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4월20일 열린 ‘코로나19 중증환자 병상지원 민간 종합병원장 간담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 두 번째)는 중환자 병상 문제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2월18일 이후 지역사회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의료자원이 고갈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전국에서 긴급 파견된 간호사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에 배치되고 다른 지역 민간 병원에서도 부랴부랴 음압병상을 열었다. 다행히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나 미국 뉴욕시가 겪고 있는 ‘의료체계 붕괴’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대구 지역에는 아픈 기록이 남았다. 2월27일부터 3월9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 8명이 병원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고령의 기저질환자였던 이들은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거나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던 중에 사망했다. 지난 두 달간 발생한 코로나19 국내 사망자의 90.7%(216명)를 차지하는 곳, 대구·경북은 의료시스템 차원에서 코로나19 재난을 ‘제대로 겪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우리 지역이라면 달랐을까? 확산세가 누그러진 지금, 각 지방자치단체에게는 대구·경북이 던진 질문이 남았다. 2차 파도(Second Wave)가 온다면 ‘제2의 대구·경북’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위기를 대비해 각 지역은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놓았을까? 각각 지역 내 의료자원은 서지(Surge·의료 수요 급등)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까? 또다시 의료진 개개인의 희생과 민간 병원들의 선의에만 기대어 난국을 버틸 수는 없다. 재난 상황에서 병상과 장비,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계획이 미리 서 있지 않다면 병상 확보를 위한 내부공사를 하는 동안, 간호 인력이 파견되어 이동하는 동안, 환자 이송 체계를 만드는 동안 사망자가 나올 것이다.

경기도는 대구·경북이 남긴 질문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4월18일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성남시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명지병원 등 도내 종합병원 19곳의 감염관리실장·내과과장과 경기도 보건건강국장, 보건의료정책과장 및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이 모여서 ‘진료 협력 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코로나19 중환자 진료 자원 확보를 위해 공공병원과 민간 병원이 손잡고 구축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다. 감염관리 실무자들로 구성된 진료 협력 네트워크 간담회에서는 코로나19 환자 진료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유행 상황에 적합한 각 의료기관의 효율적인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병상 자원 분류를 표준화하고 확진자 중증도 기준을 마련하고, 어느 병원에 중환자 병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실시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환자 이송에 필요한 운송장비를 공동으로 구입하는 안도 검토했다.

경기도가 절박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집단감염에 취약한 요양시설이 대부분 경기도에 몰려 있다. 경기도 내 요양병원 수는 349개로 전국 광역지자체 중 1위이다. 서울(125개), 인천(70개), 대구(68개)보다 많다. 요양원 등 장기요양시설까지 포함하면 경기도에만 2000개가 넘는다. 인구 1만명당 의사 수는 서울(36.16명), 대구(27.14명)보다 적은 18.28명이다. 인구 1만명당 간호사 수도 31.54명으로 서울(56.48명), 대구(51.59명), 인천(40.67명)보다 적다. 수도권 내에서도 상급 종합병원, 공공의료기관 등 의료자원은 대체로 서울에 밀집해 있지만 위험요소는 경기도에 몰려 있다.

경기도가 의료자원 확보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실제 대구·경북 다음으로 집단감염의 위기를 경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분당제생병원(3월5일), 군포 효사랑요양원(3월19일), 의정부성모병원(3월31일) 등 의료기관 내 감염 사례가 잇따랐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자료에서 ‘집단 발생’은 전체 확진자 중 19.1%(2042명)로 뭉뚱그려 집계되지만 그 집단이 어떤 집단이냐에 따라 치사율이 달라진다. 고령, 기저질환자가 많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은 그 후폭풍이 더욱 강력하다. 비슷한 시기 서울 구로구 콜센터·만민중앙교회, 성남 은혜의강 교회 등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지만 중증환자 비율은 비교적 낮았다. 반면 분당제생병원의 경우 확진자 43명 가운데 중환자가 4명 발생했고 그중 3명이 사망했다. 군포 효사랑요양원은 피해가 더 컸다. 확진자 27명 중 중환자가 10명이었다. 그중 5명이 사망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역시 코로나19 확진자 72명 중 기저질환을 앓던 3명이 사망했다.

“당시 경기도가 확보한 중환자 병상이 25개였는데 군포 요양원에서 중환자 10명이 발생하면서 3일 만에 중환자 병상의 40%가 차버렸다. 요양원 한 군데가 (집단감염이) 터져서 이런 일을 겪으니 생각을 달리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지난 4월18일 열린 코로나19 환자 진료 네트워크 간담회에서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중환자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도의 경우 분당서울대병원 등 국가지정 입원치료 병상(중환자 병상 5개)을 제외하고 나머지 중환자 병상 수요를 그간 민간 종합병원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존해왔다. 고려대 안산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등 6개 민간 종합병원에서는 중환자실과 일반병동 일부에 격벽을 설치한 뒤 음압격리병실 총 20개를 만들었다. 이 덕분에 대구 의료시스템이 마비되었을 때 중환자 10명을 경기도가 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제공경기도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비어 있는 안성병원 중환자실에 코로나19 중환자를 위한 병상을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공공병원 내 응급실 등에 중환자 병상 추가

일반적으로 코로나19 중증 환자는 민간 종합병원으로, 경증 환자는 공공의료원이나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된다. 기계호흡기, 혈액투석기(CRRT),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가 구비된 집중치료실(ICU)은 주로 상급 종합병원에 있는 자원이다. 공공의료원 중환자실은 전문 인력과 인프라가 비교적 부족하다.

4월22일 기준 경기도가 확보한 코로나19 환자 치료병상은 총 469개이지만 그중 중환자 병상은 26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65.4%(17병상)를 사용 중이다. 요양시설 집단감염이 발생해 2차 파도가 밀려온다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민간 종합병원 음압격리 병실의 경우 환자 1명을 보는 데 필요한 간호 인력만 하루 최소 15명이다. 개인보호구를 착용하느라 2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 처지에서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추가 인력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기존 병상을 빼는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 두 달은 버텼어도, 앞으로 두 달을 버티기는 힘들다.

중환자 병상 확보의 딜레마를 깨기 위해 경기도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지방의료원 기능 전환’이다. 공공병원 내 중환자실과 응급실에 중환자 병상을 추가로 만들고, 민간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파견 지원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들 중 일부 중환자실은 비어 있다. 이미 기계호흡기, 모니터링 장비 등 중환자 진료를 위한 기본 장비가 갖춰져 있기에 이동형 음압기, 강화유리벽, 자동문, 샤워실 등을 추가로 설치하기만 하면 된다. 2차 파도가 올 경우를 대비해 경기도 안성시 안성병원 중환자실(15병상)과 응급실(10병상)에 시범적으로 이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민간 종합병원의 음압격리 중환자실과 비슷한 수준을 보장하기 어렵다. 부족한 기계호흡기, 투석기(CRRT)는 추가로 구비할 수 있지만, 추가 인력이 필요한 에크모를 작동시키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최중증 환자가 발생할 경우 그에 맞는 환자 이송 체계도 완비되어 있어야 한다. 임승관 단장은 “환자가 병원에 가보고 죽었느냐, 안 가보고 죽었느냐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음 파도가 오면 적어도 병상을 찾기 위해 전화를 돌리다가 사망하는 사례를 막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대구·경북과 같은 유행이 닥쳤을 때, 상급 종합병원들이 집중치료실 전체를 비우고 확진자 치료를 준비할 때까지 일종의 ‘버퍼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임 단장은 설명했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 테이블이 지난 4월20일 열렸다. 경기도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증환자 병상지원 민간 종합병원장 간담회’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민간 종합병원장 11명 등이 참석했다. 이재명 지사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 같지만 재감염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 언제 다시 급박한 상태가 될지 알 수 없다. 중증환자 병실 부족 문제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고 실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협조를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도는 파견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분은 꼭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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