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에 위치한 ㄱ초등학교는 점심마다 ‘도시락 전쟁’을 치른다. 정오 무렵이면 배달 오토바이 여러 대가 줄지어 학교에 도착한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 100여 명과 ‘긴급돌봄’을 신청해 학교에 나와 있는 저학년 학생 50여 명이 배달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한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사 12명도 지난 3월23일부터 출근해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학교에서 ‘밥’을 책임지는 이들이지만 막상 조리사들은 급식 시설 대신 교문 앞에 서서 외부 출입 인원의 체온을 체크하는 일을 맡았다. 시설도, 인력도 있지만 ‘급식 시스템’은 학교 마음대로 가동할 수 없다. 법적으로 학생이 없는 학교에서는 급식 제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학교급식법에 따르면 학교급식은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에게만 제공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평상시 교직원들은 학교급식을 먹더라도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비용을 별도 지불한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학생이 등교하지 않게 됐고, 자연스럽게 전국 학교의 통상적인 급식 체계도 멈췄다.
급식 중단은 단순히 학생들이 밥을 못 먹는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급식과 연결된 식품 생태계 전체에 타격을 준다. 식품을 공급하는 농어촌과 낙농업계, 이를 가공하는 업체와 유통업계, 그리고 학교와 학생 모두의 안정적인 생계와 식생활을 위협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친환경 농업이다. 4월9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 각종 친환경농업 유관 단체가 모인 ‘코로나19 극복 친환경농업 대책협의회’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학교급식 중단에 따른 정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친환경농산물은 그동안 학교급식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코로나19 유행은 전례 없는 ‘수요 절벽’을 의미했다. 단 두 달 만에 업체 전반이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을 허투루 듣기 어려운 이유다.
급식용 우유 수요가 급감한 낙농업계도 타격이 크다. 낙농진흥회가 3월30일 발표한 ‘원유(原乳) 수급 동향 브리핑’에 따르면 1월까지 ‘안정’ 단계였던 국내 원유 수급 동향은 지난 2월부터 두 달 연속 ‘주의’ 단계로 격상됐다. 한국유가공협회에 따르면 학교급식으로 소비되는 우유는 하루 280만 팩, 560t 규모다. 국내 총 원유 생산량의 5%를 차지한다. 인위적으로 젖소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 어렵고, 분유로 전환해도 가격경쟁력이 없어서 급식 외 다른 판로를 찾기 힘들다.
지방도시일수록 급식 중단에 따른 충격이 크다. 지역 주민들의 기반 산업인 농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너나 할 것 없이 특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남아도는 급식용 농산물을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긴급 유통망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경쟁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업이 ‘드라이브 스루 직판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지역 농산물을 살 수 있도록 특판장을 마련하고 있다.
4월14일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레포츠타운에 열린 직판장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500m 넘게 자동차들이 줄지어 섰고, 구입하는 데 30분 넘게 소요되었지만 시가보다 저렴하게 식자재를 구할 수 있어서 장 개시 1시간 만에 일부 품목이 품절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직판 확대가 ‘급식 생태계 붕괴’의 근본 대안은 아니다. 당장 농가에게 힘이 될 수는 있지만, 급식 수요층인 학교와 학생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편성되어 있던 ‘학교급식 친환경농산물 식재료 지원 예산’을 활용해 식자재를 구매하고, 이를 학생 집에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다.
전라남도 내 26만명에게 식자재 세트 배송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전라남도다. 전라남도는 4월18일부터 기존 ‘친환경농산물 식재료 지원 사업’을 아예 ‘친환경농산물 가족 꾸러미 사업’으로 대체해 104억원 규모의 식재료 배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 1인당 4만원 수준으로 식자재 세트를 만들어 도내 26만명에게 배송하는 방식이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학교 예산을 함께 활용해 각 시군 학교급식 실무협의회에서 영양을 고려하여 ‘식재료 꾸러미 품목’을 정한다. 각 학교가 학생 부모로부터 일일이 개인정보(주소지) 제공 동의를 받아야 해서 지역별로 시행 시점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판로가 막혔던 지역 친환경농산물의 유통에 숨통을 틔운 동시에 급식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무상급식은 공교육이 미래 세대의 건강과 영양까지 책임진다는 철학에 근거한 제도다. 이 철학에 따라 지자체와 교육청이라는 두 축이 예산을 분담해 무상급식 체계를 지탱하고 있다. 식자재와 운영비는 지자체가, 조리사를 비롯한 교육공무직의 급여는 교육청이 예산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전라남도의 ‘친환경농산물 가족 꾸러미 사업’은 기존 급식 체계에서 ‘지자체의 몫’을 다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다른 축을 차지하는 교육청의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당장 제한적이나마 급식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긴급돌봄 지원으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나 가정 사정으로 ‘밥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이 학교에 들러 밥을 먹게 하자는 것이다. 4월16일 기준으로 서울·전남·제주 등 일부 교육청은 ‘학교별로 자체적으로 재료를 조달해 급식 시설을 가동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대다수 교육청에서는 별도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서울·전남·제주의 방침도 임시조치에 가깝다.
전례 없는 온라인 학기 시행을 앞두고 ‘밥’은 어쩔 수 없이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급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학교니까 아이들이 골고루 먹는다. 급식은 건강한 식단에 입맛을 맞춰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모든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고른 영양을 챙겨주기는 어렵다. 지난 1월부터 4개월째 가정에서 배달음식이나 간편식 등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급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밥도 결국 교육이다. 온라인 개학에 열중하는 사이 ‘밥’에 담긴 교육의 의미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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