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인 라만의 직장은 “현다이, 빅 컴퍼니”
  • 영암·김영화 기자
  • 호수 613
  • 승인 2019.06.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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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가명)

사망자 6872명, 부상자 1만768명. 인구의 50%에 해당하는 1500만명이 기아 위기. 2015년 이후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5세 미만 아동 수 8만4700명. 2014년 발발한 내전으로 아라비아반도 최남단에 있는 예멘은 전쟁터가 되었다.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사나와 함께 예멘인들의 삶도 무너졌다. 예멘인 300만명이 징집과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중 561명이 2018년 제주도에 입국했다. 예멘에서 제주공항까지, 1만㎞가 넘는 긴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단 두 명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 ‘난민’에게 한국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그로부터 1년, 한국 사회는 ‘8000㎞를 날아온 낯선 질문’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시사IN>은 출도 제한이 풀려 각지로 흩어진 예멘인을 만나 그들의 1년을 돌아봤다.






2층 침대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룸메이트 모하메드 씨(21)가 자고 있던 라만 씨(27·가명)를 흔들어 깨웠다. 시계는 오후 3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날 ‘수후르(Suhoor)’를 먹었다. 수후르는 라마단 기간에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한 뒤 여러 사람이 모여 해 뜰 때까지 먹는 식사를 의미한다. 라만 씨를 포함해 6명이 예멘 전통 빵 ‘말라와’와 닭고기를 올린 밥, 튀긴 생선을 직접 만들어 밤새 먹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일요일이라 가능했다. “일요일 이 시간은 다 자고 있을 시간이에요. 늦게까지 식사를 하느라 아침 7시가 되어서 잠들었어요.”

“앗살라무 알라이쿰.” 5월26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 사원아파트 앞에서 라만 씨를 마주친 주민 한 명이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를 듣기가 쉽지 않다. 비상대피 안내도와 관리사무소의 안내문도 영어와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있다. 4개 동으로 이루어진 1차 아파트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숙소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는 7000여 명, 그중 이주노동자가 1000명에 달한다. 중국동포 200여 명을 포함해 고려인·베트남·우즈베키스탄·네팔 등 출신이다. 라만 씨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다. 현대삼호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전기 배관 만드는 일을 한다. “아직은 용접을 하는 보스를 옆에서 돕고 있어요.” 사원아파트이지만 회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오자마자 자전거 한 대를 마련했다. “걸어가면 40분 정도, 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면 10분 정도 걸려요.” 라만 씨 말을 뒷받침하듯 아파트 단지 앞은 자전거로 빼곡했다.

ⓒ시사IN 조남진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에 들어온 라만 씨는 현재 전남 영암에 산다.
그가 예멘을 떠나 영암까지 이동한 거리는 총 1만819㎞이다.

최근 들어 불면증이 심해졌다. “잠을 못 자서 일할 때 머리가 아파요.” 불면증의 원인 중 하나는 아내다. 라만 씨는 2017년 아내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예멘을 떠나야 했다. 후티 반군의 징집을 피해서였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아내가 정말 보고 싶어요.” 예멘과 한국의 시차는 6시간. 밤늦게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채팅방에는 하트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2018년 5월6일에 제주에 입국한 뒤 5개월은 횟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한 달은 생선 넣는 아이스박스를 만드는 곳에서 일했다. 2018년 10월 난민 심사 결과가 발표되고 착잡했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가족을 데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출도 제한이 풀렸지만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목포로 갔던 다른 친구에게서 소식이 들려왔다. “숙식은 문제없어. 다른 예멘인도 많아.” 라만 씨는 서둘러 짐을 싸 목포로 향했다.

인력 수급 어려웠던 조선소 협력업체에 취업

라만 씨를 비롯해 현재 예멘인 100여 명이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선박 페인트칠, 도료 배합, 용접, 선체 녹 벗기기 등을 하고 있다. 이곳에 예멘인이 늘어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예멘인들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시점이다. 당시 현대삼호중공업 협력회사협의회에 소속된 협력회사 대표 7명이 예멘인들을 채용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와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인력 수급이 숙제였던 조선소 협력업체들에게 이들은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조선소의 외국인 인력 중 인도적 체류 허가 신분은 현재 예멘인뿐이다.

라만 씨는 시간당 8350원을 받고 하루 9시간씩 주 6일을 일한다. 잔업이 많은 달은 240만원, 보통 2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업무 강도가 높고 잔업도 많았지만, G-1(난민 신청자) 비자 소지자가 주로 가는 일자리에 비해서는 복지가 좋았다. 사내 협력사의 모든 노동자에게 숙식이 무료로 제공됐다. 식사에는 할랄 음식도 포함돼 있었다. 1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기도실도 회사 내부에 있었다. “이전 일터에서는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는데 여기엔 예멘인도 많고 다른 아랍 사람도 많아서 좀 더 편해요.” 이주노동자가 많다 보니 업무 시간이 끝난 저녁에는 회사에서 한국어 수업도 열어줬다. 라만 씨는 수업을 들은 지 2주째다. 라만 씨의 동료인 검단일리 씨는 최근에 4개월간의 한글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수료증도 받았다. 아래에는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지원팀장’ 직인이 찍혀 있었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는 이유가 있었다. 라만 씨보다 4개월 전에 이곳에 왔던 모하메드 씨는 허리에 복대를 차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쳤어요.” 척추에 생긴 염증이 치료될 때까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모하메드 씨는 7개월째 일하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없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다. 모하메드 씨는 건강보험 가입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고, 그가 취업한 회사에서도 건강보험에 따로 가입시켜주지 않았다. 라만 씨도 모하메드 씨도 근로계약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 계약을 맺은 건 하청업체인데 회사마다 계약 조건이 달랐다. “사인은 했는데 제가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있진 않아요. 하나는 출입국·외국인청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사장님이 가지고 있거든요.” 회사 이름을 묻자 라만 씨가 작업복에 새겨진 문구를 보며 말했다. “현다이, 빅 컴퍼니.” 라만 씨의 출입 카드에는 하청업체인 ○○산업, 모하메드 씨는 □□산업이라고 쓰여 있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날씨가 맑아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의 크레인 수십 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라만 씨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혼자 바닷가를 찾는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 와요.” 그럴 때면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매일 안부 전화를 하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숙소로 돌아오니 통돌이 세탁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7명이 함께 살다 보니 휴일에는 온종일 빨래를 해야 한다. 방 한쪽에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때 묻은 회색 작업복이 잔뜩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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