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감기 몸살을 크게 앓았다.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고 점점 숨을 쉬기 힘들어져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한쪽 가슴이 뿌옇다. 이물질이 차올라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수술대에 올라 옆구리에 관을 꽂아야 했다. 입원을 처음 해본 데다 이름 뒤에 ‘환자’까지 따라붙으니 영 어색했고, 나와 환자로서의 나가 분리되어 전자가 후자를 확인하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듯했다. 진료실로 내려갔더니 내가 결핵이란다. 자세한 설명은 결핵 상담사가 전해주었는데, 가족과 직장 동료도 검사를 받아야 하고 나는 1인 격리 병실에서 지내야 하며 최소 6개월에 걸쳐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국가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정확하고도 친절한 안내였다. 모든 상황을 확인하고 병실로 돌아오는데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모든 일이 꿈만 같다.

1년이 지난 지금, 질병의 흔적은 엑스레이뿐 아니라 삶 곳곳에 묻어난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니 전에 하지 않던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꼭 낀다. 보온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주변 사람이 며칠 동안 기침을 하면 서둘러 결핵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를 만나면 요즘 무슨 책이 잘 나가느냐고 묻던 분들도, 이제는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먼저 건넨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인사가 점점 익숙해지자,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다고 답하며 다음 대화로 이어가지만, 그러고 나면 내 몸이 정말 다 나은 건지, 나는 이제 괜찮은 건지 걱정이 시작된다. 질환과 질병, 치료와 치유 같은 엇비슷한 말들의 차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나와 같은 병을 앓은 사람들, 같은 병이 아니라도 아픔을 겪은 사람들, 더불어 언젠가 아무 이유도 없이 아

〈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봄날의책 펴냄
픔을 겪을 수도 있고, 삶 속에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내가 아프기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에 바로 이 책이 있었다. 저자는 심장마비와 암을 차례로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질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그렇기에 질병의 회복 못지않게 질병을 통해 새롭게 되는 삶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나의 질병 경험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회복 사회, 즉 ‘계속 회복 중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라는 게 특별한 이야기겠다. 아픔은 “우리를 인간으로서 하나로 묶는 경험의 핵심”이니, “사회는 아픈 사람의 고통을 인간의 공통적인 조건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커다란 사회적 아픔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이기에, 더욱 세심하게 “질병을 축하할 수 있는 말들”을 찾아 서로 나누며,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발견해야겠다.

기자명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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