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직 조희팔은 찾지 못했다


‘그 남자’의 인맥에 주목하라

 

전국적으로 3만여 명에게 4조원대 사기 피해를 입힌 조희팔 사건이 또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7년 전 주범 조씨와 함께 중국으로 달아나 인터폴에 적색수배령이 떨어진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54)이 10월10일 밤 중국 상하이시 근처 쑤저우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전격 체포되면서다. 검찰이 강태용의 국내 송환 절차를 서두르면서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으로 기록된 조희팔의 밀항 및 ‘위장 사망’ 사건 수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조희팔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은 강태용의 체포를 두고 “오랫동안 한·중 사법 공조를 강화해온 개가”라고 자평했다. 검찰은 강태용을 송환받는 대로 조희팔 위장 사망 의혹과 강태용의 정·관계 및 수사기관 상대 로비 정황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럴까. 〈시사IN〉은 강태용의 은신과 도주, 체포에 이르기까지 지난 2개월 동안 전개된 숨가쁜 과정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그에 따르면 이번 강태용 검거의 이면에는 수사기관의 직무유기에 절망한 조희팔 피해자들의 끈질긴 추적 작업과 여기에 힘을 보탠 몇몇 언론의 ‘공조’가 자리하고 있다.

 

ⓒKBS 화면 갈무리10월11일 KBS 대구총국의 탐사기획팀이 촬영한 강태용 체포 장면이 KBS <뉴스 9>를 통해 보도됐다.

〈시사IN〉이 이번 ‘강태용 체포 작전’의 전 과정을 깊숙하게 파악하게 된 계기는 ‘조희팔 사건 피해자모임’을 이끄는 윤 아무개씨를 통해서다. 윤씨는 지난 7년 동안 기자가 30여 차례 추적해온 조희팔 사건의 보도 과정에서 취재원으로 인연을 맺은 사이다. 2014년 6월27일에는 조희팔이 중국 칭다오(靑道)에 나타났다는 제보와 함께 조씨의 내연녀와 출소한 조희팔의 핵심 측근 4명이 중국을 오가며 조희팔 일당과 연계되어 있다는 내용을 알려오기도 했다.

지난 9월 초 윤씨는 〈시사IN〉에 강태용의 중국 내 은신처를 확보했다는 제보를 해왔다. 신뢰도 200%라고 강조했다. 그가 밝힌 ‘강태용 발견’의 과정은 이랬다.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강태용을 체포해올 방법을 모색하던 윤씨 측은 8월 중순 칭다오의 한 룸살롱에 있던 그를 발견하고 중국 공안(110)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공안요원들은 룸살롱에 들어간 뒤 주인으로부터 강태용에 대한 ‘신원보증 각서’만 받고 돌아갔다.

이후 윤씨는 강태용이 숨어사는 집을 수소문한 끝에 중국 칭다오시 황다오(黃島)의 고급 민박촌에 은신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룸살롱 체포 작전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중국 공안에 신고하는 대신 칭다오 주재 한국 영사관의 영사(무관)에게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칭다오 영사는 강태용 거주지 근처 파출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체포를 요청했다. 공안요원들은 한국 영사를 대동해 대낮에 강태용의 민박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날 강태용이 외출하는 바람에 체포에 실패했다. 공안이 저녁에 단독으로 다시 방문했지만 그때는 강태용이 이미 짐을 싸 도주한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윤씨의 안테나에 칭다오에서 도주한 강태용이 상하이 근처에 있는 절강성 쑤저우라는 소도시에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한 사실이 포착됐다.  

 

ⓒ시사IN 윤무영조희팔 사기 사건의 피해자로 지난 7년간 조희팔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제보자 윤 아무개씨(사진 오른쪽)와 <시사IN> 정희상 기자가 인터뷰하고 있다. 아래는 윤씨가 기자에게 보낸 문자.

중국에서 강태용을 눈앞에 두고도 두 번이나 놓친 윤씨는 중국 공안과 조희팔 일당의 유착을 의심했다. 그는 9월 들어 이 문제를 한국 내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윤씨는 먼저 경찰청 외사과 인터폴계에 강태용의 중국 은신처와 그간 체포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이어 조희팔 사건을 오래 추적해온 〈시사IN〉에 전모를 알려주면서 경찰이 움직일 때 쑤저우 현장에 동행 취재해달라고 부탁했다. 윤씨에 따르면 강태용은 도피 생활 중에도 하루 저녁 술값만 100만원이 넘는 룸살롱에 수시로 출입하며 빼돌린 조희팔 사기 자금을 탕진하고 있었고, 인터폴 적색수배자 신분인데도 김민성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칭다오 지역 한국 교민들의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는 등 활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수사기관은 그를 잡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윤씨에게 강태용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제공한 이는 뜻밖에도 조희팔의 최측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씨는 기자에게 그의 신원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강태용 신변’ 제보받고도 손 놓은 검경

9월7일부터 나흘 동안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와 수차례 협의를 거친 윤씨는 강태용 체포 작전의 디데이가 9월16일로 잡혔다며 기자에게 출국 준비를 서두르라고 알려왔다. 경찰이 중국 공안과 공조해 강태용을 체포하는 현장에는 〈시사IN〉 외에 KBS 촬영팀이 동행하기로 했다. KBS 탐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2012년 가을 〈시사IN〉과의 3개월 공조 취재를 통해 조희팔이 중국에 생존해 있다는 취지의 방송을 내보낸 인연이 있다.

하지만 경찰이 주도하는 강태용 체포 작전은 출국일 직전 경찰 측의 태도 변화로 갑자기 취소됐다. 윤씨는 “한국에서 경찰이 들어가 중국 공안과의 합동작전으로 강태용을 체포하기로 협의를 마쳤는데 출발 전 경찰에서 갑자기 그런 방법은 곤란하다고 통보해와 무산됐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에서는 2012년 5월 조희팔 사망 발표 후에도 ‘강태용 검거 전담팀’을 가동시키고 있었기에 강태용 체포 작전에 경찰이 적극 나서리라 기대했던 윤씨의 실망과 불신은 컸다.  

기자가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에게 확인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9월16일을 디데이로 잡은 건 맞다. 그런데 중국 공안 측에 한국 경찰이 비공식적으로 들어가 범죄인 체포 작전에 협조를 해도 되느냐고 문의했더니 부정적인 답변이 왔다. 필리핀 등 동남아 몇 나라에서는 가능한 작전이지만 중국은 아직 어렵다.” 그는 이어 “경찰은 중국 영사에게 맡겨서 공안과 공조를 펴는 방식을 쓰자고 제보자에게 권유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미 8월에 칭다오 영사를 통해 강태용 검거를 시도하다 실패했던 윤씨는 한국 경찰이 체포 현장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조희팔 피해자 단체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시민연대(바실련)’가 중국에 뿌린 유인물.

김준규 검찰총장 시절이던 2012년 2월, 대검 국제기획단이 중국 공안과의 사법공조를 통해 수배 중이던 조희팔 수하 2명(강호영·최천식)을 중국 옌타이에서 송환해온 비사를 취재 보도한 경험이 떠오른 기자는 윤씨에게 이 사건을 대검에 신고하도록 권유했다. 윤씨는 대검 수사관에게 연락을 취해 경찰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제보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대검 측에서는 “강태용 사진이나 동영상 등 증빙서류를 가져오지 않으면 검찰이 나서기 어렵다”라면서 선을 그었다고 했다. 윤씨 처지에서는 신변 위험까지 무릅쓰며 강태용에게 접근해 사진을 찍어올 수는 없었기에, 원제보자가 100% 신원이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여러 번 알렸지만 믿어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강태용의 은신처를 제공해도 경찰과 대검이 소극적 태도로 나온다며 낙담하던 윤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9월18일 대구지검을 상대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조희팔 사건을 추궁하자 이영렬 대구지검장이 “조희팔이 살아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윤씨는 이에 희망을 걸고 대구지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구지검도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한·중 공조수사 체제가 가동되려면 중국에서 강태용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 원제보자(조희팔의 핵심 측근)가 검찰에 와서 사실조회 진술을 해주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원제보자는 자기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극히 꺼렸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윤씨를 통해 대구지검의 반응을 접할 즈음, 기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으로부터 ‘죽어야 사는 남자, 조희팔’ 제작 과정에 협조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강태용 검거에 관심 있는 언론들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자는 사전 녹화에 출연해 조희팔 생존을 뒷받침하는 취재 자료들을 제공하는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팀과 제보자 윤씨를 연결해주었다.

이미 공조를 진행하고 있던 KBS의 강태용 검거 현장 취재 추진은 이 무렵 서울에서 KBS 대구총국으로 넘어갔다. 조희팔 다단계 사기업체의 본사가 있는 KBS 대구총국에서 마침 조희팔 사건을 파헤치는 1년짜리 탐사기획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강태용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받고도 대구지검이 원칙만 앞세우자 9월21일 KBS 대구총국의 법조팀이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방송 카메라를 중국 쑤저우에 있는 강태용 은신처에 보낸 후 “강태용이 이렇게 버젓이 활동하는데도 제보를 받은 대구지검은 손을 놓고 있다고 보도하면, 강태용은 도망가고 검찰은 직무유기했다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압박한 것이다. 여기에 9월30일 우여곡절 끝에 원제보자인 조희팔의 핵심 측근이 ‘범죄인 도피 방조 혐의 미처벌’을 조건으로 대구지검에 진술을 해주면서 드디어 강태용 체포 작전 추진에 물꼬가 트였다. 검찰에서 곧바로 상하이 주재 법무영사를 통해 중국 공안에 인터폴 수배자를 체포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하면서 한·중 공조수사 체제가 마련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대구지검의 조희팔 사건에 대한 재수사 의지와 조희팔의 위장 사망이 사전 각본에 따라 기획됐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밀항 제보자의 고백을 보도했다(〈시사IN〉 제421호 ‘죽었다던 조희팔, 검찰 수사로 부활할까’ 기사 참조). 10월10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프로파일러 표창원씨가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중국 현지와 장례식장에 동행해 다양한 과학적 분석과 증거를 통해 조희팔이 위장 사망했을 가능성을 부각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방송은 지난 8월 말 강태용이 중국 공안의 석연찮은 체포 미수로 쑤저우로 도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황다오의 민박집 전경까지만 보여주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던 10월10일 밤 중국 절강성 쑤저우의 한 아파트에서는 비로소 대구지검과 중국 공안의 공조로 강태용이 전격 체포됐다. 강태용 체포 장면은 KBS 대구총국에서 카메라에 담아 이튿날인 11일 밤 9시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강신명 청장, 조희팔 사망 확인 발표 철회

이처럼 조희팔의 위장 사망 의혹과 2인자 강태용 전격 체포 등 일련의 언론 보도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제기되던 조희팔 관련 이슈는 삽시간에 국민적 이슈로 재부상했다. 강태용 체포 소식이 알려진 뒤 3년 전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던 경찰은 10월13일 강신명 청장이 직접 나서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라는 말로 사실상 과거의 사망 확인 발표를 공식 철회했다. 조희팔 사망 발표 후에도 경찰이 그에게 수배해제 조치를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씨 가족이 아직까지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조희팔 사기 사건이 막 터져 나오던 때, 조희팔 일당이 해경의 비호 아래 충남 태안에서 밀항을 준비하던 2008년 12월1일 기자와 처음 만났던 사건 제보자 윤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피해자가 몇백명인 서울 강남 귀족 계에는 날마다 달라붙으면서 서민 수만명이 죽어나가는 수조원대 조희팔 사기 사건을 외면하는 중앙 언론이 더 원망스럽다”(〈시사IN〉 제65호 ‘제이유 뺨친 조희팔의 금융 다단계’ 기사 참조). 그 뒤 윤씨는 수만명 피해자들을 대변해 외로운 추적 작업을 벌인 끝에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을 체포하는 숨은 공신이 됐다. 그는 조희팔의 자금책으로서 정·관계와 수사기관 로비의 주역으로 알려진 강태용을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했다. “이제 막 판도라의 상자를 잡았을 뿐이다. 그가 송환되어도 수사기관에서 과연 그 상자를 제대로 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이 원망스럽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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