교를 떠받치고 있는 무명의 신도들은 대부분 여성이거나 자립 기반이 없는 학생이었다.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무명씨들이 신천지 안에서는 언젠가 ‘천국 제사장’이 될 특별한 사람 대접을 받았다. 기성 종교, 특히 개신교 내 비리나 세습 문제 역시 신천지 내부 결속에 주요하게 동원됐다. 신천지는 기존 종교 내부의 문제점을 교육에 활용하며 ‘신천지는 다르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른바 신천지 교인이 ‘추수꾼’으로 다른 교회에 침투하는 ‘바벨 탐방’도 이런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구원을 담보로 한 거래에서 신천지가 이들에게 요구한 건 시간뿐이었다. 학생들에게는 헌금도 요구하지 않았다. 신천지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과 사회적 관계는 멀어졌다. 어느 순간 주변에 남는 건 신천지 교인들뿐이다. 대표적인 게 ‘고서 봉사’다. 지파장 집 마당의 풀을 뽑거나 지파장 소유 밭을 관리하는 일을 뜻했다. 청년들이 무일푼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동안 여성들로 조직된 부녀부 교인들은 가사노동이나 식사를 도맡았다.

형민씨는 군 입대 덕분에 신천지와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의심은 군대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확신으로 바뀌었다. 신천지는 ‘국방부’라는 별도 부서를 통해 군 입대한 신도를 관리하지만, 몸이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제대 얼마 후인 2019년 7월, 형민씨는 신천지로부터 ‘사고자 처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배에 8번 무단결석한 신도에게 내려지는 조치였다. 사고자 처리 후에도 이런저런 루트로 ‘만나자’라는 연락은 계속됐다.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연락은 내용을 달리해 이어졌다.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동규씨도 형민씨도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정확히는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다. 동규씨에게 신천지에서 탈퇴한 형민씨는 그 증거다. 두 사람은 이만희라는 ‘절대자’를 믿는 대신 서로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아직 신천지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도록 설득해보려 한다.

기자명 광주·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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