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동네서점에서, 책 한잔
  • 송지혜 기자
  • 호수 537
  • 승인 2018.01.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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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동네서점 부흥기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책방으로 모여들고 주말에는 동네서점 투어를 한다. 독립출판물 제작자의 워크숍에 참여하는가 하면 글쓰기 강좌를 거쳐 직접 ‘작가’가 되기도 한다. 눈 밝은 동네서점 운영자들은 책과 콘텐츠를 결합한 문화기획자로서 ‘좋은 책’을 선별해 독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2017 행복한 책꽂이’에서 동네서점이 꼽은 ‘올해의 책’을 두루 살펴본 이유다.

동네서점은 전국에 몇 곳이나 될까. <여행자의 동네서점>을 펴낸 ‘동네서점’ 앱 개발사 퍼니플랜은 2015년 9월부터 2년여간 동네서점 현황을 모니터링했다. 이 기간 중 동네서점 277곳이 새로 문을 열었고 그중 20곳이 문을 닫았다. 기업형 체인서점을 제외한 수다. 현재 257곳 가운데 올해 상반기 동안 개점한 동네서점이 31곳에 이른다. 일주일에 한 개꼴로 문을 연 셈이다. 지금도 SNS에는 새로 창업한 서점 소식이 전해진다.

ⓒ시사IN 이명익서울 염리동의 동네서점 ‘퇴근길 책 한잔’
ⓒ시사IN 조남진서울 해 방촌의 ‘스토리지북앤필름’

동네서점의 가치는 경제성의 관점을 벗어나 운영자의 가치관을 운영에 반영하는 데 있다. 바로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큐레이션’이다. 이는 고스란히 서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퇴사’를 주제로 선정할 경우 ‘번아웃 사회’나 반노동·탈노동을 다루는 인문서를 묶어 소개할 수도 있지만, ‘욜로 라이프’를 다룬 취미서를 묶어 소개할 수도 있다. 운영자들은 신간이나 구간, 기성 출판물이나 독립출판물 구분 없이 심혈을 기울여 책을 고르고, 독자들은 그의 선별된 ‘감각’을 산다.

이들의 감각은 책을 선정하는 데서 공간을 꾸미고 활용하는 데로 나아간다. 동네서점의 큐레이션이 밥이라면, 독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독서모임, 저자와의 만남, 책 만들기 워크숍 등은 서점에서 함께 제공하는 다양한 반찬인 셈이다. 종전의 ‘서점’ 양식을 과감히 넘어서는 동네서점까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적인 서점’은 상담을 통해 책을 처방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고, 반려동물 도서만 취급하는 동네서점 ‘동반북스’도 생겼다. ‘힐링’ ‘위로’ 그리고 ‘고양이’는 동네서점이 꼽은 2017년 출판물 트렌드이기도 하다.

온전히 나만의 ‘감각’을 갖고 싶다는 갈증은 소비자를 생산자로 변화시켰다. 일상의 ‘지옥’을 견디며 ‘나도 서점 한번 차려볼까?’ 하는 바람이 문턱을 넘고 ‘동네서점 문화’를 만드는 데 이르렀다. 다시서점의 김경현 대표는 “‘불안정한 시기에는 문화적 의미가 더욱 명확하고 분명해진다’는 앤 스위들러의 말처럼 이전 정권하에서 문화적 의미를 갈급한 결과가 서점의 대두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열 권의 책을 1만 부 팔 수 있는 통로

결과적으로 도서 유통 활로가 다양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외받던 책들이 동네서점 운영자의 역량에 따라 물 위로 떠오르면서 대형 서점 광고 매대나 인터넷 서점 메인 페이지 광고 등 획일적으로 돌아가던 책 시장에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했다. ‘한 권의 책이 10만 부 팔리는 것보다, 열 권의 책이 1만 부 팔리는 게 좋은 사회(<소비를 그만두다> 더숲, 2015)’인 것처럼 열 권의 책을 1만 부씩 팔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다.

이런 방향은 출판물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독립출판물 제작자 김봉철·김종완·김현경이 쓴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는 출판물을 제작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 서점에 입고시키는 ‘책 같은 것을 만드는’ 세 명의 김씨가 쓴 서점 탐방기다. 최근 2년 사이 출간된 <같이 걸을까, 인문지도>(퍼니플랜), <우리, 독립책방>(북노마드) 등은 동네서점 이야기를 다룬다. 충북 괴산에서 ‘숲속작은책방’을 운영하는 백창화·김병록 부부가 쓴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에 실린 부록에는 2015년 당시 70여 곳 소개되었던 동네서점이 개정증보판(2017년 5월)에는 180여 곳이 실렸다. 가히 ‘열풍’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정도다.

ⓒ시사IN 조남진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
ⓒ시사IN 윤무영회원들의 독서 차트를 관리하는 맞춤형 책방 ‘사적인 서점’

‘나도 서점 한번 차려볼까?’처럼 ‘나도 책 한번 만들어볼까?’와 같은 질문도 빠르게 퍼져나간다. 기성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직접 완성하며 성취감을 얻는다. 이미지와 텍스트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SNS 노출이 자연스러운 밀레니얼 세대는 그래픽 툴이나 유튜브를 참조하면서 손쉽게 만들어낸다. 이들이 담아낸 독립출판물에는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유영한다.

응급실 간호사로 입사해 퇴사하기까지 5년간 일기를 담은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김채리 지음), 음악가 이내씨가 만난 장소와 사람들을 기록한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이내 지음, 소소문고×호랑이출판사),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 만든 <어느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 지음) 등은 문단의 심사를 벗어나 독립출판물의 힘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보여주는 책으로 평가받았다.

응급실 간호사로 입사해 퇴사하기 까지 5년간의일기를 담은 <나는내 가 아픈 줄도 모르고>(왼쪽)와
음악가 이내씨가 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 밖에>.

다양하게 추천받은 도서 목록 가운데, 중복 소개받은 2017년 동네서점 인기 도서인 독립출판물 <아무것도 할 수 있는>(김현경 지음)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울증을 겪은 저자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기성 출판물에서는 우울증이 심리서나 의학 전문서로만 다뤄졌다. 김현경씨는 “기성 출판물로 내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했다. 출판사를 찾아가는 대신 일러스트를 도와줄 친구, 인터뷰를 도와줄 친구들을 모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까닭인지 “책을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제작비를 투자받고 우울증을 겪은 필자를 모집했다. 1쇄를 찍는 데 400여 명이 600여만원을 모아주었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 ‘warm gray and blue’를 만들었다. 김씨가 대표이며, 김씨가 만든 책을 내는 곳이다. 직원은 없다. 친구 황혜민씨가 도서관에서 빌린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며 교정·교열을 했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동네서점에 직접 입고 신청을 하고 택배를 보내며 판매한 책은 1년 동안 4000부를 넘어섰다. 기성 출판물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폭발력이다.

ⓒ시사IN 신선영<아무것도할수있는>을 쓴 김현경 작가가 운영 중인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동네서점 ‘51페이지’.

그녀는 지난 11월부터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동네서점 ‘51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동네서점을 좋아하는 김씨는 51페이지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아예 팔을 걷어붙였다. 다음 책방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51페이지를 꾸려볼 생각이다. 독립출판물 제작자와 동네서점이 하나로 온전히 겹쳐졌다.

‘독립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는 최유수씨는 그저 책을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기성 출판사의 출판 제의를 받고 미팅을 한 적도 있지만 큰 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작가는 책이 나온 후 글에 대해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재미를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온전히 책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낀다. 직접 만든 책 즉 ‘물건’을 손에 쥐는 게 좋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글을 쓰고 내보이는 것보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기성 출판사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작가’라는 정체성도 그에게는 거의 없다.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드는 기획자”가 최씨가 설명한 자기 정체성이다. ‘오랜 시간 써둔 글을 하나로 모아 압축된 내용을 머리말로 삼고, 머리말의 주제를 제목으로 뽑았더니 ‘결국 책이 되었더라’는 설명이 적합하다.

그가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가진 2015년은 ‘동네서점’ ‘독립출판’ 같은 키워드가 막 생겨나던 시점이었다. 그해 5월 독립출판물 <사랑의 몽타주>와 이듬해 3월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동네서점에 입고 문의를 하고 직접 택배를 발송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기에 300부, 500부씩 찍어내던 것을, 최근에는 1000부 넘게 찍었다.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는 8쇄를 넘겼고, 두 작품은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을 거치지 않고도 총 1만 부 이상 팔았다.

독립출판물과 동네서점은 단짝 친구

눈 밝은 기획자들은 독립출판계의 태동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매거진 <킨포크>를 만드는 출판사 디자인이음은 동네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추천을 받아 대표적인 독립출판물 전작 시리즈를 구성했다. 지난 7월에 나온 ‘청춘문고(10종)’가 그것이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게 해 독립출판물의 접근성을 높였고, 일반 독자에게 편안히 다가가고자 한다. 최유수 작가의 두 작품은 청춘문고 시리즈의 처음과 두 번째 테마에 이름을 올렸다.

동네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추천을 받아 디자인이음이 제작한 독립출판물 시리즈 ‘청춘문고’.

서상민 디자인이음 편집장은 “독립출판물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면서 독립출판물의 다양한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했다. 사랑의 시를 담거나 일상적인 행동을 살인에 비유하는 독특한 작품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유수 작가의 작품 외에도 여러 동네서점의 인기 도서로 추천받은 김은비 작가의 <꽃같거나 좆같거나>는 청춘문고 시리즈 네 번째 테마에 이름을 올렸다. 청춘문고는 ‘작고 예쁜’ 몸집과 가벼운 글감으로 ‘컬렉션 형식의 소장용 책’이었던 올해 출판물 트렌드를 선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청춘문고’의 사례처럼 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은 서서히 경계를 허문다. ‘쏜살문고(민음사)’의 경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리커버’해 동네서점에서만 살 수 있도록 했고, 이는 동네서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올 만큼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독립출판물 역시, ‘완성도만 높으면’ 기성 출판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애초 독립출판물로 제작되었던 <순간의 나와 영원의 당신>(손현녕 지음, 빌리버튼 펴냄)은 ‘아는 사람은 아는’ 책으로 입소문을 타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독립출판물은 1인 출판일 뿐(최유수 작가)”이라는 말이나 “독립출판물이 기성 출판물의 ‘미래’(서상민 디자인이음 편집장)”라는 말을 허투루 듣기 어려운 이유다. 2017년 한 해 두드러진 동네서점의 진화와 독립출판물의 성과는 결국 ‘책을 판다’는 관점을 넘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실현하고 세상에 내보인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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