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오르던 진보 의사가 의협 선거에 출마한 이유 김연희 기자 2월28일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한국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보는 의견은 74%, 의대 정원 확대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68%였다. 의료 대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의료계 책임이 더 크다’는 답변이 50%로, ‘정부 책임이 더 크다(18%)’는 응답을 훌쩍 웃돌았다. 2020년 8~9월 의사 집단행동 당시보다 의사들의 책임을 묻는 여론은 6%포인트 더 높아졌다.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직후 의료계는 대규모 반대행동에 나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론 지형에서 고립되고 있다.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아니라 ‘대중 영화감독’이고 싶어 나경희 기자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76)은 줄곧 겸연쩍어했다. “10년 전에도 기자가 인터뷰하자고 해서 30주년인 줄 알았다. 40주년도 꼭 기념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걱정과 의심이 교차했다. “왠지 ‘회고전’이라고 하면 은퇴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데다 과연 내가 회고전을 열 만큼 대단한 감독인가 싶기도 해서”다.주위에서 등을 떠밀었다. 지난 9월6~14일 서울 아트나인에서는 ‘정지영 감독 40주년 회고전’이 열렸다. 그의 대표작 여섯 편이 상영됐다. 10월18일 영국에서 개막하는 제8회 런던 아시아영화제에서도 그의 40주년 작은 절간이 야단법석이다,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서 남원/글 이오성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왜 그럴 때 있잖은가. 반복되는 일상에 넌덜머리가 나거나, 아무리 공들여 일해도 뭐에 씐 것처럼 번번이 엎어지거나,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처절하게 나가 떨어질 때. 그럴 때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대다 생각한다.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 활동가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발 딛고 선 하루하루가 각박하다. 쉴 곳도, 숨을 곳도 별로 없다. 밀려드는 일, 동지들끼리 쌓여가는 갈등, 전망이 보이지 않는 매일이 발목을 잡는다. 휴식은 언감생심. 어려운 이들을 위해 복무해야 한 마침내 복직한 김진숙, 그가 37년간 싸운 이유 부산·나경희 기자 37년 동안 달고 산 통증이 사라졌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년퇴직자가 사진을 찍는 기념비 앞에 설 때도 그랬다. 이튿날에야 몸이 가벼워진 걸 깨달았다. “원래 통증 때문에 깨거든요. 근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까 그냥, 기분이 확 좋은 거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하 호칭 생략)이 웃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용접 불똥이 튄 상처가 남아 있었다.1981년 7월, 그는 ‘대한조선공사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일터에는 식당도 화장실도 없었다. “먹고 쌀 공간만이라도 만 사진은 발명되자마자 죽음을 찍었다 노순택 (사진가) 살다 보면, 뇌리에 박혀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몇 장의 사진을 만난다.다섯 장을 짚으라면 나는 1991년 봄 안기부에 연행됐다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의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경찰이 장례식장 벽을 부수고 등장하는 사진과 이듬해 가을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에게 벌거벗겨진 채 잔인하게 살해된 윤금이의 주검 사진을 빼놓지 못할 것이다.똑같은 사진일지라도, 그것을 내놓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바라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날아와 박힌다. 우리 사회의 그림자에 눈뜨기 시작한 20대의 내게 그 사진들은 앞으로 우리가 모르는 ‘지하철의 노동’, 카메라로 기록하다 이상원 기자 영화 〈언더그라운드〉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경쾌한 리듬도 구슬픈 곡조도 깔리지 않는다. 쇠를 긁고 철문을 들어 올리며 기계를 삐걱대는 소리만 들린다. 관객 대부분에게 낯선 소리, 일상에서 접하면 자리를 뜨게 하는 소리이다. 하지만 영화 속 ‘소음’은 끈질기게 관객을 따라붙는다. 밀폐된 지하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조금 익숙해질 때쯤, 매일 이 소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무심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8월1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김정근 감독은 전작 〈버스를 타라〉(2012) 기자들의 시선 -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이오성 기자 이 주의 역사 11991년 4월26일 명지대학교 학생이던 강경대씨가 백골단의 쇠파이프 구타로 사망했다. 학내에서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및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를 하는 도중에 벌어진 일이다.이틀 전인 4월24일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은 상명여대의 학원자주화 집회에 참석해 지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연행됐다. 이에 명지대 학생들은 즉각 총학생회장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압했다.강경대씨는 4월26일 아침 학교로 가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학교에 가서 공부 열심히 집회의 맨 앞, 세상의 맨 뒤에 그가 들고 온 흙 한 줌 송지혜 기자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씨(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구술을 정리했다.1991년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사지에 밀어 넣은 게 우리였나, 죄책감에 숨죽여 울던 날이었다. 장례위원장이었던 백기완 선생님은 ‘안기부의 공작이고 군사정권의 노동자 말살 정책이다. 국가 폭력이다’라며 이 죽음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백 선생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오래까지 투쟁하지 못했을 것이다.지난해 6월,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 투쟁’을 시작할 즈음에도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투쟁이었다면 100이면 10 LG트윈타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송지혜 기자 출입은 통제되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에는 사방이 경비로 둘러막혀 있었다. 동관, 서관, 지하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뿐만 아니라 주차장에서까지 건장한 20대 남성 경비가 출입 이유를 묻고 사원증 제시를 요구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통행이 자유로운 건물이었다. 1월11일 사흘째 방문한 끝에 “(지하에 있는) LG유플러스 대리점에 방문한다”라고 둘러대고서야 로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비 수십 명이 기자의 움직임을 살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어디론가 전송했다. 자동으로 몸이 긴장됐다.같은 날 오전 11시30분, LG그 ‘학대 방치한 경찰관들을 파면해달라’ 청원 송지혜 기자 이 주의 국민청원정인 양은 생후 7개월 무렵인 2020년 1월 양부모에게 입양됐다가 271일 만에 사망했다. 검찰 조사 결과, 정인 양은 지속적인 학대를 당해 의심 신고도 세 차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인 양이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는 동안 이를 방치한 경찰관들을 파면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1월4일 청원인은 ‘국가기관이 아동학대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묵인하고 방조했다. 신고의무자가 제출한 수많은 증거와 소아과 전문의의 강력한 수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력화시켰다. 그 책임의 대가를 묻고 싶다’라고 썼다. 청원은 〈2020 올해의 사진〉 김진숙이 안은 김진숙 사진 신선영, 이명익·글 은유(작가) 김진숙이 김진숙을 안고 있습니다. 예순한 살 해고노동자는 환하게 웃는데, 스물한 살 용접공은 표정이 어둡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노동운동하기 전에는 웃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요.” 쥐똥 섞인 도시락을 먹고 퍽퍽 떨어져 죽는 ‘아저씨들’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존엄과 웃음을 되찾았지만, 일자리는 빼앗겼습니다.사측은 다른 노동자들을 복직시키면서 늘 단서를 붙였습니다. “김진숙만 빼고.” 35년을 반복합니다. 35년간 작업복을 고이 개켜둔 그가 복직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가 싸우면 같이 싸우고 그가 웃 김진숙, “내 목숨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부산·송지혜 기자 12월9일 새벽 6시30분,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부산 영도의 바닷바람에 ‘한진중공업’ 깃발이 휘날렸다. 부산 각지에서 온 통근버스 수십 대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멈췄다. 노동자 수백 명이 공장 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정문 앞에는 조선소 벽을 따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50여 명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백발이 된 60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20대 김진숙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림에는 ‘돌아가야 한다, 기어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전 7시35분 NC 다이노스의 우승 김연희 기자 이 주의 실수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임상 3상 중간평가에서 효능 70%를 보였다고 11월22일 밝혔다. 용량을 서로 다르게 투여한 1그룹(2700명)과 2그룹(9000명)에서 각각 90%와 62% 효능을 보여 70%라는 수치가 나왔다고. 이처럼 특이하게 임상 3상을 설계한 이유가 궁금증을 불러 모았으나, 알고 보니 단순 실수였다. 이 백신은 두 번 맞아야 하는데 착오로 초기 참가자들은 1회 접종에서 원래보다 절반인 용량을 맞게 된 것. 제약사로서는 ‘뜻밖의 발견’이지 기자들의 시선 전혜원 기자 이 주의 논쟁전통 가톨릭이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보호를 인정하는 시대가 시작될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2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봉한 영화 〈프란치스코〉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시민결합법’이다. 이는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 영화 제작자 예브게니 아피네옙스키와 인터뷰하면서 “동성애자들은 신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 누구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직 교황으로부터 나온 가장 전향적인 발언이다. 2013년 노조 파괴 ‘매뉴얼’대로? 노동권 존중 ‘헌법’대로!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우리 문제는 죽어야만 이슈가 되는 겁니까.” ‘손잡고’라는 단체의 활동가로서 처음 한 일은, 파업한 노동자가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에 직면하는 현실을 해결하자며 2014년 시작된 시민모금 ‘노란봉투 캠페인’ 기금을 배분하는 일이었다. 그때 손배 가압류 당사자들을 처음 만났고, 이 문제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끝까지 기금 수령을 거부했던 한 노동자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히 가슴에 남았다. 이 노동자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어 처음으로 노동권을 행사했는데, 권리행사로 한 첫 요구가 ‘안전’과 ‘근로기준법 준수’였 아 아~ 아, 골리앗이여 한진중공업 깃발이여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그날은 야간 근무였다. 아침에야 퇴근했고 오후 2시쯤에는 잠을 자고 있었다. 급하게 아내가 깨웠다. 텔레비전 뉴스 자막으로 어떤 이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2003년 10월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화면만 봤다. 그해는 노동자들의 자결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며칠 동안 근조 리본을 단 노조 간부 하나 볼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결의를 포함한 투쟁을 준비하면서 각 기업 노조의 의견을 듣는 중이었다. 쌍용차 또한 입장을 내야 했고 대의원들의 의견 시사IN 제 672호 - 누가 먼저 맞아야 하나 이종태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와의 수다·기사 후~폭풍·퀴즈 말말말 이 주의 그래픽 뉴스 기자들의 시선 포토IN/ 사라진 갯벌이지만 또다시 SOSCOVER STORY IN안갯속 코로나19 백신, 미리 알아야 할 것들 전체적인 백신 프로세스에서 ‘개발’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은 누가 먼저 접종해야 하는지, 접종 이후엔 어떤 단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키워두어야 한다. 백신 개발 이후에 품게 될 의문을 정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공재’ 백신 가로채기ISSUE IN 부동산 문제, 어떻게 풀 41년을 일하고 수십억 빚이 쌓인 사람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에서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에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자 단결과 승리가 이 통찰에서 나왔다고 적었다. 경영진이 경영을 제대로 못하고 무책임하게 떨어져 나간 자리, 이 일터를 단단히 지킨 건 배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한진중공업에서 정년을 맞이한 노동자 차해도씨를 만난 적이 있다. 18세에 배를 만들기 시작한 차해도는 이후 41년10개월을 일했다. 그를 만난 이유가 온전히 정년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축하는 잠깐이었다. 정년이 되어도 그에게 착 붙어 인간다운 밥, 회사 식당 밥 신선영 기자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1986년 노조 대의원이 된 후 끌려간 대공분실 붉은 방에서 외쳤다던 그 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 울려 퍼졌다. 1981년 유일한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던 스물한 살의 김진숙(60)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하얗게 센 머리가 높아진 시멘트 담장 아래서 반짝였다.35년 만의 복직 투쟁을 알리는 6월23일 기자회견에는 긴 세월 그가 어깨를 내어주던 이들이 자리했다. 복직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KTX 전 승무원들이었다.복직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 연대하고 연대하는 빛나는 사람으로 살길…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걸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던 2011년 7월이었다. ‘희망버스’라는 운동이 시작됐고 우리 또한 해고 노동자로서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진정성이었다. 허투루 내뱉는 말 한마디 없는 사람의 행동은 때론 무서운 법이다. 동료들을 설득하며 평택에서 부산까지 9일 동안 400㎞ 넘게 무작정 걸었다. 오십 줄이 넘어 반백이 돼버린 해고자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여름 장맛비를 뚫고 부산을 향해 걷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