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우리는 추운 광장에서 촛불의 힘으로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을 탄핵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분노와 갈망, 용기와 열정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광장의 함성은 권력을 탄핵하고 정권을 바꾸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그간 소홀히 다루어졌거나 해결이 지연되었던 과제들을 한꺼번에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데 이들 과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은 아직 완전히 꺼졌다고 할 수 없다. 이제 지난겨울의 촛불은 광장을 넘어 일상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광장의 에너지는 생활 민주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원〉 저자인 에릭 리우 또한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는 정원이고, 시민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다. 훌륭한 정원사는 자신의 영향력과 의무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식하며, 나쁜 것을 솎아내고 좋은 것을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일상 정치의 중요성이다.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태도로 사회를 내버려두면 사회는 방치된 정원과 마찬가지로 잡초가 무성해지고 영양분이 고갈되어 결국에는 망가져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정원을 가꾸듯 사회를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지음김문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에릭 리우는 정부 또한 요령 있는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령 있는 정부란 보수에서 말하는 큰 정부도 아니고, 진보에서 말하는 작은 정부도 아니다. 위대한 국가적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는 강하게, 그러한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에서는 약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역할을 ‘빅 왓, 스몰 하우(Big What, Small How)’라는 말로 개념화하고 있다. 정원사는 넝쿨에게 담장을 타도록 시키거나 장미가 저절로 피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채소를 심을지 꽃을 심을지 결정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씨앗을 심는다. 필요한 토마토와 불필요한 잡초 사이에서 무엇이 제대로 자라고 무엇이 잘못 자라고 있는지 구분해냄으로써 정원을 더욱 울창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정원〉은 좌우라는 제한적인 선택을 벗어나 ‘정원형 지성’이라는 새로운 공적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 ‘정원형 지성’은 우리 사회를 얽히고설킨 하나의 생태계로 본다. 지난겨울 훌륭한 씨앗을 뿌렸으면 이제는 김을 매고 잘 가꿔나가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뿌린 대로 거두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자명 박원순 (서울시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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