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사기 조직의 2인자 강태용이 지난 10월10일 중국 쑤저우에서 전격 체포된 뒤 조희팔 사건 재수사가 급물살을 타자 조희팔의 조카 유 아무개씨(47)가 10월20일 자살했다. 조희팔 누나의 아들인 유씨는 2008년 12월9일 조희팔의 밀항선이 서해 공해상에서 충남 태안해경이 찍어준 좌표를 따라 중국으로 넘어갈 당시 중국에서 30t급 밀항선을 직접 몰고 서쪽 공해로 나와 조희팔을 넘겨받은 후 무사히 웨이하이로 도피시킨 인물이다. 이듬해 귀국해 경찰에 자수한 유씨는 밀항방조죄로 1년을 복역한 뒤 2010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조희팔의 은신처에서 함께 생활했다.
유씨는 2011년 12월19일 조희팔의 ‘위장사망 의혹’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가족 대표로 조희팔의 부인과 아들 등을 중국으로 불러들여 장례식 동영상을 찍었고, 화장한 유골을 본인이 직접 들고 들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희팔 도피와 위장사망 의혹에 깊이 개입해 조희팔 미스터리를 풀 핵심 인물로 여겨진 유씨가 돌연 자살하면서 그 배경과 원인을 두고 의혹이 꼬리를 문다.
〈시사IN〉이 지난 2개월 동안 강태용의 중국 내 은신처 파악과 한·중 수사기관의 체포 과정을 추적한 바에 따르면 조카 유씨는 조희팔 2인자 강태용이 체포된 중국 쑤저우 현장에 같이 있었다. 강태용의 중국 내 은신처와 동태를 알 수 있도록 도운 원제보자이자 ‘조희팔 핵심 측근’이 바로 유씨였다(〈시사IN〉 제423호 ‘조희팔은 아직 찾지 못했다’ 기사 참조) . 그는 조희팔 사망 발표 이후에도 중국을 30여 차례 오가며 인터폴에 지명수배된 중국 내 조희팔 일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시사IN〉에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조건을 걸었던 유씨가 망설임 끝에 대구지검에 출석해 강태용의 은신처에 대한 진술을 한 것은 지난 9월30일이었다. 검찰은 유씨가 강태용의 도피·은신 과정에서 돈거래를 한 것과 이를 방조한 혐의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유씨의 진술을 계기로 한·중 공조수사의 물꼬가 트이자 그는 10월7일 공조팀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 영사와 중국 공안에게 강태용의 쑤저우 은신처를 안내했다. 10월10일 강태용이 체포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유씨는 다음 날인 10월11일 공조팀과 귀국했다.
취재 과정에서 유씨는 강태용 체포를 적극 돕는 이유에 대해 “강태용이 들어와야만 조희팔 사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잠잠해질 것이라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조희팔 사건을 추적하던 〈시사IN〉과 KBS·SBS 등 언론 공조팀은 강태용 은신처에 대한 그의 제보 동기가 ‘조희팔과 사전 밀약한 꼬리 자르기’ 아닐까 강하게 의심했다. 하지만 유씨는 외삼촌(조희팔)이 죽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재 자신과 조희팔의 자녀가 어렵게 살고 있다며 “삼촌이 살아 있다면 국내 가족을 돌보지 않고 궁핍하게 방치하겠느냐”라고 이유를 댔다.
기자는 강태용 체포와 더불어 조희팔 사건이 국민적 이슈로 부각된 이후 유씨의 신변을 수시로 체크했다. 유씨는 잠을 못 이뤄 수면제를 달고 살아가는 처지였다. 조희팔의 다른 측근들과 경찰에서 걸려온 여러 전화 때문에 심하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유씨 주변의 전언도 있었다. 강태용이 체포되면 조희팔 사건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일파만파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가 죽었다고 주장해온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도 급부상했다.
조희팔 생존설은 유씨의 석연찮은 사망 주장과 스스로 발설한 전화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더 무게가 실렸다. 강태용이 체포되던 10월10일 밤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유씨는 “삼촌에게 심장병 전력은 없었지만, 노래방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고 조선족 보호자가 전화를 해 달려가보니 돌아가셨더라. 현장에 있던 3명에 의한 타살이라고 보았다”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러나 조희팔 사망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유씨로부터 나왔다. 조희팔 장례식 동영상이 찍힌 후 2개월 정도 지난 2012년 2월 중순 중국에 있던 유씨가 한국에 있는 조희팔의 또 다른 측근에게 건 전화의 녹취록이 공개됐는데, 이 녹취록에 따르면 유씨는 “삼촌이 지금 막 노발대발하신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를 중국에 불러 중국 공안에 수사 협조하지 말라고 검찰 수사 간부와 검찰총장에게 돈을 보냈는데 그 뒤에 (검찰이) 공안에 체포 공조 협조요청을 했다고 삼촌이 엄청 화가 나 있다”라는 요지로 통화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유씨의 심경에 대해 표창원 박사는 “유씨는 조희팔 밀항과 사망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에 한·중 양국에서 조희팔 사건 수사가 개시되면서 강태용 체포로 끝날 것이라 보았던 사건이 확대되자 다시 교도소에 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두려움과 신변 비관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유씨에 대한 공범들의 압박 또는 검경, 정관계 거물 등 연관된 사람들의 압박이 보태졌다면 충분히 사망에 이를 만한 심리 상태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표창원 박사는 10월10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야 사는 남자 조희팔’ 편 제작진과 중국 현지에 동행해 유씨의 수상한 행적을 상세히 조사한 적이 있다. 표 박사의 설명은 이렇다. “조희팔 사망 발표 전에 유씨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은 신빙성이 매우 낮았다. 삼촌이 내연녀와 조선족 가이드 등 3명이 보는 앞에서 죽었다면서 그들에게 타살당한 것으로 믿었다고 진술했지만 그 뒤로도 이 세 사람과 친숙하게 지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씨는 2007년 사망했지만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지린성 거주 조선족 조영복의 신분을 사서 2007년 중국을 방문한 조희팔에게 위조 공민증을 만들어줬고 2008년 말 밀항 뒤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실제 인물 조영복의 사망 시점이 2011년 12월19일인데 마치 조희팔이 죽은 것으로 둔갑시킨 것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하다. 경찰의 조희팔(조영복) 사망 발표 후에도 조영복이라는 인물(조희팔)은 2013년 초까지 11차례나 골프장을 드나든 기록이 나왔다. 현재 중국 지린성 공안 당국이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한국 검찰도 조희팔 사망 진위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자 유씨가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희팔 밀항방조죄로 1년의 실형을 살고 나왔고 강태용 체포를 도왔기에 자신은 면책받으리라 믿었던 유씨가 이처럼 한·중 양국에서 전개되는 조희팔 위장사망 의혹 수사에 강한 두려움을 느꼈을 법하다는 것이다. 조희팔 사망이 위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유씨는 무거운 죄과를 피할 수 없다.
유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조희팔 사건을 또 한 번 미궁으로 빠뜨리려 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 수사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 사망한 유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파일을 압수해 강태용 체포 후 사망하기까지 연락을 취한 이들을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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