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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수빅조선소에도 희망버스 있었다

필리핀에서도 ‘희망버스’가 달렸다.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산재 방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자가 현장을 찾았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1년 07월 18일 월요일 제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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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글  김은지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아들이 죽었다. 채 100일이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저녁 6시쯤 되면 아들이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다. 저녁 7시가 지나고, 8시가 다 되면 세실리야 씨(46)는 소름이 돋는다. 더 이상 아무도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머리카락 끝이 쭈뼛 선다. 날마다 땀에 젖은 채 들어온 아들의 ‘소금꽃’ 작업복을 빠는 기쁨은 더 이상 없다. 낯선 이에게 아들의 죽음을 말하다 결국 세실리야 씨는 눈물을 보였다. 이야기 내내 양손에 쥔 아들의 사진을 끌어안았다. 흐느끼는 그녀의 뒤로 ‘The family that prays together stays toge-ther(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함께한다)’라는 팻말이 보였다.


   
ⓒ시사IN 조남진
7월3일 ‘필리핀판 희망버스’ 집회(사진)는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회(SAMAHAN) 사무실 앞에서 횃불 집회로 마무리되었다.


‘킬링필드’라 불리는 한진 수빅조선소


아들 앤디 베르나르디노 씨(21)는 열세 살 때부터 거리에서 좌판을 들고 가장 노릇을 했다. 앤디는 정신지체가 있는 세 살 터울 여동생을 학교에 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안의 기둥 노릇을 했다. 그런 그가 2008년 한진 수빅조선소에 입사했다. 2006년부터 잇따른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서 이곳이 ‘킬링필드’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평불만을 잘 내색하지 않던 앤디가 집에서 회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 상급자가 ‘ppali ppali sekya’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집안이 평화롭던 시절이었다.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4월15일 앤디가 작업 중 전기 패널에 머리를 부딪혔다. 닷새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진은 빠르게 대처했다. 사고 당시 병원비부터 장례비까지 20만 페소(약 500만원)를 지원했다. 한진은 사내 조사 결과 앤디 씨가 안전모 끈을 잠그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반면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회(SAMAHAN) 주장은 달랐다. 회사 측이 안전 의무를 다 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시사IN 조남진
셸터 사이에 끼여 수술을 네 번이나 받은 로날드 안소니 씨.


남편이 다쳤다. 골반 뼈가 부러지고, 대장이 튀어나왔다. 직장과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기저귀를 차고 튜브 두 개를 꽂았다. 하반신 전체가 망가졌다. 한진 수빅조선소 시설장비 부서에서 일하던 남편 로날드 안소니 씨(36·가명)가 다친 것은 지난 6월2일이었다. 경고등을 확인하는 일을 하던 안소니 씨가 건너편에서 움직여온 셸터(이동식 가건물)에 몸이 끼였다. 의사로부터 살아난 게 기적이라는 말을 들은 남편은 네 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한진은 개인 부주의를 사고의 주원인으로 꼽지만 아내 라에나 베스 씨(32·가명)는 “남편은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평상시 회사에서 높이 올라가 뭘 하라고 지시해도 자식 둘이 있다며 하지 않던 사람이다”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안소니 씨는 말을 아꼈다. 병원비를 한진이 내는 처지에 혹시 회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그를 만나고 있을 때 병원 경비가 병실에 들어와 “미안하다. (한진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어쩔 수 없다”라며 병원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자 안소니 씨는 “무섭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시사IN 조남진
산재로 숨진 아들 사진을 끌어 앉고 흐느끼는 세실리야 씨.
‘Graveyard(묘지).’ 한때 한진 수빅조선소의 별명이 묘지였다는 사실을 한진 관계자도 인정할 만큼 수빅조선소는 산재 피해로 악명이 높았다. 잇단 사망 사건으로 2009년 국회 청문회까지 출석했던 수빅조선소가 필리핀 사회에서 다시 주목되고 있다.

여기에 종교계와 정치계까지 목소리를 보태면서 수빅조선소는 다시 필리핀의 뜨거운 감자가 될 모양새다. 7월3일에는 이동차 시위(caravan protest)가 있었다. 필리핀 주교회의 사회행동정의평화사무국 위원장 파비요 주교를 비롯해 국제건설목공노련(BWI), 필리핀 사회단체 마카바얀(Makabayan) 등에서 온 300명이 각양각색의 차에 올라타 마닐라에서 수빅조선소로 향했다. 지프니(미군이 쓰던 지프차를 개조한 미니 버스)부터 40인승 관광버스, 트럭 등 25대가 일렬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필리핀판 희망버스’가 등장한 셈이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한진 노동자를 위한 정의(Justice for Hanjin workers).’


희망버스 메시지는 ‘한진 노동자 위한 정의’


32℃를 웃도는 날씨에 후끈한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트럭 뒤쪽에 앉은 대학생 엘머 아리스가도 씨(21)는 “한진은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나도 미래에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라며 시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프레시 다굿 마카바얀 사무국장은 “한진은 안전관리에 힘쓰지 않고, 필리핀 사람들을 막 대한다. 한국인 상사가 때리기도 한다. 심지어 밥에서 벌레가 나온 적도 있다”라며 한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수빅조선소 노동자는 한진에서 주는 밥과 반찬을 봉지에 담아 들고 나왔다. 부실한 식단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의미였다. 이동차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필리핀 수빅으로 온 한진 영도조선소 해고노동자 김경춘씨(49)는 이를 보고 1986년을 떠올렸다. 영도조선소에서도 도시락 거부 투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말마따나 ‘쥐가 우글거리는 현장에서 새까만 꽁보리밥을 냄새 나는 공업용수에 말아서 후루룩 삼키던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충이 필리핀에서 반복되는 것 같다.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갔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진은 “과거에 관리상의 문제로 음식에 벌레가 나왔던 적은 있었다. 지금은 질이 개선되었다. 보통 필리핀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더 잘 준다”라고 주장한다.


   
ⓒ시사IN 조남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리해고자 김경춘씨(맨 오른쪽)는 7월5일 수빅조선소 출근 시간에 맞춰 시위를 벌였다.


직접 고용도 화두였다. 수빅 현장에서 이동차 시위에 결합한 수빅조선소 노동자들은 기자를 보자마자 너도 나도 다가와 유니폼 왼쪽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가리켰다. ‘Finback’ ‘EAMBANAS’와 같이 각기 다른 회사명이 새겨져 있었다. 하도급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현재 수빅조선소는 직접 고용된 필리핀 노동자가 한 명도 없다. 수빅 해고노동자 로이 살라곤 씨(38)는 “회사는 필요할 때는 우리를 한진 직원이라 하고,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우리를 하도급 업체 직원이라고 한다. 직접 고용을 하지 않으면서 회사 편의대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해고를 남발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팔리팔리” “새퀴야” “시파로마”

집회 다음 날, 수빅조선소 인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찾았다. 그들은 대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출신이다. 일자리를 찾아 타향살이를 하는 그들은 한곳에 집을 마련해 합숙을 했다. 10㎡(약 3평) 남짓한 방 한 칸에 남자 6명이 살았다. 그렇게 방 여섯 칸이 한지붕 아래 있었다. 이층 침대 세 개와 작은 부엌이 전부인 방 천장에는 빨래가 걸려 있었다. 선풍기나 창문 따위는 없었다. 하나뿐인 출입문을 활짝 열어두었지만 눅눅함이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의 거처를 ‘바랑가이 빌랑고’라고 불렀다. 감옥 마을을 뜻하는 타갈로그어다.


   
 


이곳에서는 “팔리팔리”가 가장 유명한 한국말이다. 죽은 앤디 베르날디노 씨가 늘 들었다는 그 말이다. “새퀴야” “시파로마”도 이에 못지않게 많이 알려진 단어다. 10명 정도 모인 필리핀 수빅 노동자들에게 아는 한국말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너, 새퀴야, 팔리팔리”라는 합창이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 관리자가 자주 써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랜디 비니티라오 씨(23·용접공)도 한국인 상사에게 일상적으로 “새퀴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주 듣는 말이라 자신도 똑같이 상사에게 썼다가 혼난 적이 있다. 그때 비니티라오 씨는 “새퀴야”가 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토니 다톨 바윈 씨(32)는 기자에게 “또라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2년 동안 수빅에 근무하면서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해, 하루 쉬겠다고 한국인 상사에게 말했다가 들은 대답이었다.

유행하는 한국 노래도 있다. ‘진짜 사나이’ 같은 군가였다. 스텝을 앞뒤로 밟으며 박수를 치는 에데손 부엘야 씨(26)는 “잘 쌀아보쎄 잘 쌀아보세~”를 흥얼거렸다. 아침마다 일 시작 전에 한진중공업에서 하는 운동이었다. 동작이 틀릴 때마다 벌칙으로 PT 체조를 하다보니, 노래와 동작을 다 외우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들은 한국인이 필리핀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한 방의 문에는 ‘Fuck the Korean’이라고 흰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언어폭력만이 아니다. 아베조 제니퍼 씨(29)는 한국인의 부당 대우를 말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내보였다. 바늘로 세 번 꿰맨 자국이었다. 지난 5월, 한국인 관리자가 던진 공업용 가위가 낸 상처였다. 비품을 가지러 다른 작업장에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고 당한 일이었다. 평상시 친절하지만 화가 나면 뭐든지 던지기로 유명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은 툭하면 필리핀 노동자를 무시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7월3일 ‘필리핀판 희망버스’가 마닐라에서 수빅만으로 출발했다.
“회사 측이 63명 불법 해고했다”


사안마다 노사의 주장이 충돌하다보니 갈등도 빈번하다.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회는 회사가 63명을 불법 해고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법원으로 간 노동 분쟁도 29건이다. 해고로 인한 노사 갈등은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용접공 벤자민 아베니스 씨(25)도 해고노동자 사내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6월17일 해고되었다.

당시 심경을 묻자 아베니스 씨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말없이 눈물부터 흘렸다. 까만 피부에 하얀 눈이 반짝였다. 엄마 무릎에 앉아 있던 세 살배기 아들은 엄마 얼굴을 힐끗 쳐다보곤 품에 안겼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정작 아베니스 씨는 담담했다. 그는 “노조 활동으로 아내와 많이 다퉜다. 해고까지 당해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한진의 나쁜 대우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관리자는 늘 그에게 욕을 했다. 동료들은 곧잘 다쳤고, 죽음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2008년 한진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고 고향 팡가시난에서 여섯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수빅으로 향할 때 들었던 이야기와 현실은 딴판이었다.

그래서 항의를 했다. 방법은 ‘소리 집회(noise barrage:필리핀의 일반적 시위 방식 중 하나)’였다. 점심시간에 숟가락으로 식판을 두들겼다. 돌아온 건 해고였다. 눈물을 멈춘 아내는 어렵게 입을 뗐다. 아내는 3.3㎡(1평) 집의 월세를 걱정했다. 이번 달은 동료들이 보태줬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는 대책이 없다. 그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다른 해고노동자도 삶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초기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회 위원장을 지냈던 또 다른 해고자 조이 곤잘레스 씨(28)는 지금도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내가 겪은 일은 수빅 한진 조선소에 있는 필리핀 노동자 누구에게나 일어난 일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 우리의 문제다. 끝까지 싸워서 한진의 문제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금꽃’들이 필리핀에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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