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는 파키스탄 중부의 촐리스탄 지역에서 그간 내가 직접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신분이 높은 분을 ‘알현’했다. 그의 이름은 사비르 칸(가명). 300여 년에 걸쳐 촐리스탄 지역을 다스려온 바하왈푸르 왕국의 왕자이다.

그의 가문은 한때 파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했지만, 중앙 정부보다 더 강력한 지방 세력을 용인할 리 없는 파키스탄 정부의 탄압으로 재산 대부분을 몰수당해, 지금은 과거의 영광만을 곱씹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력 가문이다. 집 밖에선 납치를 우려해 (실제로 그는 지난해에 두 달간 납치당해 거액의 몸값을 뜯겼다고 한다) 허름한 옷에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지만 그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우리를 맞이한 건 진짜 왕자였다.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여유 있는 태도와 기품 있는 언행은 학교에서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응접실에는 그와 친한 바하왈푸르의 유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가 오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자, 가만있자, 저게 뭐더라…으흥? 맥주와 위스키가 나왔다.

 

ⓒ탁재형 제공사비르 칸 왕자(위 오른쪽) 저택에서 벌어진 ‘비밀스러운 술자리’ 참석자가 인도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위 왼쪽).

 


알고 보니,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도 술은 생산된다. 비이슬람 인구(파키스탄에도 소수지만 기독교도와 힌두교도가 존재한다)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여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아무리 지켜봐도 주기도문이나 밀교의 진언을 외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 사람에게만 재미있을 법한 한 가지 사실은, 이 파키스탄산(産) 술이 만들어지는 곳의 지명이 ‘물탄(Multan)’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좋은 술을 만들어도 이름 때문에 ‘물탄 맥주’, ‘물탄 위스키’가 되어버리니 한편으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물탄 술’이지만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낮에는 틀림없이 서양 문물의 무분별한 침투를 알라에 대한 믿음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실 것 같은 풍채 좋은 아저씨가, 1950년대 인도 가요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내 앞의 백발이 성성한 전직 장관님은 30분간 고장난 라디오처럼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신다. 그분이 인도 편에 붙지 않고 파키스탄의 일원이 된 이 가문의 위대성에 대해 아홉 번째로 같은 이야기를 하려 잠시 숨을 고르시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여기 모인 분은 모두 무슬림인 걸로 아는데, 술을 드셔도 괜찮은 겁니까?”

“이슬람은!”

전직 장관님이 선언하듯 말씀하셨다.

 

 

 

 

 

 

ⓒ탁재형 제공파키스탄의 ‘머리 밀레니엄’ 맥주.

 

 

“평화의 종교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무엇을 하든, 어떤 죄를 짓든 신께 심판을 받고, 대가를 치르는 건 결국 개인이거든. 그래서 그 누구라도 남의 신앙생활에 멋대로 개입할 권리는 없다고. 나는 술을 마시는 쪽을 선택했어. 그리고 남보다 더 오래 기도를 하지. 나는 신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어. 그리고 이슬람은….”

장관님은 또 다른 반복의 무한 루프에 빠져들고 계셨다.

7세기, 아랍 세계의 타락을 일소하고 새로운 도덕 체계를 세우려 했던 이슬람은 금욕과 청빈을 유독 강조했다. 이런 이슬람이 술의 해악에 주목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술의 무익함을 여러 차례 강조한 이래, 술은 아랍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율법으로 술을 금할 정도였다니, 아랍 사람들이 얼마나 애주가였는지 알 수 있다. 


‘조잡한 맛’에서 배어나오는 슬픔

술을 만드는 기술도 당연히 발달했는데, 증류주는 아랍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발효주는 일반적으로 17도 이상 알코올 도수를 올리기가 힘들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라는 세균이 주변의 당을 섭취해 알코올을 배설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알코올에는 알다시피 세균을 죽이는 힘이 있다. 결국, 효모균은 (비극적이게도) 알코올 농도가 17% 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이 만들어낸 알코올에 의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발효주를 끓여 증기를 모으는 방법(증류법)을 쓰면 알코올 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아랍 사람들은 앞서 있던 화학적 지식에 힘입어 이러한 증류 기술을 가장 먼저 습득했고, 그들이 만든 새로운 술을 ‘농축’이라는 뜻의 아랍어 아락(Arak)이라 불렀다.

2004년 요르단의 암만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면세점을 둘러보던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발견한 것은 인류 최초의 증류주 ‘아락’. 당연히 국내 판매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비이슬람 인구와 외국인을 위해 소량 제조되고 있었다.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헤치고 피어난 한 떨기 장미꽃을 집어 드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집으로 한 병을 모셔온 나는 늘 새로운 술을 함께 마시는 친구들을 소집해 경건한 시음식을 가졌다. 떨리는 손길로 첫 잔을 따라 입으로 가져가본 느낌은…. 

 

 

 

 

 

 

 

ⓒ탁재형 제공요르단 공항 면세점에서 판매되는 아락.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내가 입에 머금은 것은 지중해권에서 흔한 아니스(Anis)라는 식물의 씨앗에서 얻은 향료를 첨가한 리큐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술로는 그리스의 우조(Uzo)나 이탈리아의 삼부카(Sambuca) 등이 훨씬 세련된 향을 낸다. 그들이 아류이고 현재의 아락이 원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락’이라는 이름에 기대했던 것은 좀 더 순수하고 화끈한, 그동안 나를 즐겁게 해준 모든 술의 시원이라는 격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관심을 잃고 다른 술을 따르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아락을 몇 모금 더 들이켰다. 약간은 조잡한 맛에서 슬픔이 배어나왔다. 긴 세월 종교의 눈치를 보며, 제조법이 전승되기는커녕 만드는 이들의 자부심까지 위태로워진 세월을 견뎌낸, 황야를 헤매는 리어왕과도 같은 술. 나는 그렇게 아락을 위로했다.

 

 

기자명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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