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 새벽 4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용 헬기로 백악관에서 40분을 날아가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헬기 사고로 희생된 병사 15명과 마약단속국(DEA) 요원 3명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매우 이례적인 방문이었다. 모두 잠든 새벽에 대통령이 직접 병사의 유해를 맞는 일이 어찌 흔할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아프간 추가 파병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그에게는 아주 힘든 경험이었을 것이다.

아프간 주둔 미군에게 지난 10월은 피로 물든 최악의 달이었다. 10월26일에는 헬리콥터 사고로 미군 18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 날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미군 2사단 소속 스트라이커 부대 병사 8명이 매복 공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몰살당했다. 10월 한 달 동안 사망한 미군 병사는 55명에 이른다. 2001년 전쟁이 발발한 이래 가장 많은 수이다.
 

부상한 아프간 참전 병사를 구조하기 위해 미군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

나토는 아프간에 개입할 의사 없다?

지난 8월 말, 아프간 연합군 총사령관 매크리스털 장군은 66쪽짜리 아프간 전략 보고서에서 미군 4만명을 추가 파병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바마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미군 희생이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데도 그랬다.
미국 정부가 추가 파병 계획을 확정하기 전에 초미의 관심사는, 다른 동맹국들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내놓을 것인가’이다. 4만이란 병력을 동맹국 협조 없이 미국 혼자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군 병력 4만명을 한꺼번에 파병할 경우, 미국 본토의 방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바마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동맹국의 협조이다.

그래서 10월22~23일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나토 비공식 국방장관회의는 미국에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회의가 추가 파병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기대했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도 출석해서 아프간 주둔군 측의 추가 파병 요구와 이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견해를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유럽 국가들로부터 끝내 구체적인 증파 약속을 얻어내지 못했다. 회의 분위기도 이상했다. 표면적으로는 각국 국방장관이 다국적군을 추가로 파병할 수 있다고 내비쳤다.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도 공식적으로 “국방장관들은 수만명 추가 파병을 촉구한 매크리스털 미국 최고사령관의 전략에 폭넓은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나자마자 라스무센 사무총장은 “(나토의) 궁극적 목표는 아프간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다”라고 조금 싸늘하게 발표했다. ‘아프간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다’는 발언은 나토가 아프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에서 사망한 미군을 거수경례로 맞이하고 있다.

든든한 우군 사르코지도 “추가 파병 없다”

나토의 어느 나라 국방장관도 추가 파병 규모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8년이나 진행된 지루한 아프간 전쟁은 막대한 전비와 매일 늘어가는 전사자로 인해 자국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이다. 그래서 나토 국가들은 아프간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정치적 구실을 찾기 바쁘다. 반면 미국은 마치 카드빚을 갚으려고 친구들에게 소액이라도 빌려야 하는 것처럼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토에서는 추가 파병을 하겠다는 나라보다 하지 않겠다는 나라가 더 많다. 추가 파병을 한다는 나라도 겨우 몇 백명 수준이다.

나토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한 네덜란드 미델쿠프 국방장관은 “파병이 가능하려면 아프간에 합법적인 정부가 존재해야 한다. 아프간 대선 결과가 확정되고 미국 정부의 새 아프간 정책이 나올 때까지는 병력을 추가로 보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최근 아프간 우루즈간 주의 주둔군 기지에서 사상자가 잇따라 발생해 여론이 좋지 않다.

소에렌 가데 덴마크 국방장관도 “아프간의 새 정부가 나토의 목표에 부합할 때까지 병력 증파를 자제할 것이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아프간에 장교 2명만 파병한 오스트리아도 노르베르트 달라보시 국방장관을 통해 “아프간 주둔 오스트리아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며 추가 파병할 의향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일간지 호이테는 “미국이 오스트리아에 아프간 추가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 상당수는 미국의 간곡한 추가 파병 요청을 거부해왔다”라고 보도했다.

 

 

 

 

10월22~23일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나토 비공식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한 라스무센 사무총장(왼쪽)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가운데).

파병 안 하거나 조금만 보내거나

심지어 아프간에 2900명을 파병해 실전에 투입하고, 아프간 치안군까지 훈련하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마저 이미 “아프간에 단 한 명의 프랑스군도 추가로 파병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나토 국가에 가한 전방위 압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추가 파병에 동의한 나라도 우여곡절이 많다. 특히 영국은 ‘추가 파병을 한다’와 ‘안 한다’를 반복하다가 최종적으로 500명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정부는 당초 3000명 추가 파병을 미국으로부터 요청받았으나 230명이 넘는 영국군 희생자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추가 파병 불가로 방침을 정리했다. 그러나 군내의 심각한 반발 때문에 ‘500명 증파’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로써 아프간 주둔 영국군은 9500명으로 늘어난다.

아프간에서 지금까지 87명이 전사한 스페인 정부는 220명을 추가 파병하기로 9월11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프간 주둔 스페인 병력의 수는 100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아직 의회 논의를 거치지 않았으나, 스페인 의회 역시 파병안을 통과시키리라 예상된다. 현재 아프간에 병력을 2000명 보낸 폴란드도 내년에 600명을 추가로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 회원국 자격을 원하는 마케도니아도 현재 160명을 아프간에 주둔시키고 있는데, 80명을 증파할 계획이다. 최근 자국 주둔군이 관련된 민간인 학살로 곤란에 빠졌던 독일은 연말에 의회에서 추가 파병을 결정하기로 유보해놓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추가 파병을 밝힌 나라는 스페인(220명), 폴란드(600명), 마케도니아(80명), 영국(500명), 한국(300명) 등이다. 나토 국방장관회의에 맞추어 추가 증파 계획을 발표하려던 미국도 예상보다 소극적인 나토의 태도 때문에 11월7일(당초 아프간 대선의 결선 투표가 예정되었던 날) 이후로 추가 파병 결정을 미뤘다. 매크리스털 장군이 요청한 4만명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적이 미국을 적잖이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아프간 추가 파병은 미국 내에서도 여론이 갈리는 실정이다. 심지어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까지 이에 반대한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속내는 회의적이다. 존 케리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아프간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확실해지기 전에 군대를 더 보내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파인골드 상원의원은 더 나아가 “이제 아프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때다”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합참의장을 지내기도 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더 명확한 작전방침 없이 추가 파병만 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다”라는 견해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여론도 오바마에게 불리하다. 국제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가 미국 성인 남녀 10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6%가 추가 파병에 반대했다. 찬성 응답자는 겨우 35%였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아프간 특사 리처드 홀브룩은 추가 파병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자세를 나타낸다. 대선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의원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며 증파를 강력히 요청했다. 존 카일 공화당 원내부대표는 “추가 파병 결정이 너무 지연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전쟁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도 그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일 것이다. 더욱이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가장 오래 끈 전쟁이 될 전망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기간은 8년6개월이었다. 미국의 추가 파병은 아프간 전쟁의 2막을 올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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