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로 태어나는 예멘 난민 아동
  • 제주·김연희 기자
  • 호수 613
  • 승인 2019.06.18 11: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하메드

사망자 6872명, 부상자 1만768명. 인구의 50%에 해당하는 1500만명이 기아 위기. 2015년 이후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5세 미만 아동 수 8만4700명. 2014년 발발한 내전으로 아라비아반도 최남단에 있는 예멘은 전쟁터가 되었다.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사나와 함께 예멘인들의 삶도 무너졌다. 예멘인 300만명이 징집과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중 561명이 2018년 제주도에 입국했다. 예멘에서 제주공항까지, 1만㎞가 넘는 긴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단 두 명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 ‘난민’에게 한국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그로부터 1년, 한국 사회는 ‘8000㎞를 날아온 낯선 질문’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시사IN>은 출도 제한이 풀려 각지로 흩어진 예멘인을 만나 그들의 1년을 돌아봤다.






장바구니에 토마토가 담겼다. 이어서 블루베리, 사과, 키위, 딸기, 포도가 추가됐다. 장바구니를 팔목에 건 채 모하메드 씨(34)가 말했다. “아들 함자에게 과일을 많이 먹이려고 해요. 아기들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다양하게 들어 있잖아요.” 무슬림이라고 해서 할랄 식품점만 찾지 않는다. 모하메드 씨만 해도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한 대형마트를 애용한다. 이곳의 채소와 과일이 “싸고 신선하고 맛있기” 때문이다. 계산을 마친 뒤 그는 카카오톡을 열어 아내가 사오라고 한 물품을 빠짐없이 구입했는지 확인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인 대다수가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세 식구는 제주도에 남았다. 모하메드 씨는 아내 리한 씨(29) 그리고 20개월 된 아들 함자와 서귀포시에 산다. 주방이 딸린 원룸에 세간은 단출하다. 가전제품은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정도다. 장롱 대신 행거를 사용하고, 이불을 여러 겹 쌓아 침대처럼 만들었다. 모하메드 씨가 일을 마치고 오면 부부는 저녁 8시 메카를 향해 네 번째 기도 ‘마그레브’를 올린다. 기도 시간은 5분 남짓이다. 그동안에도 함자는 방 안을 뛰어다니고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동요 영상을 본다.

ⓒ시사IN 이명익모하메드 씨(왼쪽)는 오만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리한 씨는 인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에 왔다. 지금은 서귀포시 남원읍에 살고 있다.
아들 함자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 이 가족은 남원읍에 오기까지 각각 1만1188㎞(모하메드), 1만916㎞(리한), 4269㎞(함자)를 이동했다.

모하메드 씨는 지난해 10월 남원읍의 감귤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며 감귤 박스를 옮겼다. 감귤이 한창 출하되던 기간에는 밤 12시까지도 연장근무를 했다. 지난 5월 라마단 기간이라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하다 보니 공장의 “삼촌, 이모, 선생님, 사장님, 친구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걱정되는지 ‘배고프지 않아? 두통 없어? 아프지 않아?’라고 계속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괜찮아요(웃음). 처음 하는 게 아니니까요. 무슬림들은 열 살쯤부터 라마단 금식을 시작해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요.”

부부의 고향은 예멘의 수도 사나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 살았다. 이웃집이었지만 왕래가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리한은 몰랐지만 리한네 집 앞을 지나다니며 그녀가 만드는 음식 냄새는 오래전부터 알았어요.” 결혼 적령기가 되자 집안 사이에 혼담이 오갔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모하메드 씨의 누나가 리한 씨네 집을 찾았다. 2015년 1월12일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이집트로 다녀왔다. 영문학을 전공한 모하메드 씨는 국영 항공사인 ‘예메니아 예멘항공’에서 수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내전이 본격화됐다. 예멘 내 모든 공항이 폐쇄됐다. 전쟁은 모하메드 씨의 직장을 앗아갔고 목숨까지 위협했다. 공습과 강제징집을 피해 다니던 그는 결국 예멘을 떠났다. 육로로 사막지대를 통과해 오만으로 갔다. 그곳에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1년 뒤 리한 씨도 인도 뭄바이를 거쳐 쿠알라룸푸르로 왔다. 이곳에서 아들 함자가 태어났다. 함자의 출생등록증 국적 칸에는 ‘예멘’, 시민권 칸에는 ‘Non-citizen (시민권 없음)’이라는 단어가 찍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난민으로서 신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2018년 5월15일 모하메드 가족은 제주행 에어아시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기용품을 마련해준 ‘한국 어머니’

가져온 돈은 빠르게 바닥났다. 5월 말이 되자 숙박비를 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숙소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올수록 부부는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 뒤면 아기를 데리고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는 ‘한국 어머니’가 된 권경애씨(53)를 만난 건 그때였다. 이주민 지원 기관인 나오미센터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된 그는 갈 곳 없는 예멘인 가족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함자를 위해 아기용품과 옷, 장난감도 마련해주었다. 감귤 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남원읍으로 이사할 때까지 모하메드 가족은 한국 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모하메드 씨는 3월부터 한국어 교실에 다니고 있다. 감귤 출하 시기가 끝나면서 퇴근 이후 시간 여유가 생겼다. 한국어 교실이 있는 제주시까지 화·목·일요일 일주일에 세 번 왕복 3시간 거리를 버스로 오간다. 5월19일 수업에는 예멘인 외에도 브라질인 5명이 함께 한국어를 배웠다. 제주도에 체류하는 예멘인 수가 줄고 덩달아 수업 참여자도 줄어들면서 지난해 7월 예멘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한국어 교실은 다른 국적의 외국인에게도 문을 열었다. 이날은 제주의 종교에 대해 공부했다. 유일신인 이슬람과 달리 제주에는 신이 많았다. 산도, 바다도, 나무도, 소도, 돌하르방도 신이 될 수 있었다. 리한 씨는 남원읍 이주민센터에서 수요일과 금요일 낮에 하는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리한 씨가 한국어 교실에 가는 동안에는 이웃집 할머니가 함자를 돌봐준다. 세 식구 중에 한국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사람은 아직 말도 떼지 못한 함자일지 모른다. “함자에게 말을 걸어보면 아랍어나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 알아듣는 것 같아요.”

올해 1월, 부부에게 새 생명이 움텄다. 임신 5개월째인 리한 씨는 가끔 자기도 모르게 한국말로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면 어린 함자는 머리에 손을 짚고 엄마를 따라 한다. “아이고.” 이내 리한 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진다. 모하메드 씨는 기대에 차서 말했다. “분명히 딸일 거예요. 함자는 여동생의 보디가드가 될 거예요.” 리한 씨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한국어 교실 교사들이 서둘러 건강보험 제도를 알아봤다. 올해부터 인도적 체류 허가자도 직장 및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원래 보험료(지역건강보험)는 11만5500원이지만 모하메드 가족은 30% 감면 지원을 받아 월 7만9450원을 낸다. 5월28일 부부는 제주시내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사진을 통해 태아의 눈과 귀, 다리, 손가락을 봤다. 아기와 엄마 모두 건강했다. 부부는 아기의 이름을 지어놓았다. 딸이면 마리암, 아들이면 일리아스 혹은 아흐야. 오는 10월 태어나는 이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무국적자로 살아가게 된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