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지금, 질병의 흔적은 엑스레이뿐 아니라 삶 곳곳에 묻어난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니 전에 하지 않던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꼭 낀다. 보온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주변 사람이 며칠 동안 기침을 하면 서둘러 결핵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를 만나면 요즘 무슨 책이 잘 나가느냐고 묻던 분들도, 이제는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먼저 건넨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인사가 점점 익숙해지자,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다고 답하며 다음 대화로 이어가지만, 그러고 나면 내 몸이 정말 다 나은 건지, 나는 이제 괜찮은 건지 걱정이 시작된다. 질환과 질병, 치료와 치유 같은 엇비슷한 말들의 차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나와 같은 병을 앓은 사람들, 같은 병이 아니라도 아픔을 겪은 사람들, 더불어 언젠가 아무 이유도 없이 아픔을 겪을 수도 있고, 삶 속에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내가 아프기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에 바로 이 책이 있었다. 저자는 심장마비와 암을 차례로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질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그렇기에 질병의 회복 못지않게 질병을 통해 새롭게 되는 삶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나의 질병 경험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회복 사회, 즉 ‘계속 회복 중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라는 게 특별한 이야기겠다. 아픔은 “우리를 인간으로서 하나로 묶는 경험의 핵심”이니, “사회는 아픈 사람의 고통을 인간의 공통적인 조건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커다란 사회적 아픔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이기에, 더욱 세심하게 “질병을 축하할 수 있는 말들”을 찾아 서로 나누며,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발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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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게 많은’ 세상으로
‘사랑할 게 많은’ 세상으로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저자)
“산다는 건 백만 사천이백팔십아홉 가지의 멋진 일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에요.” 한국의 어린이에게 이런 문장을 주어도 될까. 첫 줄을 읽었을 때 든 걱정은 똥푸맨의 ‘또옹또옹’ 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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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어, 깨달음은 고마웠어
잘 읽었어, 깨달음은 고마웠어
김탁환 (소설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자유롭게 뛰노는 고래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른 뒤, 곧장 항구로 돌아와 식당에서 고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잘 있어, 생선은 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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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띄우는 편지
미래로 띄우는 편지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때로는 표지보다는 띠지가, 제목보다는 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대개 컨텍스트가 텍스트를 압도하기 마련이다. 해직 5년 만에 복귀해서 MBC 파업의 상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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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이라는 서사시
장기이식이라는 서사시
박혜진 (문학평론가·문학편집자)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장기이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을 의학적·심리적·철학적·문학적으로 재구성한 한 편의 훌륭한 서사시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디테일은 장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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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동네서점에서, 책 한잔
퇴근길 동네서점에서, 책 한잔
송지혜 기자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동네서점 부흥기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책방으로 모여들고 주말에는 동네서점 투어를 한다. 독립출판물 제작자의 워크숍에 참여하는가 하면 글쓰기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