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당황했다.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정보 라인을 기반으로 탈레반을 공격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민간인 대학살 오폭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와 유엔이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비극은 거짓 정보 때문에 발생했다. 정보 제공자인 나데르 타와킬이 탈레반으로 지목해 미군의 공습을 유도한 마을은 그가 평소 적대시하던 부족이 살던 곳이었다. 미군은 그를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라고 믿고 작전에 들어갔다가 결국 민간인을 학살하게 된 것이다. 미군은 뒤늦게 타와킬을 구금했다. 그러나 미군에 대한 아프간 주민의 분노를 수습할 수는 없었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최첨단 하이테크 무기를 동원해 정보 수집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무인 항공기 UAV가 대표적이다. 아프간에는 정찰과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UAV가 7000여 대 투입되어 있는데, 이 정찰기가 전쟁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은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UAV로 아프간 전역을 샅샅이 볼 수 있으며, 심지어 복잡한 시장의 인파 속에서 특정인을 가려낼 수도 있다고 한다. 미군의 고공 정찰기 ‘MQ-9 리퍼’도 아프간 상공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비커스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지난 7월 “무인비행기와 공중정찰기 등 정보전 도구를 총동원해 전황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아프간 연합군 사령관인 매크리스털 장군이 현 직위에 임명된 이유도 최고의 정보전쟁 전문가이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 통역원 중 탈레반 정보원도 있어
그런데 이런 정보력을 갖춘 미군이 한 사람의 거짓 정보를 믿고 오류를 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간에서 민심이 탈레반 쪽으로 기울면서, 미군의 정밀한 정보 수집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마을 사람 사이에 섞여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군은 부족 원로나 아프간 현지 경찰과 군인·정부를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미군 통역으로 파슈툰어나 다리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을 고용하고 정보 라인을 구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 라인이라고 해서 미군이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상대는 아니다.
영국을 울린 브라이언트 병장의 죽음
지난 6월 아프간에서 정보작전 수행 중 사망해 영국 전역을 슬프게 한 사라 브라이언트 병장(26)의 경우는, 아프간에서 정보 수집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영국군 정보부대(SAS) 소속 브라이언트 병장은 아프간 현지 정보원과의 두 번째 접선을 위해 칸다하르 주 접경의 탈레반 영역 깊숙이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브라이언트 병장과 경호팀은 경장갑 차량인 랜드로버를 타고 있었는데, 100파운드급의 탈레반 측 폭탄이 길에 매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울라 무자헤드는 성명서에서 “랜드로버를 기다리고 있다가 목표를 확인한 뒤 원격으로 폭탄을 폭파시켰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브라이언트 병장 일행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브라이언트 병장이 탈레반 영역으로 들어간 이유는 아프간 정보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군 주둔지로 들어가다가 정보원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경우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정보원이 미리 탈레반과 짜고 브라이언트 병장을 유인한 것인지 혹은 정체가 발각되어 정보를 토해내도록 강요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이 매복 공격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는 점이다.
아프간 정부 측 정보 요원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 9월2일,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도시로 알려진 아프간 동부 미타르람의 한 사원 앞에서 자폭 공격이 발생했다. 이 공격으로 아프간 정부 측의 정보 요원 23명이 사망하고,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50명 이상이 다쳤다. 이 사건을 일으킨 탈레반의 표적은 아프간 국가보안국 간부인 압둘라 라그마니였다.
더욱이 연합군 내부에서도 정보 관련 사고가 불거지고 있다. 2001년 이래 아프간 서쪽 헤라트 지역에 주둔해온 이탈리아 군은 지난해 8월 이 지역을 프랑스 군에 인계했다. 프랑스 군은 ‘헤라트 지역은 안전하다’는 이탈리아 군의 정보를 믿고 작전에 들어갔다가 탈레반의 매복 공격으로 10명이 몰사하는 변을 당했다.
이탈리아 군이 ‘안전한 지역’이라고 했던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품은 미국 정보 요원들은 전화 추적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동안 이탈리아 군이 탈레반 사령관들에게 정기적으로 수만 달러씩을 상납하면서 ‘공격을 삼가달라’고 애원해왔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처지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일어날 정치적 곤경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이를 미군과 연합군은 전혀 몰랐고, 프랑스 군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더욱이 프랑스는 자국 정보 요원들이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아프간 현지에서 활동해온 ‘아프간 정보의 강자’로 알려진 나라다. 이런 프랑스 군이 같은 동맹국인 이탈리아 측 정보를 믿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연합군은 ‘자국 정보가 아니면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미군 측의 이런 곤경과는 대조적으로, 탈레반의 정보 수집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2007년 2월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 자살폭탄 테러 때도 탈레반은 체니 당시 미국 부통령이 방문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사건 직후 탈레반 대변인 카리 요세프 아마디는 AP통신과의 통화에서 “체니 부통령이 기지에 머물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라고 밝혔다.
이후 미군 부대 보안체계에 대한 염려가 거세게 일었다. 연합군 최대 주둔지인 바그람 기지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레반의 정보 수집 능력이 상당 수준에 있다며, 체니의 방문 계획을 탈레반이 적어도 2∼3일 전에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각종 자살폭탄 테러나 요인 암살에서 탈레반은 우월한 정보력을 과시한다. 아프간에서 미군과 연합군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면서, 탈레반은 주민 사이에 숨어 정보를 빨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파병 한국, 아프간 정보 어떻게 수집?
이런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현지 정보력’의 효율적 활용에 주력해왔다. 미국 국무부는 수배 중인 주요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하거나 살해하면 돈을 주는 비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를 통해 수천만 달러가 파키스탄에 건네졌다. 미국은 2002년 봄 파키스탄 출신인 알 카에다 고위 지도자 아부 주바이다를 체포한 대가로 1000만 달러를 처음으로 지급한 바 있다. 미군은 파키스탄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였던 바이툴라 메수드 등 수뇌급 인물에 대한 표적 공격을 성공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파키스탄 정부의 정보 제공 덕분에 가능했다. 미군이 자체 정보보다 파키스탄 정보국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이런 정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전략에 따라, 아프간 중앙 및 지방 정부를 도울 민간 정보전 전문가 수십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전의 대가인 그레고리 스미스 해군 소장을 아프간 연합군 사령관 산하 통신책임자로 임명했다. 하지만 아프간 주민의 민심이 미군과 연합군에게서 떠나면서 미군 정보활동은 더더욱 힘들어져만 간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한국군 아프간 파병을 앞두고 우리가 미국 정보에만 의존할 수 있는지, 우리가 자체 정보를 얼마만큼 아프간에서 확보할 수 있는지 충분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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