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생이다. ‘군사정권’ 마지막 해인 1992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1년 뒤 ‘문민정부’ 시대가 열렸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변화는 혼돈과 함께 왔다. 변화의 실체를 두고 백가쟁명이 벌어졌다. 자칭 타칭 이론가들이 모여 있는 학생 운동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국의 강철대오’는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를 표방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한총련은 문민정부 정세를 고려한다며 ‘쇠파이프 길이’ 지침을 내린다. 폭력 시위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쇠파이프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다. 불가피할 경우 길이를 30㎝로 제한했다. 손목에서 팔목까지 길이로 옷소매에 넣으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한총련 하위 조직인 서총련에선 20㎝가 더 늘었다. ‘투쟁조’가 싸우기엔 너무 짧다며. 서총련 산하 북부총련에선 거기에 다시 20㎝, 내가 속한 북부총련 산하 학교에선 또 20㎝. 결국 내 손에 쥐여진 쇠파이프 길이는 똑같았다. 굳이 이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꺼낸 건 우문우답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현상의 실체에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하니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빈 공백을 세대 규정이 덮쳤다. ‘나, 트윈엑스 세대.’ 1993년 한 화장품 회사의 광고 카피에 X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 뒤 N세대, W세대, Z세대, M세대 심지어 ‘개새끼’로 규정하기도 했다. ‘꼰대 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20대를 설명하려는 말들이었다. 한두 가지 현상을 가지고 신조어를 만들었다. 따져보면 X세대와 M세대를 규정하는 근거가 엇비슷했다. 차이라면 모바일 사용 유(M세대)·무(X세대) 정도다. 이런 세대 프레임은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인 언론과 정치권에 유용한 도구다(전상진, 〈세대 게임〉).

세대 프레임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아주 단순화해버린다. 그런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고 싶었다. 지난겨울부터 천관율 기자는 ‘20대 남자 현상’을 화두로 삼았다. 20대 남자는 정말 보수화되었나? 정치인들 주장대로 이명박 정부 교육 탓인가? 현문현답. 데이터로 질문하고 데이터에서 답을 찾았다. 데이터에 일가견이 있는 천 기자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이 손을 잡았다.

이 기획은 몇 번 엎어질 뻔했다. 현상 자체에 대한 진단부터 도대체 어떻게 데이터를 수집할지 난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208개 질문을 던지는 초대형 설문을 완성했다. 이 조사를 근거로 아카데믹의 현미경과 저널리즘의 망원경으로 20대 남자 현상을 줌인했고 줌아웃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세대 프레임류 기사가 아니다. 이번 호(제604호)와 다음 호(제605호)에 연재되는 기사는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저널리즘과 아카데믹 연구의 콜라보다. 청와대 참모진, 정치인들부터 꼼꼼하게 읽을 것 같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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